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정 김필녀 2007. 12. 25. 21:14

성탄절 풍경


김필녀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다가왔다. 성탄절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그래도 70년대를 청춘의 피 끓던 시절로 살았던 사람들이 보냈던 성탄절이 더 낭만적이고 추억에 남는 일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은 교회에 다니지 않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던 나로서는 성탄절에 얽힌 추억들이 참 많다. 통금이 있었던 시대였던 만큼 일 년에 한 번, 성탄절 전야는 통금이 해제되었으니 어떤 젊은이가 곱다시 집안에 있었겠는가. 나 역시 중, 고등학교 시절 12월이면 성탄절 행사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학교를 마치면 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성가연습도 하고 연극연습도 하면서 성탄절을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했던 첫사랑을 혼자서 가슴 졸이며 몰래 지켜볼 수 있었으니 어찌 그 시절 성탄절을 잊을 수가 있겠는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그 시절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성탄전야에 교인들이 사는 집을 돌아다니면서 집 앞에서 새벽송을 불러주었다. 새벽송이 끝나면 단팥죽을 준비했다가 대접하는 가정도 있었고, 따끈한 오뎅 국물이나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 놓고 대접하는 가정도 많았다. 그리고 새벽송을 하는 학생들과 청년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파티를 하라며 과일이며 과자 등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서 한 보따리씩 싸서 주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힘센 청년부 오빠들이 미리 커다란 자루를 준비했다가 그 음식들을 자루에 담아서 메고 다니기도 했다. 살을 파고 드는 한겨울 새벽이었지만 추운 줄도 모르고 마냥 즐겁고 행복한 성탄전야였던 기억이 난다. 누구에게나 다 행복한 성탄전야였겠지만 나에게는 좋아하던 첫사랑의 등 뒤를 가슴 설레며 마냥 따라 다녔으니 더욱더 행복했으리라 생각해본다. 다시는 그런 아름다운 시절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짠하지만,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내 아들 딸이 그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가슴이 뿌듯하기도 하다.

 

  성탄전야인 어제는 내가 먼저 집을 떠나 직장을 다니고 있는 딸내미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아들한테 일치감치 성탄절 축하메시지를 보내면서 딸내미 남자 친구와 아들내미 여자 친구한테도 메시지를 곁들여서 보냈다. 오늘은 큰댁 질부들한테도 선물이 아닌 성탄축하 메시지를 한 통씩 보냈다. 고마워하는 답장이 줄줄이 왔다. ‘먼저 받기를 바라지 말고 먼저 주면 되돌아온다.’라는 작은 실천이 혼자 조용하게 보내고 있는 성탄절을 기분 좋은 날로 만들어 준 셈이었다.

  며칠 전부터 이번 성탄절에는 생크림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남편한테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어제 성탄전야도 잊어버렸다며 빈손으로 들어왔다. 오늘은 점심 약속이 있다며 혼자서 싱글벙글 하면서 나갔으니 집에 돌아올 때는 꼭 사 들고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몇 년 전에 조기 명퇴를 해서 자기와의 싸움을 하면서 참 힘들어 하던 남편이 요즘에는 사무실 비용을 아낀다면서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열심히 자기 일을 하고 있어서인지 얼굴에 생기가 돈다. 언젠가는 퇴직을 하는 모든 남편들이 겪어야 하는 과정인데 ‘매도 먼저 맞는 사람이 낫다.’고 이제는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늘 곁에서 지켜보면서 술친구도 되어 주고, 말동무도 되어 주면서 내가 좋아하던 테니스를 과감하게 접기도 했다. 그 대신에 남편과 함께 산에도 같이 다니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던만큼 지금의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나름대로 잘 극복해 나간 것 같아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다고 한다. 남편도 아이들도 다 잘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한해를 조용히 마무리 짓고 싶다. 나 또한 방학이 시작되면서부터 학원에서 방학특강이 시작되어 더 바쁠 것 같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여태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의 방향도 한결같이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부족한 가운데 열심히 시를 쓰면서 살고 싶다. 연말에 문인단체에서 받은 책들이 여러 권 쌓여 있다. 성탄절 오후는 그 책들을 읽으면서 보내야겠다. 남편이 사올 생크림 케이크를 기다리면서......,

 

071225 / 성탄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