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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황금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김필녀

아정 김필녀 2010. 12. 16. 12:01

 

 

황금잔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김필녀

 


맑고 투명한 햇살 따스하게 내려앉은

넓은 창가에 마주 앉아

황금잔에 담긴 커피를 마신다

도둑이 은수저를 훔쳐가면서 그 자리에

다른 집에서 훔쳐온 황금잔을 놓고 갔다는

로마시대 전설이 문득 떠오른다

긴 세월 애타하며 서로의 마음 알기까지

잃어버린 것이 가벼운 은수저였다면

그대로 말미암아 가슴 졸이며 얻은 것이

황금잔보다 더 무겁고 소중하다는 것

빨간 단풍이 다시 물들고서야 깨닫는다

서로의 눈부처 마주하며 가슴 젖고

진한 커피 향기에 마음 활짝 열었던

시월 어느 멋진 날 창밖에는

우리들 마음같이 붉게 타는 단풍잎

노란 국화향기 취하도록 아름다웠다.


- 계간 <시하늘> 2010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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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세간의 화제를 모은 장동건과 고소영의 비공개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은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주례사를 통해 소개한 이야기가 바로 ‘황금잔' 전설이다. 로마시대 한 제사장이 집에 도둑이 들어 은수저를 도둑맞았다. 그 말을 들은 황제가 위로를 하자 제사장은 오히려 싱글벙글했다. 도둑이 딴 집에서 훔친 황금잔을 깜박하고 은수저가 있던 자리에 놓고 갔다는 것이다. 도둑이 들어 잃은 게 아니라 오히려 횡제를 한 형국이다.

 

 그러면서 제사장은 “결혼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황제에게 말했다. 남녀가 결혼을 하면 자유와 시간 등 잃는 것이 있지만 대신 평생의 반려자인 ‘황금잔'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조금 잃고 더 큰 것을 얻는 ‘결혼'을 축복하기 위해 이 전 장관은 이 예화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살림‘이란 말 이상으로 아름다운 말이 없다면서 일상의 반복을 일깨워 ‘살려내는 것’ 그것이 바로 ‘살림’이고, 결혼생활은 곧 ‘죽임’의 반대어인 ‘살림’이라며 주례사를 끝맺었다.

 

 그 황금잔은 배우자만이 아니라 생겨날 자식도 마찬가지 의미이고, 확장시켜보면 친구나 일도 황금잔에 비유할 수 있다. 시인은 황금잔의 의미를 정확히 깨달으면서 ‘그대를’ 긍정한다. “긴 세월 애타하며 서로의 마음 알기까지/ 잃어버린 것이 가벼운 은수저였다면/ 그대로 말미암아 가슴 졸이며 얻은 것이/ 황금잔보다 더 무겁고 소중하다는 것”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시작되는 ‘살림살이’에 그대가 함께 있어 감사하고 아름답다.

 

 부부는 오래, 아주 오래 함께 가야하는 소중한 인연이고 황금잔 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모두 다 은수저가 사라진 그 자리에 황금잔이 놓여있지는 않다. 세상엔 황금잔을 잃어버린 자리에 은수저도 아닌 스텐수저나 나무젓가락이 나뒹구는 경우도 있고 더러는 황금잔 보다 훨씬 귀한 것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운명적 순간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것에 대한 값의 계산, 기회비용과 수익 계산이 잘 못될 수도 있긴 있는 것이다.

 

 
ACT4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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