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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춤에 반해 호주에서 온 레즐리 버클리(글/김필녀-시인)
아정 김필녀
2008. 12. 9. 00:19
탈춤에 반해 호주에서 온 레즐리 버클리(글/김필녀-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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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들판은 황금물결로 넘실거린다. 안동사람들 인심도 다른 계절보다 더 넉넉해진다. 해마다 가을이면 안동은 국제적인 잔치를 벌인다. 이제 안동은 외국인들과 외지인들에게 ‘안동국제탈춤페스티발’로 더 유명해진 도시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축제가 중반으로 접어들어 더욱 열기를 더해가는 날 오후에 탈춤축제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낙동강 둔치에 넓게 마련해 놓은 주차장은 북적였다. 겨우 차를 주차하고서 탈춤공원에 도착했다. 외국인들도 눈에 많이 띄었고, 그날은 때마침 안동시 동, 면 대항 풍물놀이 경연대회가 있어서인지 촌로들의 모습도 많이 보였다. 그리고 체험학습을 하러 온 유치원, 초등학생들이 여러 가지 체험도 하고 탈춤을 따라 배우느라 모두가 싱글벙글이었다. 그러고 보면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국내외는 물론이고 남녀노소를 막론한 잔치임에 틀림이 없다. 그 축제장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외국인이 있었으니 그이가 바로 호주에서 온 레즐리 버클리(Lesley Buckley,58) 씨다.
레즐리 버클리의 10주간의 안동체험 호주 트위드에서 온 레즐리 씨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과 한국 문화를 알기 위해 민간교류 차원에서 10주간 (재)안동축제관광조직위원회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호주에서는 지방정부 문화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나라와 문화교류 및 파트너십을 추진하는 기관의 추천으로 안동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늘씬한 키에 은발, 파란 눈을 가진 레즐리 씨의 표정은 우리나라로 치면 환갑인 나이임에도 무척 활발하고 생동감이 넘쳐보였다. 레즐리 씨를 만나기로 한 날은 축제가 중반으로 접어든 무렵이었다. 사무실은 시장에 들어선 것처럼 어수선했다. 많은 손님과 행사 준비로 바쁜 직원들이 수시로 들락날락했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민망할 정도로 바쁜 시간이었지만 통역을 맡아준 탈춤사무국 김주호 팀장과 레즐리 씨를 이때 아니면 언제 쉬게 해주냐 싶어 척하니 자리를 잡았다. 시끌벅적함으로 인해 다른 때보다 목청을 높여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했지만, 그녀의 야무진 모습과 부드러운 음색은 통역을 거치지 않아도 온화한 기운이 느껴졌다.
레즐리 씨는 작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 참여했다가 굉장히 강한 인상을 안고 호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번이 다섯 번째 한국 방문인데 남편이 한국에서 7년간 영어 강사로 일한 경험이 있어 더욱 친근한 느낌으로 안동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호주에서의 직업을 십분 살려 짧은 기간이지만 안동에서 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었다. “이번 교환 근무를 통해 안동의 문화를 공부하고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만들어진 계기와 세계적 축제로의 도약 등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요.” 호주에서는 65세가 정년이다. 우리 나이로 67세까지 일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마련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정년이 너무 이른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 해보게 되었다. 호기심도 많고 관심 가는 것도 많은 레즐리 씨는 열정에는 나이가 많고 적음이 필요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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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축제인 이유를 알겠어요” 이번 축제에서 레즐리 씨는 영문 팸플릿 제작에서부터 번역, 영문 설문서 설계, 국제학술대회 진행, 세계 탈 전시회, 영어권 외국인사 안내 등을 담당하며 맹활약하고 있었다. 또한 호주에서 하고 있는 일과 연관해서 문화정책, 프로그램 계획, 이벤트, 관광과 경제발전을 위한 마케팅, 예술가와 문화기획의 컨설턴트 등 다양한 분야의 컨설팅을 담당하기도 한다고 했다. “탈춤페스티벌을 맡은 모든 분들의 헌신적이고 전문적인 준비과정을 보며 왜 이 축제가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선정되었는지 알 수 있었어요.” 문화기획 전문가의 눈에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멋진 행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안동에서의 짧은 근무이지만 그녀는 많은 자료를 통해 사전에 안동을 공부하고 왔다고 말했다. 이제 국제적인 축제가 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서 외국인들이 레즐리 씨에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무엇일까. “자료 수집을 위해 설문지를 만들어서 사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제가 더 외국인들한테 질문을 더 많이 하는 편이죠.” 외국인들은 탈춤페스티벌의 대부분의 프로그램에 호감을 갖는 편이고 특히 탈춤 따라 하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좋아한다고 한다. 안동의 음식들도 좋아해서 많이 질문하는 내용 중 하나라고 한다. 싱가포르를 비롯해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다녀본 그녀이지만 한국 특히 안동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비할 바가 못 된다. 이번 교환 근무를 통해 안동을 비롯한 한국의 문화와 대한민국 대표축제를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며 탈춤축제가 세계적인 축제로 도약하는데 조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돕겠다고 했다. 호주에서 미디어로 볼 때와 실제로 와 본 안동의 차이점을 물었더니 “사진과 자료로 볼 때보다 직접 보는 것이 더 실감난다.”고 한다. 전하면서 보는 축제가 아닌 실제로 체험을 할 수 있어 더 매력적이라고 했다. 생동감 있는 축제현장이 레즐리와 궁합이 잘 맞아보였다.
전통문화가 집약된 안동에 매료되다 “한국의 다른 지역도 축제가 많지만 안동은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어요. 부산, 울산, 대구를 자주 방문했는데 그 도시들은 모두 공업이 발달된 도시로 문화축제가 거의 없어 어떤 문화가 존재하는지 가까이 접해보지 못했거든요. 안동은 전통 문화가 집약되어 있고 독특한 안동만의 문화가 인상적이고 특히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이 가장 인상 깊어요.” 그동안 하회마을을 네 번 다녀왔고, 도산서원을 세 번, 봉정사, 영주의 소수서원을 방문했으며 또 안동문화원 옆에 있는 디지털콘텐츠박물관과 안동댐 조각공원도 가봤다. 알차게 안동 곳곳을 돌아다녀본 그녀는 하회마을과 도산서원, 디지털콘텐츠박물관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특히 디지털콘텐츠박물관은 미국,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생긴 박물관이라고 전하면서 놀라워했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내가 이제까지 본 몇 안 되는 아주 흥미 있는 축제 중의 하나예요. 한국은 지형적으로는 작은 나라이지만, 열광적인 사람들로 넘쳐난다는 것이 신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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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로 돌아가 꼭 안동을 자랑할께요” 안동에 다시 올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는 레즐리 씨. 이렇게 열정을 가지고 일 할 수 있는 비결을 물으니, 시끌벅적한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가리키며 “바쁘게 일하는 환경들이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게 만든다.” 고 했다. 직원 중에서 가장 친한 사람을 묻는 질문에 환한 얼굴로 통역을 맡은 김주호 씨를 가리켰다. 김주호 씨가 손사래를 치며 옆에 있다고 일부러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자 레즐리 씨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다 친절하고 좋지만, 언어가 통해서 김주호 씨와 계속 만나고, 식사도 같이 하다 보니 가장 친한 분이 맞아요.” 레즐리 씨는 시청에서 마련해준 공무원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가 근무시간이지만 바쁠 때는 밤늦게까지도 근무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의 스케줄에 비하면 본인은 바쁜 것도 아니라고.
호주에는 남편과 세 명의 딸, 손자가 다섯이고 손녀가 하나, 다복한 가족이 있다. 어릴 때 그녀는 영화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지금의 세련된 모습이 과거의 미모를 짐작케 했다. 학창시절에는 미인대회에 나가려고 춤도 배우고, 영화배우가 되기 위해 한동안은 극단에도 있었단다. 과거에도 지금도 열정이 풍부한 그녀는 앞으로의 계획도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호주로 돌아가서 호주에 대한 문화를 안동으로 보내고, 호주에서는 안동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호주에 돌아가서도 안동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을 보면 레즐리 씨에게 안동은 참 인상적이면서도 매력적인 도시로 뇌리 깊숙이 박힌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젠 레즐리 씨처럼 관람객이 아닌 축제를 주관하는 업무에도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가진 이들의 참여가 점점 높아져 그만큼 풍성한 축제, 내실 있는 축제가 되길 기대해본다. 그리하여 더 많은 제2, 제3의 레즐리 씨를 축제의 중심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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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118호 - 인터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