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녀의 삶과 문학/김필녀자작글모음
거미집 속에 또 거미집이 있다
아정 김필녀
2009. 8. 23. 21:38
거미집 속에 또 거미집이 있다
김필녀
이삭이 패기 시작한 벼 포기 위
거미들 고만고만한 집 마을을 이루며 산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이슬 내린 집집마다 무지개 영롱하다
거미집 안에
거미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새벽 산책길,
자연의 오묘함에 다시금 매료된다
분수를 알아 욕심 없이 집을 짓는 거미
꿈에 부풀어 큰 집을 지으며
거미집 속 거미집에서 숱한 날들
얼마나 많은 고뇌를 했을까
몸 속 진액 자아내어 만든 커다란 집,
주렁주렁 매달린 먹잇감 가로채로 온
날쌘 도둑에게 냉큼
재물이 되는 욕심 많은 거미의 삶
겉으로 보이는 것이 행복이 아닌
아이러니하고도 아름다운 우리네 인생
거미의 삶과 같을진대,
끝까지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무성하던 풀 성장을 멈춘 채
무리지어 들어 눕기 시작하는 초가을 새벽,
농부들 피땀 서린 논둑길 위에서
못다 깨친 자연의 섭리에 고개 숙인다.
09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