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안 만휴정에서 / 080320
격월간으로 발간되는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지'에 실을 기사를
취재하러 길안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만휴정에 잠시 들렸습니다.
봄이 오고 있는 만휴정은 너무도 고요하고 한적하여 
겨우내 무거웠던 마음들을 훌훌 털어버리게 했습니다.
마음이 우울하고 외로울 때 한번 쯤 다녀오면 좋을 듯 합니다.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에 있는 만휴정(晩休亭)은 
인근 묵계서원에 배향된 보백당 김계행(1431~1517)이 
만년을 보내려고 지은 정자다.
만휴정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홑처마 팔작집이다. 
앞은 고스란히 개방하여 툇마루로 구성했고 뒤에는 양쪽에 
온돌방을 들였다. 누마루에 앉으면 담장 너머로 계곡과 시냇물, 
바위와 소나무가 하나로 어우러진 풍경이 무심히 다가온다. 
16세기 초에 지어진 이 정자는 여러 차례 수리로 변형되었고 
조선 후기의 양식을 보이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보백당 김계행은 퇴계 이황, 서애 유성룡보다 한 세대 앞선 인물이다. 
마흔 아홉, 뒤늦게 대과에 급제, 쉰이 넘어서 본격적인 벼슬살이를 시작했다. 
성균관 대사성, 대사간, 이조참의 등을 역임했으나 부조리한 정치현실을 
비판하는 상소를 끊임없이 올려 출사와 퇴사를 거듭해야 했다. 
무오사화(1498) 이후, 그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안동 풍산(豊山)에 은거하였다. 
여든 일곱에 운명하면서 자손들에게 보백당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조선 초기 청백리로 뽑힐 만한 기개의 언명(言明)이다.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내 집에 보물은 없다.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 보물이 있다면 오직 맑고 깨끗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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