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정 김필녀
2012. 10. 24. 23:07
모성
김필녀
타는 가뭄과 폭염에도 쉬지 않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붉히던 고추 대궁
찬 이슬 맞으면서도 잎을 틔우고
오종종한 꽃을 달고 있다
끝물 고추를 따내고
대궁 밑둥치를 바짝 잘라 나가며 쉬기를 반복하는데
잘린 대궁마다 맑은 수액이 솟아나고
한 뼘 정도 되는 땅이 동그랗게 젖어 있다
제 몸뚱이 잘린 줄을 알면서도 뿌리는
생살 찢은 아픔을 참아가며 자양분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저 모성의 본능을 누가 말릴 수 있단 말인가
밑둥치를 자르던 손이 바짝 오그라든다
- 12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