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남철 / 신영복
지남철/ 신영복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신영복 『담론』(돌베개, 201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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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통혁당 사건에 연루된 서울대 경제과 출신 27세의 대학 강사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 간 감옥을 살고 나와서 옥중 서신을 모아 출간한 책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이후 조용하면서도 견고한 정신세계로 다시 우리를 이끈 책이 <처음처럼>이며, 지난해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로 펴낸 책이 <담론>이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이 시대 삶의 지침으로 자리매김한 '처음처럼'은 소주의 로고체로도 사용되어 이른바 ‘신영복체’ ‘어깨동무체’ 등으로 불렸다. 선생 특유의 따뜻한 인생관과 세계관이 묻어나는 글을 읽다보면 문장의 길이에 상관없이 긴 여운을 남기는 구절을 자주 만난다. 그래서 봤던 것을 가끔 다시 들추어 읽을 정도로 선생의 글을 좋아했고 선생을 존경해왔다.
그런 선생께서 지난밤 10시 경 세상을 떠나셨다는 부음을 들었다.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에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되면서 끝내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삶에 대한 사색, 생명에 대한 외경, 함께 사는 삶, 성찰과 희망에 대한 여러 글들이 깊은 가슴 속에서 일제히 전률하는 느낌이다. 살다보면 숱한 난관과 부딪히고 그때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내면서 마음을 굳세게 하는데, 선생이 우리에게 들려준 일관된 주제가 바로 역경을 견디는 자세였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라는 구절과 함께 <담론>가운데 한 대목인 '떨리는 지남철'에 관한 이야기가 가슴에 박힌다. 수많은 처음이란 결국 끊임없는 성찰이며, 날마다 갱신하는 삶을 살아가라는 뜻이리라. 양심과 각성을 함의한 '나침반의 바늘이 흔들리는 한 그 나침반은 틀리는 일이 없다'란 말은 원래 아라비아의 경구라고 한다.
선생은 "지남철의 여윈 바늘 끝처럼 불안하게 전율하고 있어야 하는 존재가 지식인의 초상"이라고 했다. 어느 한쪽에 고정되면 이미 지남철이 아니며 참다운 지식인이 못 된다는 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보다 '사표로서의 지식인상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며,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품성은 단연 '양심'이라고 말했다. 양심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인간학일 뿐 아니라 그 시대와 사회를 아울러 포용하는 세계관이며 관계를 조직하는 장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양심은 이처럼 인간과 세계를 아우르는 최고 형태의 관계론이면서 동시에 그것은 가장 연약한 심정에 뿌리 내리고 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품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집단적 지성'을 강조하면서 '일몰에서 일출을 읽을 수 있는 열린 정신이 바로 지식인의 참된 자세'라고 했다. 선생의 지혜에 많은 빚을 지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아직 시대의 일출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선생의 타계가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가슴마다 '사표로서의 지식인상'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신영복 선생의 명복을 빈다.
권순진
Nearer My God To T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