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落花)
이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激情)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落花)……
결별(訣別)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訣別),
샘터에 물 고이 듯 성숙(成熟)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시집 '별이 물 되어 흐르고'(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