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정 김필녀 2009. 4. 13. 23:20


 

조팝나무꽃

 

김필녀

 

 

보리밭을 매다 허기가 져 두 손으로

도랑물을 퍼마시며 배를 채우는데

하얗게 웃고 있는 조팝꽃과 눈이 마주쳤다

한 움큼 훑어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시면

보리밭은 다 맬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조심스레 조팝나무 앞으로 다가선다

집에서 굶고 있는 새끼들 눈에 밟혀

꽃잎으로 배 채우는 것도 죄가 될까

도랑물 한 움큼 더 마시고 돌아선다

 

조팝나무꽃을 보며

고봉밥을 생각하는 사람 없는 세월이다

배고프던 한 시절을 살았던

우리 어머니들 슬픈 기억으로 남아

꽃 피고 보릿고개 넘던 계절이면 가끔

클로즈업 될 뿐이다

꽃이 환장하게 피어 마음이 고플 때는

슬프지만 아름다운 옛 기억 더듬으며

마음의 여유를 누리고 싶은 봄날 오후다.

 

090412

 

Wrong rainbow / Petey Yar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