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동에서 띄우는 엽서 / 조영일
망월동에서 띄우는 엽서 / 조영일
광주로 가는 날 아침 굵은 비가 내렸다
산 자가 죽은 이에게 바치는 눈물이라며
함께 간 친구가 혼자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살아서 말하지 못한 비굴함 탓이었을까
입 벌려 내리는 비 무작정 받아 깨물며
축축이 피에 섞이는 비를 맞아야 했다
망월동 가지런한 무덤에 와 비로소
턱 없이 고개 숙이고 손 모아 쥔 부끄러움
내리는 비를 맞으며 씻고 또 씻는다.
- 격월간『유심』2011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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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5.18민주화운동 32주년을 맞았다. 망월동에서 매년 거행되는 기념식에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첫 해만 참석하고 4년 연속 불참이다. 정치적 손익계산을 따져 가지 않는 편이 득이겠다는 판단 때문일 수도 있겠고, 5.18을 바라보는 현 정권의 시각이 여전히 껄쩍지근하고 그 기념식 또한 내심 탐탁하지 않기에 발길을 끊었을 수도 있겠다. 지난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못 부르게 막으려했던 사실이나 대독이 아닌 국무총리 기념사로 대신한 것 등에서 다분히 그런 유추가 가능하다.
하긴 30년도 넘은 시간이니 세월과 함께 잊힐 만도 하고 그 역사적 의미도 많이 퇴색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해 5.18관련기록이 세계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었음에도 아직 5.18에 대한 많은 왜곡이 있고 진상규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은 아무리 부끄러운 비극의 역사라지만 덮어두기에는 왠지 깨름직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당시 신군부에 의해 생산되고 유포시킨 왜곡된 담론에 갇혀있는 사람이 적지 않으며, 진상규명문제도 피해 진상은 밝혀졌는데 가해 진상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북한의 공작과 깡패들의 준동에 의한 폭동이고 북한군이 투입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지금도 있는가 하면, 당시 전라도 주유소에서는 ‘김대중 선생 만세’를 외치치 않으면 기름을 팔지 않았다는 유언비어까지 아직도 낄낄거리며 유포하고 그걸 여전히 믿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5.18 희생자에게 제대로 사과한 일도 없다. 가뜩이나 현 정권의 실책과 악수가 민주화의 후퇴로 인식되고 있는 마당에 일련의 정부의 태도는 5.18희생자와 광주시민은 물론 국민들에게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거나 뒷걸음질로 읽혀지기 십상이다.
이 시는 안동에서 태어나 안동에서 살고 있으며, 현재 경북문인협회장과 이육사문학관장으로 있는 시조시인이 망월동 묘지를 찾아 느낀 감회와 성찰을 술회한 작품이다. 이곳에서 죽은 자의 비석을 어루만지며 길게 늘어선 영정을 바라보노라면 ‘입 벌려 내리는 비 무작정 받아 깨물’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 부채의식, 깊은 성찰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표현들로 시종 일관된 시조이다. 누군가는 망각을 재촉하지만 이대로는 오월의 피가 결코 씻겨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