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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김에서 안동댁으로, 김정숙씨의 귀농일기(글/김필녀_시인)

아정 김필녀 2009. 9. 1. 21:31

 난다김에서 안동댁으로, 김정숙씨의 귀농일기(글/김필녀_시인)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경북 봉화가 귀농 1순위였는데 지금은 안동이 1순위라고 한다. 최근엔 농촌으로 인구를 유입하기 위해서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귀농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다.


‘귀농’이란 다른 일을 하던 사람이 농사를 지으려고 농사터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전에 우리나라의 주산업은 농업이었으며 국민의 대부분이 농사일을 해왔다. 경제성장과정에서 우리나라 농촌과 농업은 토지, 인력, 생산원료 등을 타 산업부문에 공급하는 주요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농업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더불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농업의 비중이 차차 낮아짐에 따라 지금에 와서는 사양 산업으로 소홀히 취급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산업화된 현대사회는 환경파괴, 이상기후의 빈번한 발생, 생활 여건의 악화 등 인간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러한 때에 도시생활의 번뇌를 벗고 농촌으로 돌아가 생활의 여유를 찾고 농업이 국가경제의 기틀로 새로이 태어날 때를 조용히 준비하는데 귀농의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난다김, 안동댁으로 정착하다
서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줄곧 생활하다가 마흔 중반의 나이에 안동으로 귀농을 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한 여인이 있다고 해서 몹시 궁금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에게 안동도립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방학강좌를 위해 일주일에 세 번 시내에 나온다는 김정숙(46세)씨를 만나 도서관 등나무 아래에서 인터뷰를 했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의 사는 집도, 또 어떤 농사를 지으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한 게 많아서 일주일 후 그녀가 살고 있는 예안면 귀단리를 향해 차를 몰았다.


긴 장마 끝에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길을 따라 와룡을 지나 주진교를 건넜다. 주진교를 건너면서 다리가 생기기 전 가족들과 함께 낚시를 왔던 일이 생각나서 ‘다리가 없을 당시에는 타고 온 승용차를 큰 나룻배에 싣고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고 건넜다.’는 이야기를 하자 함께 간 편집기자가 ‘정말이세요!’ 하며 놀라워했다.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지고 길 섶 산기슭에는 있는 듯 없는 듯 피어있는 자줏빛 싸리꽃이 우리들을 반기며 웃고 있었다.


김정숙 씨가 알려준 대로 귀단으로 향했다. 굽이굽이 들어가다 바람개비가 많이 달려있는 집을 찾으면 된다고 해서 차를 천천히 몰았다. 과연 길 왼쪽에 우리가 찾는 반가운 집이 있었다. 안동시내에서 30~40분 거리였다. 거리상으로는 그다지 시골은 아닌 듯도 하다. 정숙 씨 집은 도로 밑 언덕에 위치한 아담한 한옥이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정숙 씨가 외풍이 들어오지 않게 개조를 해놓아서인지 한눈에도 꽤 탄탄해 보였다. 한옥 옆에는 조립식으로 새로 지은 집 한 채가 기역 자로 붙어있고 집 중앙에 단감나무가 정답게 서있었다.


주인보다 먼저 크고 작은 개들이 정확한 숫자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시끄러운 소리로 낯선 방문객들을 맞았다. 이어 오늘의 주인공인 정숙 씨와 웃는 모습이 무척 예쁜 정숙 씨의 딸 하은(월곡초등 5학년)이가 반갑게 나와서 반겨주었다.
“어서 오세요! 약속시간보다 빨리 오셨네요.”
개를 너무도 무서워하는 편집기자 때문에 인사를 제대로 나누기도 전에 마당 한 쪽에 있는 평상에 올라가 앉았다. 평상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무척 아름다웠다. 집 주변 비탈진 밭에는 콩, 옥수수, 참깨, 들깻잎과 온갖 푸성귀가 심겨져 있었고 안동댐 상류지역이라 지금은 물이 차지 않았지만 비가 많이 와 물이 차면 집 앞이 바로 호수가 되어 정말로 멋진 배경이 펼쳐진다고 했다.


정숙 씨가 색이 푸르고 향과 그 맛 또한 청아한 솔잎차를 대접한다. 그녀에게 “이런 집을 어떻게 구하셨어요.”하고 물으니
“서울에서 부동산업을 할 때, 귀농을 하려는 분한테 소개를 해서 거의 계약단계까지 갔었는데 부인이 반대를 해서 취소된 적이 있어요. 괜찮은 땅이라 아까운 마음에 잡아두었었는데 안동하고 인연이 닿았는지 제가 귀농을 하게 되었어요.”한다.

 

 

 

 

 

어렸을 때부터 시골에서 불 때며 사는 게 꿈
정숙 씨는 안동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아버지가 월남을 해서 시골에 사는 그 흔한 친척도 하나 없다. 그런데도 안동 하고도 예안에 정착하게 된 경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동산업을 하다 보니 경북북부지역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어요. 일 자체가 전국으로 돌아다니는 일이니까요. 또 자주 와 봐서 그런지 낯설지도 않고 무엇보다 조용해서 노후를 보내기가 다른 지역보다 좋을 것 같아 마음속으로 찜해둔 상태였어요.”


2007년 11월에 왔으니 햇수로 3년째다. 서울 토박이면서 어렸을 때부터 아궁이에 불 때면서 사는 게 꿈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였다. 어머니는 ‘젊은 애가 왜 그리 시골을 좋아하냐’고 핀잔을 주기 일쑤였지만 정숙 씨는 시골생활이 무작정 좋았다고 한다.
“양반의 도시, 청정한 도시, 정말 시골이라는 느낌이 들어 더 친근감이 들고 무엇보다 땅값이 싸서 귀농하기 딱 좋은 도시지요.”
싱글맘 정숙 씨는 처음 딸아이와 둘이 정착했다가 1년 뒤 친정어머니(78세)와 서울에서 인테리어 업을 하던 언니와 형부까지 귀농을 해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주 농사는 2천평의 사과농사와 감자, 고구마농사를 조금 짓고 있다고 했다. 사실 그녀의 귀농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예전부터 몸이 많이 아팠던 친정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언니, 오빠가 처음에는 많이 만류했어요.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무슨 고생을 하며 살려고 그러냐, 도시 생활하던 애가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 걱정이 많았죠. 그런데 지금은 형제들도 다들 좋아하고 주말에도 자주 다녀가요. 무엇보다 귀농을 가장 많이 반대했던 친정어머니께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농사일을 거들고 해서 그런지 이제는 아픈 곳도 없고 저보다 귀농한 것을 더 좋아하세요. 가끔 서울에 있는 오빠네 집에 가셨다가는 답답하다고 서둘러 안동으로 내려오실 만큼 좋아하세요.”


또, 귀농을 말렸던 어머니의 마음이 돌아서게 된 사건이 생겼다. 애완견 예삐가 어느 날 피가 낭자한 채로 죽어있었다. 동네 큰 개가 물어서 죽었는데 워낙에 동물을 가족처럼 아끼는 정숙 씨 식구에게 예삐의 죽음은 큰 사건이었다. 그때 서울 시립대 옆에 살았는데 강아지 한 마리 묻어줄 곳이 없었다. 한밤중에 라면박스에 옮겨 넣어 양지 바른 나무 아래를 파서 묻어두었다. 마음이 적적해진 어머니가 귀농을 허락하셨던 때가 그때였다.


인심 넉넉한 그녀의 귀농 적응기
하지만 동경한 만큼 현실은 또 그렇지 않을 터, 귀농을 후회한 적은 없는지 묻자 그녀는 바로 손사래를 치며 환하게 웃는다.
“전혀 없어요. 오히려 전 즐겁고 행복해요.”
귀농을 하려는 분들에게 조언 한마디를 부탁하자 그녀는 거침없이 말한다.
“일단 시골을 좋아해야 돼요. 그리고 가족이나 도시생활에 대한 생각을 털어버려야 쉽게 정착할 수 있지요. 특히 서울에서 살다왔다고 시골에서 터를 잡고 살던 분들한테 은근히 뻐기는 것 같은 생각은 버려야 해요. 그리고 농사일은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지요. 영농교육을 하는 곳을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스스로 터득하고 배워야 하지요.”


귀농 초기, 그렇게 힘든 점은 없었는데 돈이 의외로 많이 들어간 점이 힘든 점이라면 힘든 점이란다.
“집을 사고 땅을 사는 것은 목돈이라 이미 계획에 있었던 준비된 돈이었지만 호미를 비롯해 농기구를 새로 다 장만해야하는데 의외로 농기구 값이 만만치 않더라구요. 게다가 우리는 이사 오면서 세간살이가 무슨 필욜까 싶어 다 버리고 왔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촌에 계신 분들이 더 잘해놓고 사세요. 김치냉장고며 뭐며 없는 게 없어요. 우리 집이 동네에서 살림살이가 제일 허술할걸요.”


그녀의 소탈함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땀 흘려 지은 농산물은 그녀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 귀농이야기(http://cafe.daum.net/33610048)에서 판매하고 있다.
“주로 인터넷을 이용해서 직거래를 하는 편인데 의외로 참 잘 팔려요. 아직은 모든 것이 서툴고 잘 짓지 못하는 농사지만, 농사짓는 과정들을 일일이 사진을 찍어서 카페에 올렸는데 믿음이 간다면서 많이들 사가세요. 그리고 사 가신 분들이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소개를 해서 다시 구매가 이루어지고 그래요. 유통과정을 없애고 직거래로 싸게 파니까 가격비교를 해봐도 저렴하니까 특히 알뜰하게 쇼핑을 하는 젊은 층에서 많이들 사가는 것 같아요. 또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덤이 있어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주문이 들어와서 택배를 보낼 때 양이 적어 팔지는 못하고, 가족들이 다 먹지 못하고 남는 깻잎, 상추 등 푸성귀들을 함께 보내주니까 너무들 좋아하세요.”



 


강남의 난다김, 예안 줄넘기 대표선수 되다
호탕한 웃음의 정숙 씨의 전직은 부동산중개인이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가 우연히 보험설계사가 되면서 그 인연은 이어졌다.
“결혼해서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시험만 쳐달라는 지인을 따라 삼성생명에 가서 시험을 쳤다가 영업사원으로 눌러앉게 되었지요. 성격자체가 무슨 일이든지 처음에 시작하기가 어렵지 시작만하면 제대로 해보자는 승부욕이 강해요. 해서 삼성생명에서 영업을 할 때 전국에서 최고 왕까지 했던 적도 있지요.”


그 후에 강남에서 부동산회사에 다니게 되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런데 욕심이 화를 불렀는지 부동산 회사를 직접 차렸다가 그동안 벌었던 돈도 날리고 빚까지 지게 되었다. 속이 쓰렸지만 오히려 약이 됐다.
“이참에 헛된 꿈 버리고 옛날부터 꿈꿔왔던 귀농을 하자고 결심하고 안동으로 내려왔지요. 그런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것 같아요.”하며 웃는다. 이른 나이에 성공과 좌절을 맛본 그녀에게선 특유의 여유가 보였다.


“귀농을 해서 안동에 살고 있으니까 전에 서울에서 함께 부동산을 하던 분들이 귀농을 하려는 분들이 있는데 좋은 땅이 없느냐며 연락을 해오고 있지요. 그럴 때 안동이나 봉화 쪽에 있는 땅 중에서 귀농하기 좋은 땅을 알음알음으로 소개를 해 주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입소문이 나서 자꾸만 부탁을 받게 되었지요. 지금까지는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다들 좋아했는데 전문적으로 할 생각은 없어요.”


보통 귀농을 하면 동네 분들과 마찰을 빚는 이들도 간혹 있다. 동네 사람들과 교류를 잘하는지 물었는데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솔직히 어르신들한테 인기가 많아요. 내가 베풀어야 이웃이 생기고 유대관계도 돈독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반상회를 비롯하여 동네행사나 영농교육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적극 참여하는 편이지요. 얼마 전에 있었던 ‘안동시민체육대회’에서 ‘단체줄넘기대회’에 예안면 대표로 참가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녀의 성격이 어디 갈까, 동네 어른들은 마을에 젊은 사람 들어와 활기차져서 좋다고들 한다.
“인테리어 업을 하셨던 형부가 평상을 하나 만들어서 요긴하게 쓰고 있는데 동네 할아버지 한 분이 좋다고 부러워 하시길래 재료비만 받고 만들어 드렸더니 이 동네 저 동네 소문이 나서 이장님을 비롯하여 주문이 다섯 개나 밀려있어요.”한다.


시골 인심이란 이런 것이다. 작은 것을 나누다보면 저절로 정이 도타워지고 콩 한 쪽도 나누어 먹게 되는 유대관계가 이루어지고, 그런 작은 정들이 쌓여 이웃끼리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닐까? 손재주도 좋고 취미생활도 많은 그녀는 종이인형 접기에 강아지 키우기 등 종일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요즘엔 압화도 하고 천연비누도 만들어서 찾아오는 분들께 선물도 하고 팔기고 하지요.”하면서 직접 만든 천연비누를 예쁘게 포장해서 선물로 준다.


강남보다 더 좋은 교육환경
이곳생활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것 중 하나는 딸 하은이의 학교생활이다.
“전교생이 40명인 월곡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시설이 서울 강남에 있는 학교보다 더 좋아요. 원어민 강사도 있고 어학실도 참 잘 되어 있어요. 그리고 안동댐 상류지역이라 교육청이나 수자원공사에서 급식비도 납부해 주고, 영어캠프까지 지원해주고 있어 너무 좋아요.”
학교까지의 거리가 4킬로쯤 되는데 그것도 차편을 배려해줘 크게 불편한 점이 없단다.
“아침마다 학교에서 보내주는 택시를 타고 2킬로를 가면 스쿨버스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걸 타고 다시 2킬로를 가면 되니까 걱정 없어요.”
교육여건 때문에 귀농을 망설이는 많은 이들에게 오히려 시골교육이 더 질 높고 좋은 환경, 무엇보다 많은 지원이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녀다.


귀농하기 전에도 안동은 자주 다녀갔었던 그녀에게 제일 인상 깊은 곳은 도산서원이었다. 한 바퀴 돌고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는데 이젠 집에서 가깝기까지 해 더욱 좋다고 한다.
어릴 시절부터 가난한 살림에 몸이 아팠던 어머니를 보며 장래희망도 없었고 꿈도 키우지 않았다는 그녀. 꿈도 없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던 소녀가 이제 마흔을 넘은 나이가 되어 안동에 내려와 큰 꿈이 하나 생겼다고 한다.


“제 꿈은요, 큰 산을 사서 개간을 해 파라다이스를 만드는 거예요. 거기에 움막 같은 소박한 펜션을 지어 분양해서 그분들과 함께 근심걱정 없이 여생을 보내고 싶어요.”



 

나의 파라다이스 곧 우리의 파라다이스
정숙 씨 집 처마 밑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제비집을 보게 되었다. 얼마 전에 부화한 새끼 제비에게 어미 제비들이 먹이를 열심히 물어주고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하은이에게는 집 전체가 자연학습장이다. 푸른 자연 속에서 제비들을 관찰하며 어머니와 할머니, 이모가 땀 흘려서 농사지은 여름사과 아오리의 아삭한 맛을 느끼면서 자라고 있는 하은이의 해맑은 웃음은 하루 종일 학원에 쫓기며 자라고 있는 도시 아이들 모습보다 행복해 보였다.


한 때는 서울 강남에서 부동산업계를 주름잡았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남다른 카리스마가 느껴지기도 하는 ‘난다김’ 정숙 씨가 지금은 딸과 함께 한적한 시골로 귀농해서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다시 되돌려주는 땅을 일구며 소박한 꿈을 꾸는 ‘안동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흙과 함께 작은 행복에 만족할 줄 아는 안동사람이 되어 안동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소박한 꿈이 알알이 영글어 귀농을 꿈꾸는 분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안동>

통권123호 - 新 안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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