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열애/ 이수익
열애/ 이수익
때로 사랑은 흘낏
곁눈질도 하고 싶지.
남몰래 외도(外道)도 즐기고 싶지.
어찌 그리 평생 붙박이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나.
마주 서 있음만으로도
그윽이 바라보는 눈길만으로도
저리 마음 들뜨고 온몸 달아올라
절로 열매 맺는
나무여, 나무여, 은행나무여.
가을부터 내년 봄 올 때까지
추운 겨울 내내
서로 눈 감고 돌아서 있을 동안
보고픈 마음일랑 어찌 하느냐고
네 노란 연애편지 같은 잎사귀들만
마구 뿌려대는
아, 지금은 가을이다.
그래, 네 눈물이다.
- 시집 『꽃나무 아래의 키스』(천년의 시작,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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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동 성균관대 입구의 대성전 앞에는 커다란 은행나무 두 그루가 마주보고 있다. 나는 벽오동 심은 뜻도 모르고 그 은행나무를 심은 뜻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이른바 은행나무 사랑의 모범적인 모습이라면 6백년이라는 그토록 오랜 세월을 붙박이 사랑으로 살아온 것에 경외심을 느낀다. ‘마주 서 있음만으로도’ ‘그윽이 바라보는 눈길만으로도’ 절로 열매 맺는 은행나무라면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도 가능하리라. 두 갈래진 은행 나뭇잎을 보고서 괴테는 ‘잎은 하나이면서 둘인가, 둘이면서 하나인가, 아! 사랑은 저러해야 하거늘’이라고 노래하였다.
아주 오래전 ‘제인 폰다’ 주연의 ‘바바렐라’라는 SF영화가 있었다. 섹스의 방식도 진화를 거듭하여 마주보고 두 손바닥을 맞대는 것만으로 정신적, 육체적 합일감에 이르는 미래형 섹스를 영화에서 선보였다. 중학교 2학년 때 대구 향촌동 송죽극장에서 나도 보았는데, 다른 건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그 장면은 비교적 또렷이 남아있다. 41세기 지구엔 더 이상 삽입 섹스는 없으며, 오로지 감정의 일치만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고 서로 주파수를 맞춘 채 손을 맞대고 있으면 사랑은 오메가까지 완성된다는 것이다.
다만 은행나무 같은 그 사랑에는 서로간의 진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나는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카사노바 식의 둘러대기가 아닌 통념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사랑을 구가할 수는 없을까. 은행나무는 바람이 거간 노릇을 한다지만, 사람에게도 좋아하는 사람끼리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자장이 보이지 않게 파동을 일으킨다. 그것은 육체적 끌림의 전조현상인 첫눈에 반했다든지 마광수 교수가 언급했던 ‘관능적 경탄’과는 변별되는 정신적인 어떤 것이다. 그것만으로 사랑을 종결짓는 플라토닉러브라고 해도 상관없겠다.
사람은 나이 들수록 정신적 사랑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 젊은 시절과는 달리 늙은이가 육체적 사랑에 허겁지겁 목말라하며 만용을 부리고 탐닉하는 노릇만큼 가련해 보이는 것은 없다. 정신적인 사랑은 구원의 손길을 약속하지만, 자칫 노년의 지나친 육체적 사랑은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다. 여우의 ‘신포도’처럼 꼭 전통적 방식의 사랑에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라기보다는 ‘그윽이 바라보는 눈길’같은 감정의 호사에 더 목이 말라서이다. 정말 그저 바라만 보아도, 손바닥만 갖다 대고도 충만한 사랑이 간절해지는 세월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좋은 것은 꼭 '온리 유'가 아니어도 무방하다는 점이다. 군데군데 은행 알이 보도 위에서 뒹굴고, ‘보고픈 마음일랑 어찌 하느냐고’ 노란 연애편지 같은 은행잎사귀도 직설법 추파처럼 마구 뿌려대고 있다. 사랑의 움직씨가 꿈틀거리기는 하는데, 절정과 조락을 동시에 맞는 ‘아, 지금은 가을’날들, 어떻게 다 흔들리고 추슬러야할지 걱정이다. ‘네 눈물’을 어찌 다 거두어야할지도 난감하다.
권순진
Goddess Of Love - Troi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