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정 김필녀 2009. 7. 1. 01:01

 

 

빨간 우체통을 보면

 

김필녀

 

 

긴 사연의 편지를 쓰며

밤을 하얗게 새우는 사람도

고이 봉한 편지 두근거리며

부치는 사람도 없는 우체통은

참 외롭습니다.

기다림의 미학을 모르는 채

하루에도 몇 번씩 메일을 주고받으며

즉석 문자메시지로

속 깊은 정마저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빨간 우체통은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우두커니 비켜선 우체통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절반의 계절을 담아 밑도 끝도 없는 사연

깨알같이 적어 보내면 옛날처럼

그 자리에 선 채 반갑게 읽어주시겠지요.

짧은 여름 밤,

서둘러 돌아가야 하는 초저녁별 이야기

클라리넷 저음이 울려 퍼지던

연꽃 아름답던 그 공원의 추억들을 담아

약속 없이도 내 마음 건넬 수 있는

그런 편지를 써서 부치고 싶은

꼭 한 사람이 있습니다.

  

09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