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녀의 삶과 문학/김필녀자작글모음
끝물고추
아정 김필녀
2018. 12. 19. 21:01
끝물고추
김필녀
무서리 내린 아침
고추밭이 부산하다
긴 가뭄과 폭염에도
꿋꿋이 견디어내던 고추대궁
모질게 흔들어대던 태풍에도
주렁주렁 달린 식구들 온전히 지켜내더니
늦게 달린 끝물고추 걱정에
찬이슬 맞으며 밤을 새웠다
붉을 대로 붉어진 맏형은
아직 붉어보지 못한 여린 동생들에게
살아갈 길 일러주느라 바쁘다
붉으면 붉은 대로
푸르면 푸른 대로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오묘한 진리 깨달으며
지난여름 무던히도 참고 인내했던
농부의 아내도
상강 지나면 못쓰게 될
끝물고추로 장아찌를 담그며
가을걷이 걱정에 마음이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