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의 바다 건너 / 유안진
눈 속의 바다 건너 / 유안진
풀잎 하나에 가을이 내려와 주고
비누 방울에도 무지개가 걸려 주는 이 땅에 태어나
병 되는 줄 알면서도 사랑을 하고
죽을 줄 알면서도 살아들 가는 중에 나도 끼여 있다
인생을 사느라 인생을 팔았고
시간을 아끼느라 시간을 낭비했던
열정은 수난의 맨발이었고
그리움은 눈먼 황홀이었다
여기를 보고 있어도 저기를 보는
뜬눈보다 보다 멀리 보는 눈먼 큰 눈을
딱부리 사팔뜨기 사발눈이라고들 하지만
눈 속에 출렁이는 바다는 아무도 보지 못한다
밤마다 외눈등대에는 불이 켜지고
태풍이 불고 파도가 끓어 넘쳐 뒤집히기도 한다
나의 왕국은 여기 아닌 끓는 바다건너 저기니까
나의 시대는 훗날 언제이니까
눈동자 너머의 저기로 가는 희망 봄
새 우주 새 행성의 신대륙으로 가는 길
물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뜨거운 내 눈물, 그 외길 밖에는,
- 시집<거짓말로 참말하기>(천년의시작,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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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란지교를 꿈꾸었던 유안진 시인의 좀 ‘연식’이 지난 시점에서 쓴 삶에 대한 성찰이다. 그리고 이 시는 구도자로서의 삶과 문학을 일치시키고자 평생을 애쓰신 구상 시인을 기리고자 제정한 <구상 문학상> 제2회 본상 수상자의 자선 대표작이다. 되도 않은 말을 잇기 보다는 상의 심사위원장인 문학평론가 임헌영의 심사평을 붙이는 게 더 마땅하다 싶어 일부를 소개한다.
“1970년 첫 시집 <달하>에서 ‘내명(內命)한 사람’으로‘끝없는 겸손과 여성적인 섬세한 몸가짐’의 시인이란 평을 시의 스승 박목월로부터 얻은 유안진 교수의 전공은 교육심리학, 그 중 한국전통 유아 및 아동교육이다. 저 면면한 전통문화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를 통하여 유 시인은 고전적인 정서에 바탕 삼은 현대적인 삶의 조화를 추구하면서 문학세계를 구축해 왔다. 유안진의 시는 인간과 사물과 신을 두루 사랑하려다 겪은 실패와 절망과 분노의 부끄러움이 준 ‘아픔’을 치유하려는 진아(眞我)찾기이다. 그 도정에서 유 시인은 ‘구름의 딸’이자 ‘바람의 연인’으로 ‘세상의 누이’가 되고자 몸을 한껏 낮춘다. 아픔을 지닌 모든 존재와 구원을 위한 영혼의 방생(放生)을 이루고자 ‘대승의 경지'에 이르는‘지도책(知道冊)’, 그게 바로 유안진의 시정신이다.”
수상자인 유안진 시인은 수상소감에서 ‘지금 여기’ 아닌 ‘훗날 거기’를 지향하며, 거기가 하느님 나라거나 꿈속 이상향이거나간에 분명 현재의 상태는 아니라는 생각으로 시를 써왔다면서 상금으로 받은 5천만 원의 절반을 그간 조금씩 지원해 왔던 장애인들의 집<안동재활원>에 보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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