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에
김필녀
화려한 원삼자락
봄바람에 휘날리며
예쁜 궁녀들 거느리고서
넓은 후원으로 꽃구경 나온
왕비마마가 되어 본다
당파싸움 권력다툼의
깊은 소용돌이 속에서
구중궁궐 높은 담 넘어 사는
평범한 아낙네를 그리워하는
대비마마도 되어 보았다
산해진미 수라상이 아니라도
한 줄의 시를 쓰며
내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이름 없는 시인으로 사는 것이
높은 벼슬 큰 부를 얻지 못해도
궁궐 속 여인네들보다
행복한 삶이라는 것을
반백년 살아 온 어느 봄날에
희끗한 귀밑머리 쓸어 넘기며
고궁 속 꽃그늘 아래서 깨달았네
070413 / 창덕궁 부용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