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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윷을 놀며 고향을 그려본다

아정 김필녀 2018. 12. 19. 21:04

 

마당윷을 놀며 고향을 그려본다

 

김필녀

 

 

동네마다 마을회관이 떠들썩하다. 무릎이 시원찮아 평소에 조신하던 어르신들도 윷놀이를 하는 시간만큼은 젊은이들 못지않게 활기찬 몸놀림이다. 윷말을 쓰며 상대편과 잠시 언쟁도 하지만 같은 편에서 윷이나 모를 치면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한다. 상품으로 탄 두루마리화장지 뭉치가 이긴 팀 보다 좀 작으면 어떠랴. 하루 종일 박수치며 한바탕 놀았으니 엔돌핀이 솟아 십년은 더 젊어지셨으리라.

 

안동을 비롯하여 경북북부지역에서는 설과 정월대보름 사이에는 서넛만 모여도 윷놀이를 한다. 큰 단체나 모임마다 윷놀이 예약이 많아 식당마다 반짝 호황을 보는 때이기도 하다. 안동으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때는 윷놀이는 물론 윷말도 쓸 줄 몰랐는데 30년 넘게 살다보니 몸에 배여 신명나게 즐기고 있다. 대부분 편을 짜서 놀기 때문에 내가 이겨도 내편이 지면 지는 것이 윷놀이다.

 

이육사문학관에서는 해마다 문학관 정회원들을 초대해서 세배도 하고 마당윷놀이를 하며 육사선생님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초대장을 받아들고 문우들과 함께 참석을 했다. 옥비여사님과 조영일관장님의 안내를 받으면서 새로 지은 육우당 마당으로 향했다. 볕이 잘 드는 마당에는 멍석이 깔려있고 중간에는 무릎 높이 정도 되는 줄이 양옆으로 쳐져 있었다. 싸리나무로 다듬어 놓은 윷도 제법 굵어 쳐놓은 줄을 넘길 수 있을까 싶어 미리 팔운동을 했다.

 

편이 짜이고 참석한 선생님들 모두 모야 윷이야하며 신이 났다. 윷말을 쓰느라 옥신각신하는 한쪽에서는 술을 좋아하는 선생님들끼리 막걸리 판도 벌어졌다. 연신 먹을거리를 내어 오시는 옥비여사님 치마폭에도 신명이 저절로 실린다. 윷놀이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전에 맞절로 세배를 하며 한 해 동안의 무사안녕을 덕담으로 주고받았다. 이긴 편도 진편도 선물이 똑같다며 한바탕 웃기도 했다.

 

새로 증축한 문학관과 생활관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안동문협 선생님들과 함께 예안 예끼마을과 선성수상길을 걸었다. 고향이 물속에 잠긴 몇몇 선생님들의 감회가 남달라 보였다. 풍금이 놓여 있는 자리에 선 채, ‘여기가 바로 초등학교 자리고, 저기는 중학교가 있던 곳이고, 저 멀리 보이는 곳이 우리 집이 있던 자리라며 찰랑거리는 물위를 가리키는 음성이 떨리는 듯했다. 안동댐 수몰로 인해 고향을 잃어버린 분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동성마을이었던 내 고향에서도 이맘때쯤이면 남매 계를 모아 마당윷을 놀았다. 집집마다 매밀묵을 쑤고 손두부를 만들고 술을 거르느라 분주했다. 꼬맹이들도 먹을거리가 많으니 절로 신이 났다.

 

쉰둥이 막내였던 나도 손꼽아서 이 날을 기다렸다. 나보다 열일곱 살, 열아홉 살이 많았던 언니들이 예쁜 옷과 맛있는 음식들을 잔뜩 사가지고 오기 때문이었다. 딸 같은 처제였지만 형부들이 예법을 지킨다고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던 모습도 기억이 또렷하다. 세뱃돈까지 두둑하게 받았으니 어찌 신이 나지 않으랴.

 

편을 짜서 마당윷을 놀 때는 딸과 아들이 한편이고, 사위와 며느리가 한편이 되었다. 윷말이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지만 윷을 던질 때마다 뒷모도 앞모도니, 방여나 참먹이라며 머리로 윷말을 잘도 썼다. 몇날며칠을 징과 꽹과리를 두들기며 신명나게 놀던 그 분들도 이제는 거의 다 고인이 되고 고향마을도 텅텅 비어가고 있다.

 

수몰로 고향을 잃은 분들만큼은 아닐지라도 세월 따라 빈집이 점점 늘어가는 고향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허전하기 그지없다. 지척이 고향이지만 부모님이 안계시니 자주 찾지 못하고 내 고향 늪실. 어쩌면 마당윷놀이를 하며 토담 틔워 살갑게 지내던 고향의 정겨움을 잠시나마 느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날이 풀리면 고향집 뒷산에 쌍분으로 묻혀계신 부모님 산소에라도 한번 다녀와야겠다.

 

윷놀이에 대한 유래는 다각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아직 정설은 없고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윷놀이의 도, , , , 모는 각기 돼지, , , , 말 등의 동물을 가리킨다. 이는 부여의 마가(), 우가(), 저가(돼지), 구가()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윷놀이는 윷과 윷판, 윷말만 있으면 장소에 구애 없이 놀 수 있어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친근한 서민적 놀이 문화다. 재미로도 하지만 농경사회에서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고 한다. 우리 선조들은 윷판을 농토로 삼고 윷놀이를 통해 윷말을 돌려 계절을 변화 시키면서 항구적인 풍년농사를 기원했다고 전해온다. 설날에 윷놀이로 즐겁게 새해를 맞이하였고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봄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날 겨우내 갈무리했던 종자를 점검했다. 용하게도 매서운 추위를 견딘 씨감자마다 작은 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땅을 일구는 농부에게 파종할 준비를 하라는 신호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풍년을 기원하는 마당윷놀이도 신명나게 놀았으니 이제부터 부지런하게 농사 준비를 해야겠다.()

 

- 격월간지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 2018년 3,4월호(통권 170호)

- 김필녀시인의 농장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