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이다.
매운 계절을 잘 견디어 온 봄꽃들이 앞 다투어 피기 시작한다. 화려하면 화려한대로, 소박하면 소박한대로 저마다의 색깔과 향기를 지닌 채 한껏 뽐내고 있다.
크고 화려해서 눈길을 끄는 꽃이 있는가 하면 눈에 잘 띄지 않은 작은 들꽃도 있다. 자연에 순응하며 그들만의 질서와 법칙에 따라 의미 있게 피고 지며 열매를 맺을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꽃이 피는 것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련이나 벚꽃은 물론 민들레나 제비꽃 같이 한갓진 곳에 피는 작은 들꽃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꽃이 좋아지면 나이가 들었다고들 한다. 내 나이도 오십대 후반이니 적은 나이는 아니다. 나이에 걸맞은 삶을 살아왔을까, 하며 뒤를 돌아볼 때가 많지만 흔들리며 피지 않는 꽃이 없듯이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26년 전에는 남편의 직장을 따라 경기도 수원에 살고 있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지금처럼 꽃들이 만발한 봄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여쁜 딸과 유치원에 다니는 든든한 아들을 둔 새댁이었으니 말이다. 남편 또한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던 때였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던 시절이었다.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집안에서만 생활하다 어머니회나 소풍, 운동회를 빌미로 바깥나들이를 하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신이 났겠는가.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두었던 핸드백을 들고 신발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하이힐을 손질해서 신고서 치맛바람을 날리던 날들이었다.
그때 초등학교에 갓 입학을 했던 딸은 4년 전에 멋진 신랑을 만나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아 잘 기르고 있다. 아들도 남부럽지 않는 직장인이 되어 제 앞가림을 잘 하고 있다. 자식들이 26년 전의 내 삶이었던 꽃길을 환하게 웃으며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퇴직한 남편과 함께 시골로 이사를 해서 땅을 일구며 산지도 어느덧 4년이 지났다. 자연과 더불어 살다보니 세상을 보는 눈도 많이 순해졌다. 마음이 여유로우니 젊은 시절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았던 이름 없는 들꽃조차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리라.
해마다 감자농사를 조금씩 짓고 있다. 씨감자를 잘라 심은 후에 석 달 정도 지나면 햇감자를 수확하게 된다. 호미로 감자를 캐다보면 봄에 심은 씨감자는 수북이 달린 햇감자 사이에서 자양분이 다 빠져나간 채 홀쭉하게 겉껍질만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마치 자식들에게 모든 자양분을 다 내준 우리들 어머니 모습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자식들에게 어떤 어머니로 남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있는 것을 다 주고도, 더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내 자식도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아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가 되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세상기준에 눈멀어 앞만 보며 살아가기보다는 성실한 가운데서도 앞뒤를 돌아보면서 행복지수가 높은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해본다.
봄꽃들이 만발한 길을 걸었던 26년 전의 나는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인생의 가을 길을 여유롭게 걷고 있다. 이즈막에 내 삶을 돌아보면서 성공한 삶이었느냐 실패한 삶이었느냐는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삶이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다면 성공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2007년부터 4년여 동안 사랑방 안동지에 ‘신안동인’을 집필하기 위해 취재를 다니면서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6년 전에 안동문화방송에서 ‘사랑방 안동지 창간 20주년 특집방송’을 하기 위해 길안 대곡리로 귀향한 김연대 시인을 취재하러 카메라 기자와 함께 향하던 날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랑방 안동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 드리며 안동지를 통해 만났던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들 드린다.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151호>
김필녀 님은 안동문협, 안동주부문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안동지 ‘신안동인’꼭지에 필자로 오랫동안 참여해 왔다. 현재 서후로 귀농해 밭에서 열심히 일하며 시작詩作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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