안동사랑 노래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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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김경남-내고향 안동

 

2.김태곤-안동 자랑가

3.진성-안동역에서

 

4.윤사월-제비원 아지매  

 

5.허범정-부용대 연가 

 

6.권용욱-안동껑꺼이

 

7.임이자-저강은알고있다

    

안동자랑가 / 청해 김 명 자


어화세상 벗님네요 안동자랑 좀하시더

가시는길 급하셔도 내이야기 듣고가소

사는일이 고달퍼도 내말씀좀 들어보소

경상북도 안동땅은 천하제일 명당이라

백두산의 힘찬정기 백두대간 지맥타고

영남산을 좌청룡에 태화산은 우백호라

학기산은 현무되고 갈라산은 주작되니

각원황지 너덜샘물 생명수로 흘러와서

반변천과 송야천을 반겨만나 합류하여

칠백리길 낙동강이 이땅에서 시작되니

물은맑고 인심좋아 가문마다 생기복덕

안동땅의 옛역사야 부녀자의 짧은안목

자세할수 없아오나 신라시대 고타야로

고창으로 불리다가 영가건너 길주되고

공민왕때 대도호부 역사혼돈 부침속에

안동땅과 안동사람 일편단심 지조지켜

오늘날에 이르러서 지구상에 유일무일


정신문화 수도라는 특허까지 받았다오

어화세상 벗님네요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대접 받아보고 사람공경 하시려면

전후좌우 재지말고 안동으로 이사오소

미워하고 시기하고 사기치고 패륜하고

현세상의 흐린정신 바로잡아 고치려면

지체말고 달려와서 도산서원 상덕사에

오백년을 뜬눈으로 정좌하고 앉으시어

수신십훈 실천하고 천인합일 염원하신

개천이래 대유학자 퇴계선생 만나보소

노나라의 대철학자 공자님의 논어육경

맹자님의 민의예지 사서삼경 깊은교훈

퇴계이황 높은학문 성리학의 체계잡아

사단철정 이원론을 완성하지 않았으면

필부필부 민초들이 수신십훈 어이알며

삼강오륜 깨우쳐서 충신효부 있으리까

어화세상 벗님네요 도산서당 입교하여

퇴계사상 공부하여 사람도리 배웠으면

퇴계선생 사유하던 오솔길을 따라넘어


민족시인 애국열사 이육사님 찾아보소

안동도산 원천리의 이육사님 생가터엔

독립광복 염원품은 청포도비 의연하고

애국열사 뛰어놀던 청산수곡 강변에는

매화향기 앞세우고 백마초인 달려울듯

서릿발이 칼날같은 칼선대에 올라서서

쓴도라의 찬새벽도 꽃맹아리 옴짝거려

제비떼가 새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다

조국광복 못보시고 원통하게 순국하신

이육사님 통곡소리 가슴치며 들어보소

어화세상 벗님네요 사람마다 제고향은

아름답고 정이가고 마음편한 곳이기에

남의고장 자랑이사 지루하고 싫겠지만

이사람의 성의보아 안동구경 더하시더

백년가약 중한인연 불행하다 고생된다

부모애통 자식눈물 형제걱정 내몰라라

별거한다 이혼한다 변덕스런 부부님들

영호대교 다리건너 정하동에 홀로섰는

원이엄마 도상앞에 꽃한송이 올려놓고


머리끊어 신을삼아 병중낭군 쾌차하길

지극정성 빌고빌던 지고지순 높은사랑

사백년을 넘어와서 만심금을 울리나니

어진사랑 귀한유정 본을받고 감동받아

양보하고 이해하여 백년해로 행복하고

어화세상 벗님네요 원이엄마 헌신사랑

가슴깊이 새겨품고 서쪽으로 가보시더

우주선이 달나라에 여행객을 실어가고

손안에든 전화기로 지구저쪽 소식묻는

과학문명 발달하여 살기편한 세상이나

우리인간 행불행을 점지하는 신있다면

그힘빌고 싶은것이 우리동매 사람마음

부모건강 자녀출세 가족화목 사업번창

갓바위의 부처님이 영험하다 만장성이

안동성지 이천동에 연미사의 미륵님도

촛불한촉 밟혀놓고 지극정성 비오시면

소원성취 금시발복 중생구제 받으리다

어화세상 벗님네요 안동자랑 하다보니

배고픔을 잊었구려


원래우리 안동사람 봉제사에 접빈객이

우리삶에 으뜸인데 우리고장 찾은손임

섭섭하게 대접하면 그일아니 부끄럽소

간고등어 숯불구이 헛제삿밥 한상차려

안동식혜 안동소주 반주로서 올렸으니

아픈다리 잠시쉬고 많이들고 더드시오

엄벙덤벙 하다보니 삼사월의 긴긴해도

서두르라 재촉하니 산태극에 수태극에

물도리동 하회마을 그곳으로 가보시더

부용대에 먼저올라 만송정에 숲을건너

하회마을 생김보소 동쪽에는 화산이요

남쪽에는 남산이라

서쪽으로 원지산이 낙동강을 감싸돌아

그가운데 우뚝솟은 연화설에 자리하니

자손만대 충신학자 정승판서 명당이라

만고충신 서애대감 임진왜란 국란만나

풍전등화 나라운명 지혜로서 구국하니

충효당과 영묘각에 옷깃여며 경배하고

기묘사원 이십이일 영국여왕 심어놓은


자랑스런 구상나무 여왕보듯 사진찍고

양전당의 대종부님 자녀훈육 살림솜씨

본받아서 익힌다면 불난세의 귀감이라

흙담길을 돌아나와 품물소리 따라가니

하회탈춤 굿판이라

선비양반 할미탈과 파계승에 부네백정

초랭이와 각시탈에 이매탈과 주지탈이

그중한탈 얻어쓰고 징울리고 북을쳐서

얼쑤덜쑤 덩더덕꿍 얼쑤덜쑤 덩더덕꿍

힘든세상 모든악재 춤사위에 날려가고

남북통일 국태민안 경제부흥 강성대국

집집마다 만사형통 부귀공명 얼쑤덜쑤

벗님들께 안동자랑 두루많이 하고싶어

정신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녀 숨이차니

잠시앉아 다리쉬고 정신차려 머리빗고

서후면이 태자이라 천등산 봉정사로

본심찾아 나를찾아 힘을내어 가보시더

의상대사 봉환하려 그봉황새 앉은터에

능인대덕 절을지어 천등사라 봉정사라


천년고찰 불교가람 대웅전과 화엄강당

국내최고 목조건물 극락전에 천배하고

아미타불 부처님께 극락왕생 축원하면

살아서는 추로지향 안동땅이 극락이요

죽어서는 서방정토 극락세계 가실테니

어화세상 벗님네요

서울대구 광주부산 대한땅이 복지이니

딸을나면 효부열녀 아들나면 효자충신

논뜰마다 풍년이요 밭둑마나 도화피는

무릉도원 안동으로 부모형제 아들손자

손에손을 마주잡고 득달같이 달려오소

자자손손 번성하고 무병장수 하올지니

앞집뒷문 소문내고 친구동창 알리어서

안동으로 어서오소

무뚝뚝한 말씨탓에 인정없다 하지마는

나물한줌 감자한알 나눠먹고 사는정을

겪어봐야 아실테니 더말하지 않으리라

제이야기 들으시고 행여안동 오시어서

저를찾아 주신다면 천등산의 금국차로

그대혼을 미혹하고 안동소주 독한술로

그대몸을 잡아매어 그대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

 


정해년 사월 청해 김 명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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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와 허수아비 / 조정희
1982년 대학가요제 6회 대상곡
나는 나는 외로운 지푸라기 허수아비
너는 너는 슬픔도 모르는 노란 참새
들판에 곡식이 익을때면 날 찾아 날아온 널
보내야만 해야 할 슬픈 나의 운명
훠이 훠이 가거라 산너머 멀리 멀리
보내는 나의 심정 내 님은 아시겠지
석양에 노을이 물들고 들판에 곡식이 익을때면
노란 참새는 날 찾아 와 주겠지
훠이 훠이 가거라 산너머 멀리 멀리
보내는 나의 심정 내 님은 아시겠지
내 님은 아시겠지

패밀리 / 정일근

 

                                         

   조심해! 자연에도 패밀리가 있다. 이딸리아 마피아나 러시아 마피아와 같은 패밀리가 있다. 자연의 패밀리란 사람의 족보로 치자면 같은 항렬자를 쓰는 형제나 사촌쯤 되는, 그러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의 족보와는 다른, 자연의 인드라망이 있다.

   동물의 왕인 호랑이와 밀림의 왕인 사자는 고양의 패밀리다. 고양이가 형이고 호랑이와 사자는 아우다. 은현리에 와서 도둑고양에게 야단을 쳐보라. 달아나기는커녕 느릿느릿 왕의 걸음걸이로 걸어가며 빤히 쳐다보기까지 하는,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배경에는 도둑고양이에게 왕이 둘이나 있는 패밀리의 '빽'이 있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흘레붙는 개에 대해 뜨거운 물을 뿌리며 방해해서는 안 된다. 늑대, 은빛여우, 너구리가 개의 패밀리다. 가끔씩 개가 하이톤의 고독한 늑대 울음소리를 흉내내는 것은 자신의 패밀리가 누구인가를 목청 높여 알리는 것이다. 그건 또 자신들의 종족번식 방식에 대해 사람 패밀리가 존중해달라는 경고방송이다.

   독야청청해서 외로울 것 같은 소나무에게도 전나무, 솔송나무, 가문비나무, 잎갈나무 같은 따뜻한 패밀리가 있다. 키 작은 벼들이 목에 힘주고 서 있는 것은 키 큰 대나무가 자신의 패밀리이기 때문이다.

   국화는 코스모스, 과꽃, 해바라기, 민들레, 쑥부쟁이, 도깨비바늘이 제 패밀리다. 놀라지 마라. 국화는 국내에 400에 가까운 패밀리가 살고 1,000에 가까운 패밀리가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다. 쉿! 더 무서운 건 그 패밀리 밑으로 20,000이 넘는 국제적인 사조직이 지금 이 순간에도 가동 중이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국화 패밀리들이 파업을 한다면 지구촌에서 꽃구경하기는 힘들 것이다.

   향기롭고 우아한 백합에게는 냄새가 고약하고 키가 작은 마늘, 양파가 패밀리다. 사람 같으면 창피해서 부정하거나 외면해버리지만 자연의 패밀리는 한번 패밀리는 영원한 패밀리다. 남극의 펭귄 부모는 영하 50도의 혹한 속에서 새끼를 살리기 위해 제 몸 아낌없이 먹이로 내주고 까마귀는 자신을 낳아 기른 어미 까마귀가 늙으면 먹이를 물어다주며 봉양한다.

   자연의 패밀리가 볼 땐 지구에 살고 있는 패밀리 중에서 부모가 자식을 쓰레기처럼 내다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동네북처럼 두들겨 패는 패밀리는, 패밀리끼리 싸우고 고소 고발하고 총질하며 전쟁을 하는 패밀리는, 이름도 고상한 호모 싸피엔스,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그 패밀리뿐이다. 문자를 가지고 시를 가지고 있다는.


                 *동식물을 분류할 때 쓰는 과(科)를 영어로 패밀리(family)라고 한다.

갈대와 억새

억새와 갈대의 차이
억새는 산과 들에 많이 자라고, 갈대는 물이 있는 곳에서 많이 자랍니다.
억새 가운데는 물가에 사는 물억새도 있기 때문에 헷갈리기 쉽습니다.
이때는 잎사귀로 구분합니다.
억새는 긴 잎 한 가운데 하얀 심이 있으나, 갈대는 그것이 없습니다.
가을이면 억새와 갈대는 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데,
그것은 꽃이 아니라 이삭입니다.
억새 이삭은 하얗고, 갈대 이삭을 붉은 기운이 감돕니다.
억새 이삭은 가지런하고, 갈대 이삭을 더부룩합니다.

구별
1. 잎에 중륵(입가운데 두껍게 발달한 심같은 것)이 발달해 있으면 억새, 없으면 갈대.
2. 줄기에 마디가 없으면 억새, 있으면 갈대.
3. 포기로 자라면 억새, 낱개로 퍼져 군락으로 자라면 갈대이다.

억새꽃과 갈대꽃
억새꽃

갈대꽃


억새꽃


갈대꽃


억새꽃


갈대꽃


물억새꽃


억새 Miscanthus sinensis Andersson
 벼과(─科 Poaceae)에 속하며 약 8종(種)의 다년생초로 이루어진 억새속으로, 영어로는 pampas grass라 하며 아시아 남동부가 주원산지이다. 키는 1-1.5m이며 화서는 부채 모양이며 비단털이 나 있다. 개화기는 9월. 보통 TV 같은데서 갈대라고 하며 자주 등장하는 식물은 갈대 보다는 억새나 물억새인 경우가 더 많다. 율랄리아 eulalia 라고 불리우는 참억새(M. sinensis)와 또 다른 2종은 은빛 또는 흰색의 깃털처럼 생긴 꽃차례를 보기 위해 잔디밭이나 가장자리의 경계를 나타내는 관상용 식물로 심기도 한다. 몇몇 변종의 잎은 노란색이나 흰색의 띠 또는 줄무늬가 있다. 말린 꽃차례는 장식용으로 쓰기도 한다. 율랄리아 풀바(E.fulva)는 오스트레일리아·말레이시아·남동아시아 등에서 사료로 중요하게 사용된다.

포천 명성산 억새














































갈대 Phragmites communis
갈대는 억새와 같은 벼과(―科 Poaceae)에 속하며 4종으로 이루어진 갈대속을 가리킨다. 갈대는 북극에서 열대지방까지 호수나 습지, 개울가를 따라 자란다. 잎이 넓은 풀로 키는 1.5~5m 정도이다. 깃털 모양의 꽃이 무리지어 피며 줄기는 곧고 매끈하다. 영어로는 리드 reed라고 하는데 물대(Arundo donax), 암모필라 아레나리아(Ammophila arenaria) 및 갈풀속(Palaris)과 산조풀속(Calamagrostis) 식물들과 같은 벼과 식물들도 리드라 하며, 벼과 식물이 아닌 흑삼릉속(Sparganium)과 부들속(Typha) 식물들 도 리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세기 동안 말린 갈대줄기는 지붕을 이는 재료나 건축 재료로, 또 바구니 세공, 화살, 펜, 악기(→ 리드 악기) 등의 재료로 이용돼 왔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갈대속 식물로는 갈대, 달뿌리풀(P. japonicus) 및 큰달뿌리풀(P. karka) 등 3종류가 있다.

갈대는 주로 습지나 냇가에서 자라는 다년생초로, 뿌리줄기의 마디에서 많은 수염뿌리가 난다. 꽃은 9월에 가지가 많이 달리는 원추꽃차례에 핀다. 수꽃에는 털이 있고 긴 까끄라기도 있어 가을 물가에서 날리는 갈대 이삭의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달뿌리풀은 갈대와 거의 비슷하나 갈대와는 달리 땅 위를 기는 줄기가 있다. 큰달뿌리풀은 울릉도 통구미에서만 자란다. 한방에서 쓰는 노근(蘆根)은 갈대의 뿌리줄기를 말린 것으로 위 운동촉진, 이뇨, 지혈 등에 쓰인다. 요즈음에는 중금속과 같은 오염물질이 유입되는 곳에 갈대를 심어 오염물질을 제거하기도 한다.

순천만의 갈대


















태화강 갈대








고흥호 갈대숲


을숙도의 석양과 갈대숲











♬ The Power Of A Love
- London Symphony Orchestra -

 



檀國大學校 天安 캠퍼스 總女學生會 招請 特講 / 朴槿惠

大韓民國의 希望은 大韓民國 안에 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렇게 따뜻하게 맞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국대 천안 캠퍼스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 중 하나라고 들었는데, 
직접 와보니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캠퍼스에서 공부하는 여러분이 행복해 보입니다 .
오늘이 제가 한나라당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첫 번째 대학교 특강입니다. 
그 동안 여러 대학교에서 특강 요청이 있었지만, 
제가 특별히 첫 특강만큼은 무조건 이 곳에서 하겠다고 계획을 잡아놓았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궁금하시죠?
지난 광복절 아침에 박정은 총여학생회장이 저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
저한테 특강 요청을 하려고 오셨다고 합니다.^^ 
저는 못 만났습니다만, 보좌 관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인터넷 뒤지고, 부동산 아저씨한테 물어보고, 
근처 아파트 경비 아저씨한테까지 물어 가면서 집에 찾아와서, 
아침부터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심지어 경비 아저씨한테 비타500까지 갖다 드렸다고 합니다.
 (웃음/박수 )
제가 그 동안 여러 가지 방법으로 특강 요청을 받았지만 
이렇게 적극적 으로 열성을 갖고 찾아온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얘기를 듣고, 
무조건 첫 특강은 단국대에서 해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저와 여러분이 만난 것은 박정은 회장님 덕분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런 회장을 뽑아 준 바로 단국대학생 여러분 덕분입니다. 
저는 우리 박정은 회장님과 여러분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박수)
저는 여러분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이렇게 순수한 마음과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젊음의 특권이고, 그것이 바로 젊음의 가능성입니다.
여러분의 희망과 가능성은 바로 여러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대학교를 찾아오니까, 
옛날 제가 학교다닐 때가 생각납니다. 
아시는 분들이 많지 않으실텐데, 
저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습니다 .
평소에 
누가 관리하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 
전자공학과 출신인 제가 남에게 맡기겠습니까?
제 보좌진들도 비밀번호 모릅니다. 
싸이질, 순전히 저 혼자 하고 있습니다. 
(환호/웃음/박수)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학교를 다녔던 70년대에는 
공대에 여학생이 드물었습니다. 
여기에 혹시 공대 다니시는 여학생 계시나요? 
(예전보다 많이 늘었네요) 
제가 처음 전자 공학과에 입학했을 때는
여학생이 딱 두 명이었습니다.  그나마 
다른 한명은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는 바람에 저 혼자 다녔는데, 
여자가 저 혼자니까, 인기 좋았겠죠? 
공대 얼짱으로 인기 좋았었습니다. 
(환호/웃음/박수)
그런데 제가 처음부터 전자공학과를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애당초  고등학교 때는 문과 였는데, 
우리나라의 미래가 전자산업에 있다는 생각에 
이과로 바꿔서 전자공학과에 갔습니다.
고등학교 때,  당시 우리나라가 수출 10억 달러 돌파를 앞두고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이제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고민하면서, 많은 전문가분들과 얘기를 나누셨는데, 
저도 청와대에 있으면서 그런 얘기를 들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 때 주목한 것이 전자산업이었습 니다. 
그 때까지 우리가 수출하던 것은 
주로 가발이나, 인형, 면직물 같은 거였는 데, 
조그만 트랜지스터 하나가 20-30달러나 하고, 
007가방 하나 분량이면 몇 만 달러나 한다고 하니까, 
당시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또 무공해 산업이고, 손기술이 좋은 우리나라 국민들한테 
아주 적합하다는 판단이 들어서 
국가적으로 전자 산업을 키우기로 결정되었는데, 
그걸 옆에서 보면서 저도 산업역군이 되어서 
나라에 기여하려고 전자공학을 선택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전자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에 있지만, 
당시에만 해도 정말 우리 손으로 tv를 만들고 냉장고, 세탁기를 만들어서, 
그걸 수출한다는 게 꿈같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꿈 만 같던 일들이 지금 현실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못 살던 나라가 지금 세계 11위의 경제규모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대학생들을 보면 , 
그 때 대학생들보다 훨씬 힘들어하고, 자신감이 많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저희 때만 해도 대학교 다닐 때, 대학생활의 낭만을 만끽해도 
졸업하면 취직할 곳이 많아서 원하는 곳을 골라갔었는데, 
요즘은 이력서를 수십 장 내도, 면접 한 곳 보기가 힘들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여학생들은 더 어려움이 큰 거 , 잘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고, 어떻게 하면 새로운 희망을 찾 을 수 있는지, 
오늘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여러분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오늘 특강제목을 ‘대한민국의 희망은 대한민국 안에 있다’로 잡았습니다. 
여러분의 희망도 저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선배 가운데, 오승환 선수가 있죠? 아시아 최고의 마무리 투수이고, 
올해 프로야구에서 47세이브로 아시아 신기록을 세운
정말 자랑스러운 선수입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큰 활약을 해 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승환 선수는 그런 최고 선수가 되기까지 
야구선수로 겪을 수 있는 시련은 다 겪었다고 해도 정말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부상을 당해서 선수 생활을 그만 둘 뻔 했고, 
이 곳 단국대에 들어와서도 또 부상을 당해서 2 년 동안 아예 뛰지도 못하다가, 
4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공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보통 선수 같으면 포기하고 말았을 텐데,  오승환 선수는 포기하지 않았 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재활 훈련에 피땀을 쏟 았고, 
결국 오늘의 오승환 선수로 우뚝 섰습니다. 
자기 자신 안에 있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저 역시도 그 동안 살아오면서 수많은 시련과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총탄에 돌아가셨을 때,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되지 않아서 다시 아버지까지 또 그렇게 보내드려야 했습니다. 
정말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럽게 느껴졌던 시간이었습니다.
누구나 살면서 서로 다른 종류의 시련을 겪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자기가 겪는 시련이 가장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가족에서 태어났더라면’이라 는 제목의 수필집까지 냈습니다.
읽어보신 분 없지요? 많이 팔리지는 않았습니다. 
그것도 저에게는 시련이었습니다.
우리 한나라당도 지금은 50%에 가까 운 지지율을 얻고 있지만, 
그 동안 수많은 시련과 좌절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혹시 컨테이너 하우스에 살아보신 분 계십니까?
잘 모르시겠지만, 
컨테이너 하우스는 4월까지는 겨울이고, 5월부터는 여름입니다. 
4월 까지는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춥다가, 
5월부터는 정말 찌는듯이 덥습니다. 
바람도 안 통하고, 냄새와 먼지가 진동을 합니다. 
저와 저희 한나라당은 그런 컨테이너 하우스에서 살았습니다.
그때가 천막당사 시절인데, 당시 저희 한나라당 지지율이 7%였습니다. 
탄핵 역풍 때문에 당이 없어질 지도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당대표를 맡을 때 주변의 많은 분들이 말렸습니다. 
저라고 왜 걱정을 안 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나부터 변화하고, 우리부터 변화하면 
국민들께서도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어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전국을 돌면서 하도 악수를 많이 했더니 
손이 아파서 붕대를 감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왼손으로 악수를 하면서 다녔습니다. 
그 때 다친 손목을 최근에 또 다쳐서 지금 이렇게 깁스를 하고 있는데, 
저는 그때 우리 국민들을 보면서,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정책정당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국 곳곳의 민생현장엘 다녔습니다. 
대표로 있으면서 총 155회 민생현장에 갔습니다. 
나갈 때마다 국민들 말씀을 수첩에 꼼꼼하게 적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국민들께서도 반신반의하셨고, 
우리 한나라당 내에서도 그런 많은 약속들을 지킬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수첩을 보면서 
당의 담당자에게 어떻게 조치했는지 확인하고, 끝까지 챙겼습니다. 
처음 수첩에 적을 때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하나 둘 풀리는 것을 보면서 
저도 힘을 얻었고, 당직자들도 보람을 느꼈습니다. 
저보고 ‘수첩공주’라고 놀리는 분들도 있는데, 
이런 수첩 공주는 괜찮지 않나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저희 한나라당은 그동안 호남 에서 사랑받지 못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호남을 방문할 때도 주변에서 
‘그런다고 호남에서 표 나오겠느냐?’, 
‘그 시간에 차라리 영남엘 한 번 더 가라’고 말씀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당장의 표가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지역으로 갈라져 있어야 합니까?
저는 대표로 있는 동안 호남을 17번 찾아갔는데, 
앞으로도 계속 기회만 되면 찾아뵐 겁니다. 
저한테는 조금씩 희망이 보입니다. 
얼마 전 보궐선거에서 한나라 당이 호남에서 무려 8.2%의 지지를 받았는데, 
저는 언젠가는 우리도 서로 화합하고, 
지역주의 같은 것도 다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희 한나라당 지지율이 7%에서 50%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한나라당 안의 변화가 그 시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이제 한나라당은 끝이라고 주저앉았더라면, 
오늘의 한나라당은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 계신 여러분도 
모두 각자의 고민과 어려움이 많으실 것입니다. 
취업이 가장 큰 고민인 4학년 학생도 계실 것이고, 
속만 썩이는 애인이 고민인 학생도 계실 겁니다.
해답을 찾기 위해 책도 보고,  친구들이나 선생님과 의논도 하고, 
심지어는 점도 보러 다니고 하실 겁니다. 
그렇지만 결국 어떤 경우에도 시련의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열쇠는 
바로 자기 자신 안에 있습니다.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자기 안에서 희망을 찾을 때,  
희망의 문은 반드시 열릴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희망이 우리 안에 있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희망도 결국은 대한민국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혹시 여러분,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하거나 
새로 탄생한 나라가 몇 개인지 아십니까? 85개국입니다.
그러면 이 85개국 가운데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나라가 몇 개나 되는지 아십니까? 
딱 하나입니다. 바로, 우리 대한민국입니다.
전쟁까지 겪고, 나라가 분단까지 되었지만, 
전 세계에서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기적의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입니 다.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힘은 
전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나라에서 지금 일자리 걱정이나 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여러분들이 노력을 안합니까? 
절대 아닙니다.
전세계 고등학생 가운데 가장 공부를 많이 하는 학생들이 
우리나라 학생들입니다 . 
학교만으론 부족해서 새벽까지 학원엘 다닙니다. 
대학에 와서도 1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하고, 
4년 내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실험실에서 밤새는 것이 
우리 대학생들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확신하건데, 
전 세계 어느 나라 젊은이들 보다도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 살고 있고, 그만큼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취직 걱정을 해야 하고, 좌절을 겪어야만 합 니까?
문제는 딱 하나, 결국 국가 리더십의 문제입니다.
국민들은 21세기에 맞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국가의 리더십이 이런 능력이 발휘되도록 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전자공학과 출신이라 컴퓨터로 설명해보겠습니다.
펜티엄 듀얼코어 프로세서에 300기가 하드를 갖춘 최신형 컴퓨터라면 
컴퓨터를 운용하는 os도 윈도우 xp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 컴퓨터의 os가 dos 라면 
아무리 포토샵, 한글 2007같은 최신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어도, 
컴퓨터 자체가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저는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이 이렇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적 하드웨어도 충분한 수준에 도달해 있고, 
국민 개개인의 역량도 최고의 수준인데, 
정작  이것을 움직일 os만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바로 국가적 리더십의 문제, 지도자의 문제입니다.
우리 대한민국과 국민들은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가 무한 성장의 가도를 달릴 때, 
저는 그것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어떻게 하니까 우리 국민들이 똘똘 뭉쳐서 일어났는지, 
그리고 국민 모두가 잘 살아보자고 일어섰을 때, 
우리가 어떤 기적을 일구어냈는지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다시 
그 힘을 우리 속에서 끄집어 낼 수만 있다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은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국가의 몫이며, 지도자의 책임 입니다.
저는 이제 여러분이 희망을 찾고,  우리나라가 희망을 찾기 위해서, 
새로운 국가적 리더십을 만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어떤 것입니까?
제가 한나라당 대표를 처음 맡았을 때였습니다.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아날로그 정당이었습니다. 
홈페이지 방문객이 열린우리당의 반도 안 되었습니다.
제가 대표에 취임하면서 
‘디지털 정당’을 만들겠다고 하니까 모두 웃었습니다. 
‘디지털, 인터넷, 사이버, 이런 것들은 열 린우리당이나 하는 거지, 
한나라당은 안 된다.’는 생각들이 지배적이었습니다 .
저는 우리 스스로의 가능성을 비하하는 
그런 생각이 정말 싫었습니다.
왜 해보지도 않고 지레짐작으로 포기부터 하려고 합니까?
그래서 디지털위원회를 만들어서 
1주일에 한번 씩 회의를 하도록 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센 티브까지 주면서 독려했습니다. 
저부터 싸이질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그 한나라당이, 방문객수, 콘텐츠, 게시판 운영까지, 
인터넷에서 압도적 1위입니다.
저는  리더가 방향을 잘 잡고,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얼마 든지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지도자가 정확하게 시대의 흐름을 읽고, 
사심없이 솔선수범한다면, 얼마든지 재도약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그동안 발전해오는 과정에서 
흔히 ‘산 업의 쌀’로 표현되는 중요한 핵심이 몇 가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산업의 쌀은 ‘땀’ 이었습니다. 
농경사회에서는 무언가 수확을 얻고, 발전 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땀 흘리는 것이 제일 중요했습니다.
두 번째 산업의 쌀 은 ‘철’ 이었습니다. 
자동차, 조선, 기계 등 모든 산업은 철을 기반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세 번째 산업의 쌀은 ‘반도체’ 였습니다. 
컴퓨터와 각종 정보통신 기기들이 모두 반도체를 기반으로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네 번째 쌀을 준비해 야 할 때입니다. 
저는 우리의 네 번째 쌀은 바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에 국가경쟁력의 원천은 지식과 정보이고, 이제는 사람이 경쟁력입니다.
건설이나 공장만으로 국민을 먹여 살리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자동차 수백 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는 부가가치를 올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한류 열풍으로 우리가 얻은 가장 소중한 소득은 
아시아에서 한국이 일류 국가라는 인정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드라마 한편, 영화 한편의 수익으로 끝나지 않았고,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을 일류로 인정받게 만 들었던 것입니다. 
문화와 지식이 산업을 이끈 현장인 것입니다.
앞으로는 사람한테 더 투자하고, 
사람의 경쟁력이 국가경쟁력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지는 창의력을 극대화시켜서 
그것을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삼을 때, 
비로소 우리나라도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그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리더십과는 다른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정부가 나서서 이것저것 지시하고 이끌어가면서, 
국민들을 먹여 살리겠다고 나서는 식으로는 더 이상 안 됩니다.
기업과 국민들이 각 자 가지고 있는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민간의 자율과 창의성을 최대한 북돋워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모든 것을 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나라가 오히려 거꾸로 간다는 것은 현 정부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께서 도서관에서, 실험실에서, 강의실에서 땀 흘리는 노력들이 
절대로 헛되지 않고, 그것이 온전히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저부터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입니다!
이제, 조금 더 현실적인 말씀들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 요즘 당장 눈앞의 취직도 걱정일테고, 
조금 더 길게 보면 결혼 문제라든가, 육아 문제라든가, 
치솟는 집값까지 걱정스럽지 않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걱정의 반은 나라의 책임입니다.
나라가 부강하고 바로 서면,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들이 더 많습니다.
당장 취직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지금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아르바이트로 하루하루 보내는 사람 들도 많고, 
졸업을 늦추려고 휴학을 하고, 대학원에 가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면, 나라가 어떻게 해야 여러분들이 일할 수 있는 직장이 늘어나겠 습니까?
첫째,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기업이라는 것을 명심 해야 합니다. 
일자리는 정부가 세금 거둬서 만들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투자확대 를 통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정부가 국민세금을 쏟아 부어서 사회적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약 2천억원을 써서 약 2,800여명이 취업을 했는데, 
일자리 한 개 만드는데 평균 7천만원이 든 셈입니다. 
그렇게 만든 일자리가 대부분 저임금, 비정규직입니다. 
차라리 직접 돈을 주느니만 못한 결과 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지금 일본이 10년 불황을 마치고, 경제가 살아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일자리도 늘어나서 
지금 일본 대학생들은 회사를 골라 서 가고 있습니다. 
취업률이 95%나 된다고 합니다. 얼마나 부러운 일입니까?
그동안 정부에서 직접 돈을 쓰던 정책을 바꿔서 
기업들이 앞장서도록 규제를 없애고 감세를 하고, 
정부 몸집을 줄인 결과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습 니다. 
정부부터 다이어트해야 합니다. 
핸드폰도 슬림으로 가는데, 정부만 비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처럼 온갖 규제와 간섭을 하고, 
세금과 반기업 정서로 손발을 묶는다면, 투자도 안되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둘째는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일입니다.
아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에게 
가장 들어가고 싶은 기업이 어디냐고 물어보면,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최대 기업인 삼성이라고 대답을 하실 겁니다.
월급도 많이 주지만, 삼성에 근무한다는 것 자체로 개인의 가치가 올라가고, 
삼성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환영받 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경력직 취업 시장에서도 삼성 출신들이 가장 환영받습니다.
21세기는 글로벌 시대입니다. 
여러분의 일자리가 한반도에 국한될 수도 없고, 
국한되어서도 안 되는 시대입니다. 일본으로, 유럽으로 미국으로, 
여러분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이 계속 확대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이 무엇이 겠습니까?
삼성 출신이 국내에서 대접을 받듯이, 이제 대한민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세계의 기업들에게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과거 여러분의 아버지, 어머니, 선배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차가운 대접을 받 아야만 했습니다. 
코리아가 어디에 있는 나라냐는 질문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최소한 그런 시절은 지났습니다. 
앞선 세대의 피와 땀이 만 들어놓은 결과입니다.
이제 21세기를 살아야 할 여러분들은 
세계 각국에서 가장 기술이 뛰어난 인재들, 
가장 창의적이고, 가장 성실하게 일 잘하는 사람들로 인정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가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다음 정부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서, 
우리 젊은 이들이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가장 인정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대한민국 축구가 4강에 오르자, 
전 세계의 스카우터들이 한국 선수들을 주목했듯 ,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면, 
당연히 세계의 기업들은 한국의 인재들에게 눈을 돌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안에 숨어있는 희망을 찾는 길’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지금껏 노력을 많이 해오셨지만,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더욱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께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했을 때, 
국가가 여러분의 미래를 열어드릴 수 있는 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그러려면 더 이상 정치가 국민을 실망시켜서는 안될 텐데, 
참 마음이 무겁습니다. 
사실은 저도 
우리 정치 때문에 실망을 하고 상 처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년 정월 대보름날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큰 달맞이 행사가 있어서 
기차를 타고 내려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긴급 의원총회가 열려서 
대전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정말 실망이 컸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부산 행사장 제 옆자리에 앉기로 되어있던 사람이 
바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동건씨였거든요.
악수도 하고, 같이 사진도 찍어야지 하면서 기대가 컸었는데, 
못 만나게 되니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참 정치가 싫었습니다.
우스개소리로 드린 말씀이지만, 
실제로 우리 정치가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많이 드리고 있죠?
정치가  국가와 국민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기준이 국민에게 맞춰져야만 합니다. 
국민과의 약속 이 중요한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제가 대표가 되고 나서 
첫 어린이날에 저는 전국 미아실종 가족찾기 시민모임을 찾아갔습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캠페인도 벌이고, 실종 아동을 찾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약속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시 스템을 만든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한나라당 의원들이 각국의 입법례를 검토하고, 우리 현실을 조사하고, 
꼬박 1년 동안 준비를 해서 2005년 5 월 3일에 실종 아동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그 날 국회에 실종아동 부모님들께서 오셔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런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니까, 작년 한해 2,695건의 미아신고가 접수됐지만, 
아이들 모두가 며칠 만에 부모님 품으로 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제도적 장치 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제도를 만들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이 지켜졌을 때, 
얼마나 많은 분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당 사상 처음으로 
대국민 공약 실천 백서까지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국민과 했던 약 속들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실천해가고 있는지 고백하는 책이었습니다. 
지금 까지 민생 탐방의 약속이 40% 정도 실천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앞으로 100% 가 될 때까지 실천해가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들이 정치의 신뢰를 회복하고, 정치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드리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제 수첩에는 민생탐방에서 들었던 아픈 사연들이 많이 적혀 있습니다. 
그 약속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수첩을 들여다봅니다.
아마 오늘도 여러분께서 저한테 많은 것들 을 말씀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제 수첩에 그만큼 또 약속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약속들은 반드시 지켜질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정치에서 희망을 발견하 실 수 있도록, 
여러분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우리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진 민족입니다. 
아니, 애당초 불가능이라는 것이 없는 민족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희망은 바로 우리 대한민국 안에 있고, 
그 희망의 원천은 바로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들입니다.
여러분이 나라의 희망이고, 가족의 희망이고, 
학교의 희망이면서, 저에게도 희망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을 만나서 
제 가슴속에 또 다른 희망을 안고 돌아갑니다. 
정말로 여러분과의 만남이 소 중하게 느껴집니다.
여러분은 이제 제 가족입니다. 
여러분도 저를 언니처럼 이모처럼 생각해 주시고, 
어려운 일 있을 때면 제 싸이에 사연도 올려주시고, 
이메일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성심성의껏 제가 할 수 있는 대답도 해드리고, 
여러분의 마음을 읽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긴 시간 경청해주셔서 정말 고맙 습니다.
                                  朴槿惠

 

제5회 육사시문학상 시상식 및 기념행사 사진 / 081010

 

 

제5회 육사시문학상 시상식 및 기념행사가

10월 10일 대구경북 TBC 방송국 주최로

안동 이육사문학관에서 열렸습니다.

제5회 육사시문학상 수상자와 수상 작품은

본상 정희성(63. 경남 창원)시인님의 '돌아다보면 문득'과 

젊은시인상 신용목(34. 경남 거창)시인님의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였습니다.

 

(안동 이육사문학관 시상식장)

 

 

이육사님의 따님이신 이옥비여사(오른쪽)와 사단법인 이육사문학관 초대관장님이신 조영일시인님(왼쪽)

 

시상식에 참석하신 내빈들

 

 

 

이육사 시 '노정기'와 '절정'을 낭송하는 시낭송가 정영옥님

 

 

 

본상수상자 정희성님의 '꼬리를 자르면 날개가 돋을지'와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안다'를 낭송하는 시낭송가 김미숙님

 

 

 

젊은시인상을 수상한 신용목님의 시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와 '틈'을 낭송하는 시낭송가 오지현님

 

시낭송가 김미숙님과 정영옥님

 

젊은시인상을 수상한 신용목시인님

 

본상 수상자인 정희성시인님

 

참석하신 내빈님들

 

수상자와 조영일선생님, 안동의 여류문인 김명자시인, 김연자시인, 김경숙시인, 김필녀시인

 

신용목시인의 수상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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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시인님의 수상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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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어느 멋진 날에 / 조수미, 김동규 ♬

 

낙엽 - 구르몽 / 배경음악 - 이브몽땅의 고엽
 
 
가을이면 누구나 한번 쯤은 암송해보는 시와 콧노래로 흥얼거리는 음악입니다
 

      낙 엽 / 구르몽

       

       

      시몬 나뭇잎이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은 너무나도 부드러운 빛깔,
      너무나도 나지막한 목소리

      낙엽은 너무나도 연약한 땅 위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황혼 무렵 낙엽의 모습은 너무나도 서글프다.

      바람이 불면 낙엽은 속삭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 여자의 옷자락 소리.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오라 우리도 언젠가 낙엽이 되리라.

      오라 벌써 밤이 되고 바람은 우리를 휩쓴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이브몽땅-'고엽"

             

 




Yves Montand - Les Feuilles Mortes 
가사 : 쟉끄 프레베르의 시(Poeme de Jacques Prevert)


Oh ! je voudrais tant que tu te souviennes
오! 나는 그대가 기억하기를 간절히 원해요
Des jours heureux ou nousetions amis
우리가 정다웠었던 행복한 날들을
En ce temps-la la vieetait plus belle
그 때 그시절 인생은그렇게도 아름다웠고
태양은 오늘보다 더 작열했었지요
Les feuilles mortes se ramassenta la pelle
낙엽이 무수히 나뒹굴어요
Tu vois, je n'ai pas oublie...
제가 잊지못했다는 것 ,당신도 알고 있지 않나요!

Les feuilles mortes se ramassenta la pelle
낙엽이 무수히 나뒹굴어요
Les souvenirs et les regrets aussi
추억과 후회도 마찬가지로
Et le vent du nord les emporte
그리고 북풍은 낙엽들을 실어나르는군요
Dans la nuit froide de l'oubli.
망각의 싸늘한 밤에
Tu vois, je n'ai pas oublie
당신이 알고 있듯이 , 난잊지 못하고 있어요.
La chanson que tu me chantais.
그대가 내게 들려주었던 그 노래를

C'est une chanson qui nous ressemble.
그건 한 곡조의 노래예요, 우리와 닮은
Toi, tu m'aimais et je t'aimais
그대는 나를 사랑했고, 난 그대를 사랑했어요
Et nous vivions tous deux ensemble
그리고 우리 둘은 함께 살았지요
Toi qui m'aimais, moi qui t'aimais.
나를 사랑했던 그대, 그대를 사랑했던 나
Mais la vie separe ceux qui s'aiment,
그러나 인생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갈라놓아요
Tout doucement, sans faire de bruit
아무 소리 내지 않고 아주 슬그머니
Et la mer efface sur le sable
그리고 바다는 모래 위에 새겨진
Les pas des amants desunis.
헤어진 연인들의 발자국들을 지워버려요.

Les feuilles mortes se ramassenta la pelle
낙엽이 무수히 나뒹굴어요
Les souvenirs et les regrets aussi
추억과 후회도 마찬가지로
Mais mon amour silencieux et fidele
하지만 은밀하고 변함없는 내 사랑은
Sourit toujours et remercie la vie.
항상 미소 짓고 삶에 감사드린답니다
Je t'aimais tant, tuetais si jolie.
너무나 그대를 사랑했었고 그대는 너무도 예뻤었지요
Comment veux-tu que je t'oublie ?
어떻게 그대를 잊을 수 있어요?

En ce temps-la, la vieetait plus belle
그때 그시절인생은 그렇게도 아름다웠고
Et le soleil plus brulant qu'aujourd'hui
태양은 오늘보다 더 작열했었지요
Tuetais ma plus douce amie
그대는 나의 가장 감미로운 친구였어요
Mais je n'ai que faire des regrets
하지만 나는 후회 없이 지내고 있어요
Et la chanson que tu chantais
그리고 그대가 불렀던 노래를
Toujours, toujours je l'entendrai !
언제나 언제나 듣고 있을 거예요
샹송 불후의 명작으로 시인 자크 프레벨의 시에 조셉 코스마가 작곡한 곡으로 원래 1945년 발레 '랑데부'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었으나, 1946년 마르셀 까르네 감독의 영화 '밤의 문'에서 이브 몽땅이 직접 불러서 유명해진 샹송의 명곡으로 요즘에도 가을만 되면 전세계의 라디오 방송에서 많이 흘러 나오고 있습니다.

차거운 북풍이 불어와
내 맘을 망각의 밤으로 몰아갈 때면
내 가슴속은 추억과 회한으로가득차곤 합니다.
그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까?
내가 당신을 위해 불러 주었던 그 노래들을 ...
이제 뜨겁던 태양의 열기도 식고
낙엽지는 가을만 남아
바닷가에 남긴 발자국들을
파도는 말없이 지우고 갑니다.

 


이브 몽땅 (Yves Montand) (1921~1991)


그는 샹송 가수보다는 영화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한 때는 에디뜨 삐아프의 연인이었으며 그녀로 인해 진정한 샹송스타가 된 그는 1946년 마르셀 까르세의 '밤의 문'에서 고엽(Les feuilles mortes) 을 부르면서 일약 스타의 자리에 올라섰다.
이 곡은 원래 프랑스 시인 쟈끄 플로베르의 시에 영화음악의 작곡자였던 조제프 코스마가 곡을 붙인 것이다. 처음엔 발레음악으로 사용되다가 영화의 주제곡으로 쓰이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노래는 과거의 사랑에 대한 추억과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회한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사랑하던 이와 영혼과의 만남을 절실히 기원하는 마음이 담긴 곡이기도 하다

봉화우체국 작은갤러리의 시화전 작품과 시낭송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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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ttre D'Automne (가을편지) / 전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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