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그대가 별이라면/ 이동순
그대가 별이라면/ 이동순
그대가 별이라면
저는 그대 옆에 뜨는 작은 별이고 싶습니다
그대가 노을이라면
저는 그대 모습을 비추어주는
저녁하늘이 되고 싶습니다
그대가 나무라면
저는 그대의 발등에 덮인
흙이고자 합니다
오, 그대가
이른 봄 숲에서 우는 은빛 새라면
저는 그대가 앉아 쉬는
한창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이고 싶습니다
- 시집『그대가 별이라면』(시선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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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사랑시와 연가는 다 그게 그것 같고, 어디서 한번은 들은 듯해서 도무지 새로울 게 없어 보입니다. 이 시만 해도 먼저와 나중을 떠나 왠지 낯이 좀 간지러우면서도 처음 읽는 시가 아닌 듯 생각됩니다. 그대를 별에 비유해 그 배경으로 노을을 그려놓으면 얼른 이동원의 ‘이별노래’가 떠오릅니다.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정호승 시인의 시가 노랫말이 된 것입니다. 나무도 마찬가지죠. ‘그대가 나무라 해도 내가 내가 잎새라 해도’ 한경애가 부른 ‘옛 시인의 노래’가 포개어져 읽힙니다.
결국 진부한 사랑타령임에도 ‘됐네, 됐어’라며 손사래 치지 못함은 어인 까닭인지요. 콧방귀는커녕 오히려 귀가 솔깃해집니다. 사랑은 아무리 퍼 올려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화수분이고 처음부터 길들여진 목마름이 아닐까요. 내남없이 사랑을 찾아 생애를 바쳐 헤매는 선천성 중독자들이니까요. 여전히 갈망하는 정신의 금강석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의 사랑은 자신을 당당한 주역으로 전면에 내세우질 않네요. 마주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습니다. 조건 없는 아가페 사랑인가 싶습니다만 그게 다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대가 1등성 왕별이라면 자신은 그 옆의 별 볼일 없는 작은 5등성별 정도나 되면 족하다고 토로합니다. 사람들이 그대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감탄할 때 자신은 그 배경일 따름인 하늘이고자 합니다. 그대가 우뚝한 나무라면 자신은 드러내지 않고 그대 나무뿌리에 덥힌 흙이기를 소망합니다. 사람들은 나무에 주목하여 칭송하고 고마워하지만 흙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흙 없이 나무가 자랄 수 있겠는지요. 자신은 아름드리 굳건한 나무 아래 흙으로 만족하고 보람이라 여깁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기꺼이 한 줌 흙이고자 합니다.
그동안 주춤거리며 은밀하게 유포되던 봄 기운이 설을 기점으로 공공연하고 파다해졌습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 사랑도 기지개를 켭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오래전 가야산국립공원 백운동 관리소 앞에 이 시를 새긴 목판을 보았습니다. 대개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봐도 못 본 척 냉큼 고개를 돌려버리더군요. 잠시 눈길이 머물렀어도 건성건성이었으며, 사랑에 대한 생각 한 모금 머금고 산을 오르는 이는 거의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저울에 올려놓고 눈금만 살피는 빠삭한 사랑만이 세상에 존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랑은 세상의 모든 것을 수식하면서 모든 것의 은유이기도 합니다. 고정희 시인의 ‘그대 생각’이란 시가 있습니다. “너인가 하면 지나는 바람이어라/ 너인가 하면 열사흘 달빛이어라/ 너인가 하면 흐르는 강물소리여라/ 너인가 하면 흩어지는 구름이어라/ 너인가 하면 적막강산 안개비여라/ 너인가 하면 끝모를 울음이어라/ 너인가 하면 내 살 찢는 아픔이어라” 너인가 하면 내 살 찢는 아픔이기도 한 그대 생각의 바람이 ‘한창 물오르는 싱싱한 가지’끝으로 불어와 물관부에 차오르고 있습니다. 그대여, 가지 위에 앉아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시기만 하면 됩니다.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