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북카페 ′인연′지킴이 싱홍샤, 원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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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봄이다. 추운 겨울을 이긴 봄꽃들이 서로 먼저 피겠다고 곳곳마다 꽃눈 터지는 소리 분주하다. 매화 향기 봄바람 타고 그윽하게 날아오더니, 노란 개나리 산수유 앞 다투어 피고, 밝은 햇살 아래 목련도 부끄러운 듯 고운 속살 살포시 드러내며 손짓하고 있다. 안동은 참 아름다운 도시이기도 하지만 복을 타고난 도시인 것 같다. 멀리 꽃구경을 가지 않고도 봄을 가까이서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어느 시인은 벚꽃 핀 모양이 팝콘 튀겨놓은 것 같다더니, 낙동강변에 길게 줄지어 선 벚꽃은 아침저녁이 다르게 벙글어 가고 있다. 벚꽃축제장 먹을거리 장터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유행가는 바쁘게 살아가는 안동시민들의 발길을 잠시나마 불러 모으기 위해 볼륨을 한껏 올려놓고 있다. 새로운 인연 맺은 <인연>지킴이 새댁들 벚꽃 길을 가르며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위해 옥동으로 발길을 돌렸다. 안동종합사회복지관 3층에 있는 다문화가족 북 카페 ‘인연’을 찾았다. ‘인연’은 안동지역 내 결혼이민자 여성과 그 자녀를 위해 올 2월 개관한 문화공간이다. 이곳에 상근직으로 근무하는 두 새댁이 있다. 아기자기한 공간을 들어서자 멀리 중국에서 시집을 온 새댁 싱홍샤(30세)가 밝고 활달하게 인사를 하며 반겨주었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원민지(33세) 씨는 이주 여성들에게 봉사를 하러 길안으로 출장을 가서 싱홍샤 씨 혼자서 북 카페 ‘인연’을 지키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민지 언니가 올 거예요! 그동안 차 한 잔 하세요!” 그녀의 유창한 한국말에 “조선족인가요?”하고 물으니 중국 길림성 길림시에 살던 한족 처녀가 안동 남자에게 시집왔다며, 연신 명랑한 웃음을 짓는 싱홍샤. 그녀는 올해로 시집온 지 4년차다. 중국에서 시집 온 활달한 새댁 싱홍샤 서른 살의 싱홍샤(邢宏霞) 씨는 중국으로 여행을 왔던 남편 권오현(42세) 씨를 만나서 결혼까지 골인 했다. 훤칠한 용모에 한문도 무척 잘 써서 권오현 씨에게 첫눈에 호감을 가졌다는 싱홍샤. 오현 씨도 활달하고 애교 많은 싱홍샤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둘은 여행이 끝난 뒤 한국으로 돌아가고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싱홍샤는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또래보다는 나이가 더 많은 남자가 좋았다고 한다. 중국 남자들은 결혼을 일찍 하는 풍습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더욱 나이 지긋한 남자를 찾기 힘들었고 젊은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터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한마디로 눈에 콩깍지가 쓰였다며 웃는다. 2006년에 한국으로 시집온 그녀는 햇수에 비해 한국말이 유창했다. 아니나 다를까 또순이 같은 그녀의 한국말이 빨리 는데는 그녀의 남다른 노력 때문이었다. “한국어를 빨리 배우려고 방송통신대에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중국말도 어렵지만 한국말도 너무 어려워서 아직 서툰 단어들이 많아요! 지금은 4학년에 재학 중이에요.” 결혼정보회사를 통하지 않고 연애결혼을 통해 결혼한 그녀이기에 그 정이 더 남다를 것 같다고 물으니 그녀가 살짝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웃는다. “지금은 결혼하기 전이랑 너무 달라요.” “어떤 점이 그렇게 달라요?”했더니 “무뚝뚝하고 말도 잘 안하고 모든 게 다 결혼하기 전하고 달라요! 결혼 전엔 얼마나 다정했는데요.” 한국남자 특히 안동남자는 다들 무뚝뚝하다는 베테랑 주부의 말로 그녀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해본다. |
![]() 겨울이 깊으면 봄도 멀지 않다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활달한 싱홍샤에게도 최근, 아픔이 있었다. “애기는 있어요?”했더니 “두 번 가졌었는데 다 실패하고 아직 애기가 없어요!”하며 시무룩하게 대답을 했다. 결혼한 새댁들이 가장 많이 들었을 그 질문이 그녀에겐 더 없이 상처였으리라. 시집와서 가장 행복했던 날은 언제였냐는 질문에 그녀는 큰 웃음을 터뜨린다. “남편 술 안 먹는 날이요!” 술만 좀 줄이면 매일 업어주고 안마도 해 주겠다는 그녀다. 싱홍샤는 안동시 녹전면에서 3남 2녀 중 맏이인 오현 씨에게 시집와 몇 년 전에 시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지금은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고 있다. 남편이 연애 때 같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싱홍샤는 힘들 때마다 앞으로 좋은 날이 올 거라 믿고 참는다는 다부진 새댁이다.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친구도 없을 텐데 고민 있으면 누구랑 이야기해요?” “시누이한테 이야기 다해요. 시누이도 내 고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 이야기하고 나면 좀 후련해요.” 한다. 얼마 전에는 애주가 남편 때문에 싱홍샤가 주관한 가족회의가 있었다고 한다. 시댁식구를 다 부른 자리에서 싱홍샤는 남편에게 술을 줄여줄 것을 요구했고 그래서인지 지금은 남편이 많이 노력하고 있어 행복하단다. 싱홍샤와 대부분의 한국남자들이 술을 너무 좋아해 문제라며 한참을 안동 남자들의 흉을 보았다. 싱홍샤는 본인이 원해서 택한 한국행이기에 고민이 있어도 절대로 친정 부모님께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멀리서 걱정하실까 내내 마음 졸이는 그녀는 중국 길림에 살 때는 직장생활을 하다가 액세서리와 옷 장사를 했었다. 고향에는 부모님과 28살의 남동생 한 명이 있다. 이쁨 받고 자란 딸이라서 한국으로 시집오고 난 후 어머니는 그리움에 우울증이 도져 한동안 힘들어하셨다한다. 그래서 잠시 중국에 가서 어머니를 보살피고 돌아왔다는 싱홍샤. 친정 부모님 얘기를 꺼낼 때면 영락없이 애교 많은 딸의 모습이다. 의젓한 남동생은 별일 없이 전화를 해도 누나의 마음을 잘 헤아려준다고 한다. 그녀는 멀지 않아 애기도 생기고, 좋은 일만 생길 거라며 오히려 우리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소박한 소망은 노래방에 가는 것. 한국 노래들도 요즘 유행하는 노래는 거의 다 아는 것 같았다. 남편과 다정하게 손잡고 온가족들과 더불어 노래방에 가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별로 없어 아쉽다고 한다. 재주 많은 장금이, 싱홍샤 2007년까지 중국은 인구가 너무 많아 한 부부에 자녀를 한 명만 낳을 수 있었는데 싱홍샤가 태어날 때는 두 명을 낳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도 2007년부터는 두 번째 아이를 놓으면 우리나라처럼 혜택을 많이 준다고 했다. 중국과 한국의 가장 다른 점은 바로 주변 환경이라고 한다. “중국은 넓어서 산을 가려면 한참을 가야하는데 한국은 산이 참 많아요!” 요리를 좋아하는 싱홍샤는 익숙치 않은 요리도 금방 배우고 한 번 맛본 음식도 그대로 낼 수 있는 재주를 가졌다. “저는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해요. 앞으로 음식점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한다. 처음 한국으로 시집 와서 시어머님이 만드는 음식을 옆에서 한 번만 보면 그 다음부터는 그대로 맛을 낼 수 있는 재주를 지닌 장금이 싱홍샤. 그녀는 활달한 성격만큼이나 무엇에건 적극적이고 재주가 많은 것 같았다. 운전도 배워서 녹전면에서 직접 운전을 해서 출퇴근도 하고 노래도 좋아해서 노래자랑에서 상까지 받은 실력이며 수영도 잘 하고 요리 실력 또한 수준급이니 말이다. 싱홍샤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다문화 북 카페에서 오전 11시부터 저녁 5시까지 근무하고 난 후, 중국어 과외를 일주일에 세 번 하고 있다고 한다. “돈 많이 버네요!”했더니 “북 카페 일은 아무래도 봉사정신으로 하는 일이라 월급이 그리 많지는 않아요. 녹전에서 다니는데 기름 값이 하루에 만원이나 들어요. 그리고 중국어 과외도 아직은 많지 않아요!” 한다. 월급을 받으면 돈 관리는 본인이 한다는 야무진 싱홍샤는 고향 생각이 가장 많이 날 때는 아무래도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란다. 생일 때는 시어머니께서 미역국을 끓여주지만 터프한 남편 오현 씨가 결혼기념일이나 각종 행사를 잊지 말고 세심히 챙겨줬으면 더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갖고 있다. 싱홍샤가 다문화 북 카페 ‘인연’에서 주로 하는 일은 일주일에 세 번 이주 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책을 관리하고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 카페의 벽면은 국내도서, 일본도서, 필리핀도서, 중국도서, 베트남도서 등 각 나라별로 책들이 가지런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문화 가정을 위한 도서들도 많이 비치되어 있었다. 주로 이주여성들에게 빌려주지만 일반인들한테도 회원가입만 하면 빌려준다고 한다. 또 직접 와서 책을 읽을 수도 있게끔 책상이며 모든 비품들이 깨끗하게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어 조용한 가운데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
![]() 베트남에서 사내커플로 결혼에 골인한 원민지 싱홍샤와의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원민지(33세) 씨가 출장을 갔다가 돌아왔다. 베트남 이름으로 응우옌 티 옥 란(NGUYEN THI NGOC LAN)인 원민지씨는 호치민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 고향이라고 한다. 베트남에서 결혼을 하고 2001년에 한국에 왔다. 남편 권재용(43)씨와 9살 난 딸 남경이, 7살 난 아들 태경이와 함께 옥동에서 살고 있다. ‘민지’라는 이름은 시어머니가 지어주셨는데 그녀와 무척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원민지 씨는 베트남에서 다니던 가구회사의 사내커플로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처음 만남을 주선해 주셨던 분은 삼촌뻘 되시는 분이었는데 그 분도 베트남 여인과 결혼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국제결혼이라며 양가에서 다 반대를 했지만 사랑에는 국경이 없듯이 일 년 반 정도 연애를 하다가 어렵게 결혼 허락을 받았단다. 베트남에서 산다는 조건으로 친정의 허락을 받아 결혼을 했기 때문에 집도 마련해서 1년 반 정도 살았지만 시댁식구들의 요청에 한국으로 들어와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가 첫째를 가졌을 때였다. 그런 어려운 과정들을 겪으면서 이룬 가정이니만큼 남편을 보필하고 아이들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사는 베트남 새댁 원민지 씨. 아직은 서툰 한국말에 아이들 공부가 제일 걱정 두 아이의 엄마인 원민지 씨는 아이들 키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이 아무래도 언어였다고 한다. “한국 엄마들보다 한국말이 서투르다보니 공부를 가르치고 숙제를 봐 주는 일이 가장 어려워요.”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라도 한국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음에도 아직 완벽하게 익히지 않아 아이들보다 더 말을 못한다며 쑥스러워하는 민지 씨. 그녀는 한국 생활 속에서 베트남과 가장 다른 점을 묻자 일상 속의 문화차이가 많다고 한다. “제사가 달라요. 베트남은 낮에 지내는데 한국은 밤 12시 넘어서 지내서 힘들어요. 또 애기를 낳고 미역국을 먹는 것이 좀 힘들었어요.” 베트남에서는 미역국을 먹지 않는데 시어머니가 미역국을 먹으면 모유수유에 좋다고 삼시 세 때를 큰 그릇에 담아 와 옆에서 자꾸 권해서 솔직히 힘들었다고 한다. “나뿐만 아니라 한국으로 시집을 온 베트남 이주 여성들 모두가 겪는 어려움이에요.” 베트남 이주 여성들이 대부분 애기를 낳고 나서 입맛이 맞지 않아 오히려 체중이 다들 빠지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시어머니들의 배려는 고맙지만 문화적 차이는 이해해달라는 것. 아무래도 베트남 이주 여성을 며느리로 삼고자 하는 한국의 예비 시어머님들께 꼭 이야기를 전해 드려야 할 것 같다. 남편과 아이들 위해 내조의 여왕 되고파 “시어머님과 사이는 좋으세요?” “어머님이 딸처럼 생각하시면서 정말 잘 대해주세요. 아무래도 신경도 더 써주시고요.”한다. 다정한 남편과 귀여운 아이들 사이에서 마냥 행복하다는 민지 씨도 불만은 하나 있다. 역시나 술 얘기를 꺼내들었다. “애기 아빠가 술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 싫어요. 왜냐면요, 제가 아직 아이들 어려운 숙제는 못 봐주기 때문에 애기 아빠가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올 때면 숙제하기가 힘들거든요.”한다. “고향도 아니고 많이 외로웠을 텐데 한국에서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어요?” “한국에 와서 4년 동안 베트남 사람을 못 만났어요.”하면서 결혼을 하고 4년이 지난 어느 날 베트남에서 시집을 온 이주 여성이 길안에 살고 있다고 해서 남편과 같이 찾아가서 만났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국말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서 결혼정보회사에서 통역하는 일과 건동대학교 어학원에서 유학생 관리를 하면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고 한다. 원민지 씨는 지금 이주 여성들에게 단순한 친구이기 이전에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많은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는 듯 보였다.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하는 민지 씨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니 내조의 여왕이 되는 것이란다. “평범한 여자로 살면서 남편,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도록 뒷받침 하는 것, 그건 결혼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어요.” 안동찜닭, 하얀 눈이 좋은 베트남 새댁 민지 씨는 베트남에 부모님과 2남 8녀의 다복한 형제들이 살고 있다. 한국처럼 남아선호사상이 있어 아들을 낳으려고 여자 형제들이 8명이나 된다고 하며 웃었다. 남아선호사상, 남편 내조에 공을 쏟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사는 것 등 많은 정서가 한국과 비슷하다고 한다. “고향이 가장 그리울 때는 언제인가요?” “밤에 잠자리에 누웠을 때랑 기분이 안 좋을 때 고향이 가장 그리워요. 전화 요금이 너무 비싸 자주는 연락을 못해요.” 그러면서 베트남에서 처음 시집을 온 이주 여성 가운데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고 고향이 그리운 나머지 국제 전화를 멋모르고 너무 많이 해서 전화요금이 200만원이 나온 사람도 있다며 결혼이주여성들의 애로사항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제 안동으로 시집을 온지 8년이 되었으니 안동 사람 다 된 민지 씨. “안동 음식 다 좋아하면 안동 사람이 다 된 것 아닌가요?” 하며 안동찜닭, 삼겹살, 통닭, 족발 등 안가리고 잘 먹는단다. 다녀본 곳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최근에 다녀온 영덕 바닷가. 늘 바쁘게 지내도 하회마을을 비롯한 유명 관광지는 다녀봤다고 한다. “베트남에는 겨울이 없어 하얀 눈을 불 수 없는데 한국으로 시집와서 좀 춥긴 하지만 그래도 하얀 눈이 내리는 겨울이 있어 참 신비롭고 좋아요.”. 친정에는 온 가족이 3년 전에 다녀왔다. 베트남에서 연애를 했던지라 남편은 영어와 베트남어에 능숙한데 아이들은 간단한 인사말을 해내지만 아직 베트남어가 서투르다. 그래도 베트남에 다녀오면서 아이들은 배워온 인사말을 잊어버리지 않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전화를 할 때는 베트남어로 인사를 주고받는다고 했다. 민지 씨는 아이들 교육문제를 생각해서라도 빨리 한국어 공부를 해서 좋은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말을 거듭했다. 늘 바쁘게 살면서도 가정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작은 행복에도 만족하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 예쁘다. 민지 씨가 하루빨리 한국어를 완벽하게 배워 아이들 어려운 숙제를 봐주면서 아이들 앞에서 당당한 엄마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 싱홍샤, 원민지의 아름다운 도전 <인연>에서 ‘인연’을 만들어가고 있는 싱홍샤와 원민지. 그녀들은 이주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고 더불어 자신의 삶도 행복하고 당차게 꾸려나가고픈 새댁들이다. 그녀들은 낯선 땅에서의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좀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는 건강한 생각과 온화한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최근 지역에서도 다문화 가정을 위해서 여러 가지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가지고 정책을 펼치고 있는 줄로 안다. 앞으로 10년 후, 20년 후에는 다문화 가정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수가 많아지면 혹여 소홀해지지나 않을까 염려가 된다. 또 가정에서는 남편들이 누구보다도 남편 하나만을 믿고 먼 타국으로 시집을 온 만큼 애처가이기도 하고 공처가가 되어 더욱 부인들을 아껴주고 사랑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살도록 이 지면을 빌어 부탁드리고 싶다. 노래방 가는 것을 그렇게나 좋아하는 싱홍샤 씨와 현모양처로 살기 원하는 원민지 씨를 자주 찾아가서 그들의 고민거리를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고 웃어주는 이웃으로 남고 싶다. <안동> |
통권121호 - 新 안동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