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녀의 삶과 문학/김필녀의삶의뜨락

[스크랩] 소백산 죽령을 다녀왔어요 / 070606

아정 김필녀 2007. 6. 7. 19:26

소백산 죽령사진 모음
새벽 6시에 안동에서 출발해서 7시에 인삼밭에 도착해
12시까지 열심히 일을 하고 풍기온천으로 해서 죽령을 들려
6월의 싱그러운 바람을 마음껏 쐬고 왔습니다...^^





(죽령 주막...)


(죽령 옛길...^^)





(영주에서 죽령을 넘으면 충청북도...^^)
    위 치 :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일대 개 요 : 소백산맥을 넘는 죽령은 문경새재와 추풍령 등과 함께 영남의 삼관문의 하나이고, 그 중 으뜸으로 손꼽혀 왔다. 소백산 제 2연화봉과 도솔봉이 이어지는 잘록한 지점을 정상으로 해발 689m를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아달라왕(阿達羅王) 5년(158년) 3월에 열린 것으로 기록되고 있고, 동국여지 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에 죽죽(竹竹)이 죽령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殉死)했고, 고 갯마루에는 죽죽을 제사하는 사당(竹竹祠)이 있다고 했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와 온갖 애환이 굽이굽이 서려있는 죽령은 삼국시대 한동안 고구려와 신라가 대치해 불꽃튀는 격전을 펼치기도 했다. 고구려가 죽령을 차지한 것은 장수왕 때인 서기 470년경이며, 그 후 신라 진흥왕 12년(5 51년)에 신라에 복속되자, 영양왕 1년(590년)고구려 명장 온달(溫達)장군이 왕께 자청하 여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등의 기록(삼국사기)과 함 께, 소백산 북쪽 자락에 온달산성이 전해오고 있다. 이후에도 영남 내륙의 여러 고을이 서울 왕래를 모두 이 길을 거쳐야 해, 나라의 관리들 은 물론, 온갖 물산이 보부상들의 등에 업혀 이 고갯길을 넘나들었다. 그래서 고갯길 양 쪽의 단양과 청풍, 영주와 풍기 등지에는 길손들의 숙식을 위한 객점, 마방들이 들어섰 고, 이들 장터는 늘 성시를 이루곤 했다는 것이다. 줄잡아 2천여년 유구한 세월에 걸쳐 영남 내륙을 잇는 동맥의 역할을 해온 이 길이 2001 년 터널이 뚫리면서 이제 다시 호젓한 옛 모습을 되찾은 것 같다. 더욱이 그동안 숲 덩굴에 묻혀있던 그 옛날 오솔길을 영주시에서 옛 자취를 되살려 보존 하자는 뜻에서 1999년 5월 이 길(2.5km)을 다시 뚫어, 안내판과 함께 단장을 마쳤고, 새 터널까지 열려, 시대를 달리 하는 3가지의 길 모습들이 각각 다른 모습으로 역사의 뒤안 길을 장식하게 됐다. 이같은 내력을 되새기며 넘는 맑고 한적한 죽령고개는 두고두고 멋진 고갯길 드라이브코 스로 남았으면 한다. 주변관광지 : 부석사, 소수서원, 소백산풍기온천, 소백산 국립공원, 희방사 및 희방폭포, 죽계구곡, 초암사, 비로사 등
♬ 내가 만일 / 안치환 ♬
출처 : 독서논술지도사 김필녀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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