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 시인이 그의 ‘서시’에서 밝힌 것처럼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게 하소서. 그가 남긴 섬세한 시어를 통해 모든 인류가 싸움과 분열을 끝내고 사랑과 평화의 삶을 회복하게 하옵소서.”(조재국 연세대 교목의 기도문)
‘서시’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기독문인 고 윤동주(1917∼1945) 시인의 제70주기 추모식이 16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루스채플에서 열렸다.
유족과 ‘연세대 윤동주기념사업회’ 관계자, 연세대 동문 등 30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윤 시인처럼 생명을 바친 분들의 고독한 투쟁이 있었기에 우리 민족이 자유를 얻었다”면서 “우리는 그의 고결하고 숭고한 정신을 온전히 계승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추모식은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추모헌화로 시작된 추모식은 신현윤 연세대 교학부총장의 추모사, 박세용(일본 도시샤대학 동창회) 동문의 추모시, 김유문(서울대 정치외교학과3)씨의 헌정시, 박동성(연세대 국문과1)씨의 헌정편지, 장로회신학대 합창단의 추모합창, 유족 인사 등으로 이어졌다.
신 부총장은 추모사를 통해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겠다’던 시인의 다짐처럼, (교육자로서) 가장 약한 생명들을 보살피며 낮은 곳에 임하려는 젊은이를 길러내는 데 전력을 다해 왔는지 반성하게 된다”며 “겨레의 시인을 넘어 세계의 시인으로 거듭나는 윤 시인의 준엄한 정신을 기억하고 되살리는 데 온 정성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헌정편지에서 “‘십자가’ 시를 통해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고통스러워하는 우리 민족을 위해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겠다고 다짐하신 선배님의 고백은 압권이었다”며 “선배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영향이 너무나도 진하다”고 밝혔다.
유족대표인 윤일섭(성균관대) 교수는 “연세대가 중심이 되어 큰아버지(윤동주)의 정신이 널리 퍼지길 기원한다”면서 “그분이 원하신 사랑과 평화의 세계를 위해 함께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2000년 발족된 연세대 윤동주기념사업회 등 관련단체들은 윤동주 서거 70주기를 맞이해 다양한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연세대는 올해 하반기 윤 시인이 학생시절 기숙했던 연세대 내 핀슨홀 전체를 윤동주 기념관으로 만들기로 했다. 지난해 설립된 ‘용정 윤동주연구회’는 오는 5월 윤동주를 기념하는 청소년 인물 전기를 펴내고, 백일장과 시낭송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그가 수학했던 일본 릿쿄대와 도시샤대, 생을 마감한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 부지에서도 최근 한·일 지식인들이 시비 건립 및 추모식을 거행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윤 시인을 기념하는 추모의 열기가 뜨겁다.
연세대 윤동주기념사업회 최문규 운영위원장은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한·중·일을 거친 윤 시인은 시를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한 최초의 시인”이라면서 “윤 시인은 과거뿐 아니라 미래의 한·중·일 관계를 성찰하는 좌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시인은 중국 북간도 출생으로 연희전문학교(연세대의 전신) 졸업 후 일본 도시샤대학 영문과에서 공부하다 1943년 사상범으로 일경에 체포됐다. 1944년 6월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윤 시인은 할아버지가 북간도 명동촌 명동교회 장로를 지내고 자신도 유아세례를 받는 등 기독교집안에서 자랐으며,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작품들을 다수 남겼다.
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