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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골 국민학교를 추억함/ 유하

아정 김필녀 2012. 5. 17. 16:35

- 1960년 3월 대구중앙국민학교 입학식

 

 

시골 국민학교를 추억함/ 유하

 

 

내 가슴엔 아직도 사루비아의 달콤함이 살고

여선생님 하얀 치아의 눈부심과 새 수련장

빠알간 색연필로 쓴 참 잘했어요가 산다

 

히말라야시다 오동나무 가지 사이로

놀러 온 햇볕도 다람쥐도 찌르레기도

어린 풍금 소리에 맞춰

가슴에 달린 손수건처럼 마음을 펄럭이던,

그래 생명의 모든 국민학교가 거기 있었지

 

아직도 내 입 안에 사는

철수와 영희, 아련하게 바둑이를 부르며

둥글게 둥글게

그 착한 영혼의 이름들로 충만한 운동장

아, 다시 가고 싶어라

 

환한 금빛,

모래알의 은하수

 

- 시집 <세상의 모든 저녁>(민음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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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현종 시인은 ‘내 삶의 최초의 이미지’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30여 년 동안 초 중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고 그 다음 30여 년 동안은 같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나의 이력서는 불과 대여섯 곳의 각 급 학교 이름들이 전부다. 그 속에 단조로운 나의 일생이 훤하게 비쳐 보인다. 그 출발점에 내 삶의 향기와 빛을 압축한 듯한 최초의 이미지, 고향의 시골 국민학교가 있다. 나는 마치 그 최초의 이미지를 되찾기 위하여 멀리 세상을 우회해 온 것만 같다’

 

 그러면서 그 최초의 이미지를 이렇게 노래했다. ‘아, 시골 국민학교/ 전경이 그 품속에 나를 안는다./ 그 품속에/ 나는 안긴다,/ 안기고 또 안긴다.// (세상을 통틀어/ 거기에만 있는) // 신성한 평화여/ 시간의 꽃이여/ 꿈꾸는 메아리여/ 막무가내의 정결이여/ 우주의 신성 수렴이여 .... ’ 그렇다. 생각해 보면 내 시간의 꽃도 그쯤에서 피었을 것이다. ‘앞으로 나란히’ 구령에 얌전히 두 팔을 가지런히 벌렸던 그 시간들, 그 어떤 환멸도 존재하지 않는 사루비아 꽃같은 달콤한 시간들.

 

 바람결을 타고 온 풍금소리, 은은하게 들으며 마룻바닥을 문질렀던, 막무가내로 외워댔던 구구단, 숙제한 공책에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다섯 개나 그려주셨던 예쁜 여선생님, 교실 마루 옹이구멍에 빠트렸던 몽당연필, 운동회 날 머리통에 질끈 묶었던 파란 띠, 오자미를 던져 종이 박을 터트렸던 그 순간, 코 훌쩍이며 딱지와 구슬에 목숨 걸었던 비좁은 골목, 내가 한번 올라가면 반드시 나도 한번 내려와야 마땅하다는 걸 가르쳐준 시이소, 둥글게 둥글게 착하디 착한 그 영혼들.

 

 ‘그래, 생명의 모든 국민학교가 거기 있었지’ 개별 추억이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목차는 큰 차이가 없을 누구나의 그 시절, 비록 시골국민학교는 아니었지만 나도 ‘다시 가고 싶어라’ ‘환한 금빛, 모래알의 은하수’같은, 띠룩띠룩 군살 붙이지 않았던 내 최초의 이미지 곁으로.

 

 

권순진

 

출처 : 김필녀시인의 서재
글쓴이 : 김필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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