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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재창조에 앞장서는 신임 안동문화원 이재춘 원장(글/김필녀_시인)

아정 김필녀 2010. 5. 4. 21:42

 전통문화 재창조에 앞장서는 신임 안동문화원 이재춘 원장(글/김필녀_시인)

 


새봄이다.
시인이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봄은 가슴 설레며, 목련꽃 그늘 아래서 ‘4월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젊은 베르테르의 편지’를 한 번 읽어보고픈 그런 계절이기도 하다. 우수 경칩 지나 폭설이 내리는가 하면, 춘분을 지나서도 봄다운 햇살 한 번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채 4월을 맞이했다. 봄볕이 따스하던 날 하얀 목련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며 웅부공원을 가로 질러 안동문화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지난 2월 16일 제13대 안동문화원장으로 새로 부임한 이재춘(69세) 문화원장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다.


문화원은 각 지방의 향토문화 창달을 위해 일정한 시설을 갖추고 문화 및 사회교육사업을 실시하는 비영리 특수법인체이다. 안동문화원 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은빛 백발이 멋스러운 이재춘 원장이 반갑게 악수를 하며 맞아주었다. 행사장 멀찍이서 보기만 했지 가까운 곳에 마주앉기는 처음인데 인자한 노교수 같기도 하고 약간은 카리스마가 있을 것 같은 또 다른 인상을 느낄 수 있었다. 원장실로, 핸드폰으로, 계속 걸려오는 전화를 뒤로 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먼저 안동문화원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13대 문화원장이 된 소감과 포부를 말씀해 주세요.”
“바쁜데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요즘엔 문화 포화상태, 문화전성시대라고 할 수 있지요. 먹고 살기 급급했던 시대와 달리 삶의 질이 높아진 우리 국민들 수준이 높아지면서 문화생활을 누리며 살아가려는 분들이 자연스럽게 많아졌지요. 그리고 문화와 더불어 재미와 가치를 느끼면서 매력적인 삶을 추구하려는 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다 보니 제대로 문화를 알지 못한 채 문화 홍수시대, 즉 문화 다변화시대가 되어 버린 것 같아요. 문화의 전문화가 먼저 선행되어야 제대로 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럼 안동문화원에서는 문화 다변화시대를 살아가는 안동시민들을 위해 특별한 아이템이나 사업계획을 세우고 계신 것이 있으신지요?”
“사실 문화는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세상 속에 살고 있지요. 그렇지만 다변화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해온 안동의 문화를 계승 전승하고, 보존 발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그는 안동은 유교와 불교문화가 성했고, 조상의 얼이 담긴 고장인 만큼 전통을 바탕으로 한 문화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현대 문화를 잘 조화시킨 문화 사업에 역점을 두어야한다고 했다. 미래 문화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인재양성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신문화의 발굴과 전승 홍보와 보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춘 원장은 행정과 언론에 종사한 경험을 토대로 내실을 다지고 회원 간의 친목과 지역문화 확산에 더욱 노력하며, 시민과 더불어 재미와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마련할 계획이라며 쉬지 않고 열변을 토했다.
“안동은 BC57년에 염상조사가 창녕국을 세웠고, 고려 태조 때 안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게 되었으며 안동 대도호부로서 경북 북부지역 대부분이 관할구역이었지요. 문화적으로는 신라, 고구려의 불교문화와 조선시대의 유교문화가 꽃피었던 지역이며 특히 영남사림의 본거지로서 명헌거유를 많이 배출한 인재의 고장이며, 양반의 고장, 성리학의 중흥지라고 할 수 있지요. 따라서 다양한 문화가 조화를 이루고, 4개의 대학과 국학진흥원 등 교육도시로서의 위상도 높지요. 그래서 몇 해 전부터 안동을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로 지정하고 있는데 전혀 거부감이 없고 자연스럽게 불리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는 지역의 전통문화를 보존 전승하고 문화 활동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안동시민의 상, MBC문화상, 경상북도문화상을 받은바 있다. 경북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안동시 군 공무원으로 근무를 시작하여 MBC기자, 매일신문 기자 차장 부장을 거쳐 대구일보 편집부국장 대우, 경북북부지역본부장을 역임했다. 또 안동청년회의소 특우회장, 안동시 체육회 실무부회장을 지내고 안동문화원 부원장을 8년, 감사직을 12년간 지냈으며 현재 중요무형문화재인 안동차전놀이 회장 및 예능보유자로서 인간문화재이고, 안동시의회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8년간의 부원장 재직 시 직접적인 활동은 별로 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단순한 행사 참여보다는 직접 행사를 기획하고 집행하는데 많은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8년간의 부원장 재직 시 직접적인 활동을 별로 하지 못한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했지요. 앞으로는 원장의 품위를 지킨답시고 뒷짐만 지고 앉아 짜여진 행사만 지켜볼 것이 아니라, 직접 행사를 기획하고 집행하는데 많은 노력을 할 계획입니다.”
그러면서 지난 정월대보름 행사 이야기를 덧붙였다.
“달집을 좀 크게 만들어보고 싶어 궁리를 하다가 소나무 가지치기 한 것을 가져다가 쓰면 되겠다 싶더군요. 해서 어느 해보다 큰 달집을 만들어서 시민들과 함께 달집태우기 행사를 가졌답니다. 작은 발상 하나가 안동시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실천하게 되어 참 뿌듯했지요.”


현재 안동문화원에서는 지역의 풍속과 민속에 관한 여러 가지 행사를 하고 있으며, 절기 행사로 정월 대보름 달맞이, 한가위 한마당과 단오 무렵의 전국 유일의 여성축제인 여성민속한마당, 다양한 안동민속을 집대성한 안동민속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또 사회 교육활동으로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학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충효교실, 60세 이상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어르신 문화학교, 이야기꾼을 양성하는 전통문화아카데미 등 다양한 교육활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 향토사료 조사 및 발간사업으로 매년 2~3권의 자료집과 연간지인 안동문화를 발간하고, 분기마다 교양물을 싣는 회보를 발간하고 있기도 하다.
“문화원 주관 행사 중 전국에서 유일한 ‘여성민속한마당’은 안동에 있는 모든 여성단체와 여성들이 참여하는 행사로 화전놀이, 노국공주 선발대회, 널뛰기대회, 향토 음식 만들기 체험, 공예체험, 내방가사 낭송을 하고 있는 행사인데 가장 중점을 두고 있지요.”


그 외에도 한가위한마당은 전통무용과 음악, 시민 노래자랑 등 귀향한 가족들이 흥겨운 추석명절을 보내도록 마련되어 있고 안동민속축제는 올해 39회 째 맞게 되는 행사로 그 역사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데 안동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민속과 무형문화재 등을 선보이며 행사다. 부원장으로 감사로 20년을 넘게 안동문화원의 산 증인처럼 살아와서인지 문화원장으로 출근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그는 안동문화원에 대한 모든 행사들을 훤하게 꿰뚫고 있었고 막힘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안동문화원에서는 80년대 중반부터 시민들을 대상으로 문화강좌를 열어 왔지요. 문화원 문화학교는 1997년에 문화관광부로부터 한국문화학교로 지정을 받아 현재는 문예창작반, 사진반, 전통음악반, 문화재 이해반 등 4개 강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전통문화 아카데미는 작년부터 시작되었는데, ‘안동 그 오래된 이야기’라는 부재로 이야기꾼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이지요. 전통반과 문화반에 각 30명의 수강생을 모집하여 매주 3시간씩 안동의 전통문화를 이야기로 풀어가는 강좌이지요. 수강생 중에는 택시 기사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그들이 문화재를 안내하고 홍보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답니다. 앞으로 시민 누구나 이야기꾼이 되어 안동을 찾는 외지인들에게 보다 풍부하고 재미있는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그는 여러 활동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일은 단연 문화예술활동이다. 공무원, 언론인 등이 그의 직업이었다면 중요무형문화재 24호 차전놀이는 그가 가장 애착을 지니고 있고 또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자부심도 갖게 해준 일이다. 차전놀이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선배의 일을 도우면서 우연하게 이루어졌다.
“1966년 서울에서 열린 제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차전놀이 공연이 참가했을 때 그 당시 안동 군청에 근무하면서 기능보유자인 김명한 선배의 부탁으로 여러 가지 일을 도운 게 인연이 되어 입문하게 됐지요. 그 뒤로 김 선배가 나이가 많아 활동을 못하자 저한테 모든 일을 맡겨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차전놀이에 몸담게 됐고, 1989년 김 선배가 별세하고부터 차전놀이보존회장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탈춤축제장 인근에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와 나란히 사무실을 둔 차전놀이보존회는 1970년 이전으로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대구 의학전문학교(현 경북대 의대)를 나와 재생병원을 경영하던 김명한 선배가 일제 강점기에 중단했던 안동차전놀이를 발굴 복원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4호 안동차전놀이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으면서, 1970년에 사단법인 안동 차전놀이 보급회를 설립하였지요. 그 후 1986년에 차전놀이보존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보존회는 다른 유사단체가 생업이나 권익 보호를 전제로 하는 것과는 달리 고유민속의 계승 발전이라는 사명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안동차전놀이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기능을 전수받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며 차전놀이 전수자라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대학교에 세 번 낙방을 하고, 4.19가 일어나서 군에 입대했다가 제대를 했는데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5년 정도 하다가 그 당시 공무원보다 대우가 훨씬 좋은 문화방송국에 입사를 하면서 그 이후로 쭉 언론계에 있었지요. 언론계는 다른 직업과 달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러면서 많은 인연을 쌓았지요.”


가족으로는 부인 권정숙(68세) 여사와 25살에 결혼을 해서 2남 1녀를 두었다. 본은 진성, 와룡 주하가 고향인 그는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몇 년 전까지는 테니스, 축구, 낚시 등 취미생활을 많이 했는데 요즘엔 따로 하는 운동은 없고 가끔 등산을 다닌다고 한다. 큰돈이나 명예를 얻지는 못했지만, 하고 싶은 일은 마음대로 다 하고 살았던 것 같아 뒤돌아보면 행복하게 살아온 것 같다. 부임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직원들과도 격의 없이 지내는 편이다.
“직원들과 격의 없이 편하게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문화원은 행사가 많아서 전 직원이 다 바빠 서로 도와가면서 일을 해야 하지요. 그래서 행사장에 갈 때나 일이 있어 외출할 때는 직접 운전을 해서 이동하고 알아서 하니까 직원들이 편하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안동시민들에게 안동문화원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해달라고 하자 그는 명쾌하게 대답한다.
“안동시청이 안동의 모든 행정을 보는 곳이라면, 안동문화원은 안동 시민들의 정신문화를 담고 있는 곳, 즉 안동의 문화지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특별한 계획을 묻자 우선 단기적으로 5월에 있을 행사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문화란 계속 이어지는 것이 생명인 만큼 지금까지 이어온 문화를 전승하고 보존, 발굴하는 것이 우선이지요. 해서 기존 틀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올해는 우선 효의 달을 맞이하여 5월 17일 KBS안동방송국과 공동주최로 큰 공연 계획을 갖고 있어요.”


문화원에서는 지역고유문화의 개발․보급․보존․전승을 해야 하고, 향토사의 조사개발 및 사료의 모집, 보존 및 보급도 해야 한다. 또한 지연문화행사를 개최해야 하고 문화에 관한 자료의 모집, 보존 및 보급도 해야 한다.
이재춘 신임 안동문화원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안동의 문화를 발굴하고 전승 홍보하며 보존해 온 전임 원장들이 닦아 놓은 바탕 위에 시민과 더불어 지역문화를 가꾸는데 모든 힘과 정성을 쏟겠다는 다짐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안동>

통권127호 - 이달에 만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