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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새해 첫 기적 /반칠환(1964~ )
아정 김필녀
2018. 2. 19. 18:48

새해 첫 기적
반칠환(1964~ )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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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경기장이다. 날고 뛰고 걷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기고 구르고 주저앉은 선수도 있다. 인간은 구경꾼인 것 같고. 삶의 속도는 다 다른데 모두 한날한시에 같은 곳에 도착했다. 삶의 시간이 같기 때문이다. 속도가 현상이라면 시간은 본질이라고 이 시는 모순을 숨기지 않고, 하지만 역설에 기대어 말한다. 꿈쩍도 않고 1등을 한 바위를 보라. 무엇을 얼마나 겪고 뭘 손에 쥐었느냐가 아니라 같은 세상에서 같은 1년을 산 것이 참가 자격이다. 생존의 경주를 잊은 생의 경연장에서는 날아다닌 황새나 자던 바위나 다를 게 없다. 같은 곳에 서서 새해를 맞으니, 출발부터가 기적이다. 삶은 기적 아니냐고 시인은 이렇게 우긴다. 또 한 해, 달려볼까? 그런데 인간은? 기적에 동참하지 않을 만큼 우리는 어리석지 않다. 어리석지 않을 것이다.
<이영광·시인·고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 碧波 藝術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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