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쉬/ 문인수
쉬/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이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이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 봐 "아버지, 쉬, 쉬이, 아이쿠 아이쿠, 시원하시겄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누였다고 합니다.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가 그렇게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 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ㅡㅡ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 시집『쉬!』(문학동네,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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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많이 알려진 대로 정진규 시인의 부친 상가에 갔던 문인수 시인이 정 시인에게 들은 부친과의 회고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 회고담은 '환갑이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이다. 이를 듣는 순간 성능 좋은 촉수가 번득였고 이거 잘 하면 괜찮은 시가 한 편 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곧장 대구로 내려와 단숨에 초고를 다듬었다. '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떠나버린 노구를 꼭 안고서 옛날 옛적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랬듯이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겄다아"며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누이는 행위가 시인에겐 '몸 갚음'으로 포착되었던 것이다. 일화는 정진규 시인의 것이지만 비로소 시는 문인수 시인에게로 온 것이다.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길고 긴 뜨신 끈' 시에서 '뜨신 끈'으로의 비유는 문인수 시인 특유의 감각을 멋지게 살려낸 대목으로 이후 그의 모든 시에서 전매특허처럼 사용되고 있다. 지금껏 각자가 눈 오줌발의 길이를 끈으로 환산해 잇는다면 한라에서 백두까지 세 번은 왕복하고도 남으리라. 그 '길고 긴 뜨신 끈'은 생명의 존재를 증거 하는 한편 인간의 모든 욕망을 함의한 존재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늙은 아들은 그 끄나풀을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 매려하고 그 아버지의 끈은 이제 '툭, 툭, 끊기'면서 힘겹게 마저 풀리고 있다. 그때 아들은 '쉬!' 추임새를 넣는다. 한번은 길게 또 한번은 짧게. 어릴 적 많이 들어본 이 단음절의 언어를 아들의 가슴에 안겨 다시 듣는다. 쉬이 누어보시라는 추임의 뜻 말고도 우주적 고요를 이끌어내는 말이기도 하고 또 이 밀교의 행위를 빤히 지켜보는 삼라만상을 향해 비밀유지를 당부하는 주술적 언어이기도 한 것이다. 아버지를 향해, 우주를 향해 그리고 신을 향한 절절한 울력의 소리였던 것이다. 며칠 전 쓸개를 떼어내는 수술을 마치고 병원에 누워계신 구순 어머니가 링거 줄은 주렁주렁 달고 있지만 도무지 뭘 삼키려하지 않는다. 6일째 입을 꼭 다물고 곡기는 물론 물도 마다하신다. 수술 전에는 입술이 자꾸 마른다며 '물 한 모금 마시면 안 되겠냐'고 그토록 애절하게 물을 찾으셨건만, 안 된다는 간호사의 말을 받들어 그 부탁 들어드리지 못했는데 막상 금식이 풀린 지금 내 입술을 바짝바짝 마르게 하신다. 빨대를 꽂은 물병을 입에 갖다 대어도 도무지 빨 생각을 않으시고 멀건 죽을 티스푼에 떠서 드려도 입을 벌리지 않으신다. "아! 아~ 엄마 입 벌려봐" 어쩌다 열린 입에 퍼진 밥알 몇 개 넣어드리며 "그래 어이구 어이쿠 잘 드시네, 이제 밥도 먹고 기운 차려서 나가면 봄날 꽃구경도 가야지" 하지만 툭툭 끊기고 마는 뜨신 밥끈. 우주는 조용한데 이 시간 '쉬!'의 하위 버전 같은 '아!'를 되내이며 입으로 힘없는 동그라미만 그린다.
권순진
Love Is The Aspiration Toward Perfec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