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전교인 공동체 성경 이어쓰기

 

 

올 해 오직 말씀에 집중하고자 진행하는 전교인 공동체 성경 이어쓰기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일시: 2014년 1월2일(목)~12월31일(수)

(2) 범위:성경전체

(3) 장소: 안동교회 품음터 기도실

 

 

 

※성경이어쓰기 방법

성경 쓰기 준비 사항 점검

(1) 성경, 필사 용지, 전등 및 펜이 마련되어 있는지 살펴봅니다.(사무실에 문의)

(2) 성경을 쓰는 데에 불편한 요소는 없는지 살펴봅니다.

 

기도

성경쓰기에 앞서 먼저 말씀하시는 주님 의 임재를 사모하며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정결한 마음과 영을 주셔서 말씀을 쓰는 가운데에 우리에게 오시어 말씀하여 주옵소서

 

성경 이어 쓰기 시작

(1) 기록자의 이름(구역), 기록 날짜를 쓰고 성경을 한 절씩 정성을 기울여 정자로 씁니다.

(2) 앞 사람이 기록한 다음 성경 부분을 이어서 씁니다.

(3) 1개인 당 용지 한 면 단위로 쓰도록 합니다.

(4) 장과 장을(1장과 2) 연속하여 필사하지 말고 한 줄을 비워서 씁니다.

(5) 성경 권과 권(창세기와 출애굽기)연속하지 말고, (페이지)을 바꿔서 씁니다.

(6) 한 페이지가 끝나는 아래 부분에 기도제목을 적습니다. 기도제목은 필사한 본문을 묵상한 후 찾은 기도제목을 기록하세요.

(7) 좌측 상단 성경 본문 장절은 기록한 후 가장 마지막에 기입합니다.

(8) 우측 상단 칸에는 이어쓴 번호를 기록합니다.

 

(쓰기 예)

                             오 직 말 씀

 

1

 

 

필사일: 201412

 

(창세기 1 : 1 - 2 : 1 )                                                                               (324)구역 이름: ❍❍❍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

 

행하시니라

31

(중략)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50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26

(중략)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한 권이 끝나면 여백은 비워두고 새로 시작합니다)

 

 

기도제목 : 성경 필사 하면서 찾은 기도제목을 기록하세요.

 

정리

(1) 마침 기도를 드립니다.

(2) 다음 사람이 이어 쓸 수 있도록 기록 면을 위로하여 보관함에 넣어 둡니다.

(3) 책상을 정리하고, 전등은 소등합니다.

 

 

 

 

 

 

 

 

 

 

출처 : 안동교회, 그 아름다운 역사의 시작
글쓴이 : 안동교회 원글보기
메모 :

안동교회는 2011년부터 지역의 독거 어르신들에게 반찬을 배달하고 있습니다. 홀로 계시면서 거동이 불편하거나 형편이 좋지 않은 분들을 선별하여(시청에서 준 명단으로 선별) 매주수요일 경로대학이 끝나면 교회에서 반찬 배달팀이 배달을 갑니다. 이 활동들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지역의 소외된 어르신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소망을 가지고 힘을 얻기를 기대해 봅니다.

 

<반찬배달 나가기전 한 컷>

 

<출발하기 전 한 컷, 첨에는 경로대학 교사들인 권사님들이 배달했지만, 현재는 장립집사님들 중심으로 배달하고 있다>

 

<준비한 반찬들, 정말 먹음직 스럽다>

 

<반찬을 드리고 있다>

 

 

 

<반찬을 받고 환하게 웃고 있는 할머니>

 

<반찬배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손도 잡아주고 안아주고 말벗도 해주는 반찬배달팀>

 

<감격하며 반찬을 받으시는 할머니.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출처 : 안동교회, 그 아름다운 역사의 시작
글쓴이 : 안동교회 원글보기
메모 :

지역사회에 끼친영향  

 ○계명학교(啓明學校)의 설립운영
 
 1911년 교회내에 초등교육기관인 「계명학교」를 설립하고 현 교육관 자리에 있던 건물에서 남.녀학생을 교육 시켰다. 설립당시는 3학년제로 시작하여 1927년에는 5학년제로 발전했다.

교과 내용은 조선어, 일어, 산수, 성경, 한문, 습자, 도화, 글씨(받아쓰기), 작문, 음악 등이었으며 역대 교사는 선교사와 본교회 교인중 지도급 인사들 다수가 봉사했다.

1937년 재학생은 남 76명, 여 56명, 계 132명이었다. 상민의 자녀도 받아들여 반상의 계급타파에 앞장섰고, 3.1만세운동에 참가함으로써 민족운동에까지 앞장섰다.


○경안중학원 설립운영
   
초등교육기관인 계명학교가 학교다운 면모를 갖추고 착실하게 지역사회 학교로서 위치를 굳혀가면서 본 교회는 안동지역에 중등교육 기관의 설립 필요성을 느끼고 제 3대 정재순 목사가 시무하던 1924년에 「경안중학원」을 설립하고 교사 4인, 학생 100여명이 입학, 거 노회적으로 힘찬 출발을 하였으나 재정이 어려워 오래가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안동유치원 설립 운영
  
  해방 후 학교교육이 충실하여짐에 따라 유아교육의 중요성이 고취되고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두지 않은 민족주의는 있을 수 없기에 조기 신앙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되어 안동교회와 애국부인동지회의 합작으로 안동에서는 최초의 유치원을 설립하고 1948년 3월에 권 태엽 기념관(현 교육관 위치)을 원사로 사용하게 되었고 이사장 김광현 목사, 원장 최매지씨(애국부인동지회 회장), 보모 이금석씨가 수고하였다.

  그 이후 애국부인동지회는 유치원 운영을 포기하여 교회가 단독 경영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으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치원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안동중앙 신용협동 조합 설립 운영
 
 「1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1인을 위하여」란 표어 아래 한국에 소개된 경제 운동인 신용협동조합이 1965년 11월 17일 안동교회내에서 발기준비위원회에 이어 1965년 12월 2일 오후 8시에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는데 가입자는 34명, 출자금은 4,260원이었고, 공동유대는 안동교회 교인으로 하는 정관을 통과시키고 임원을 선출했다.

  그 이후 공동유대는 안동교회인 및 그 가족으로, 다시 안동교회 인근 동민을 추가 확대하였고, 사무실은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 1976년 이후 교회건너편 도로변 4층 건물을 확보하였으며, 1989년 자산 19억, 1999년 현재 조합원 1866명, 자산 125억 7천만원으로 성장함으로 교인들의 경제적 역량이 크게 성장하였음은 물론 지역사회에 끼친 영향이 큼을 알 수 있다.

○장학제도 운영
    1957년에 신학생들에게 학비보조를 시작으로 1972년부터 중.고등학생, 간호고, 성서학원생에게 우등장학금, 1973년부터 교육대학생에게 농촌교회 요원 양성 장학금 및 중.고등학생, 신학생에게 독지가 장학금을 지급하여 오다가 1981년에 장학위원회를 설립하고 장학규정을 마련, 시내 중.고등학생, 교회출석 중.고등학생, 신학생, 외국유학생들에게 많은 장학금을 지급해왔으며, 1998년말 축척된 장학기금은 2억 2천만원, 1년간 장학금으로 3천 8백만원정도 지급했다.

○농촌봉사활동 전개
  
 본 교회 청년회에서는 1978년 8월 1~4일, 북후면 두산동, 신전동, 서후면 자품동에서 농촌봉사활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는데 거 교회적으로 많은 물자와 인력을 투입하여 노력봉사, 하기학교 지도, 미용을 통한 봉사, 축호 전도 및 전도집회 개최, 의료봉사활동 등을 전개하여 그 지역주민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1979년 8월 7일~10일 길안면 송사, 금곡, 묵계지역을 비롯하여 매년 농민들과 함께 직접 땀흘려가며 노력 봉사 및 선교활동을 전개하였고, 1980년대에 연중행사로 청년부와 대학부가 힘써왔다.

○경로대학 개설 운영
 
  교회 노인복지 향상을 위하여 1982년 기독노인회를 창설하고 본교회 교육관 일부를 노인회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1993년 4월 7일(수) 노인대학을 개강하였는데 65세이상 남,녀 노인 72명 등록으로 시작하였으며 매주 수요일 11:00-15:00, 견학 및 관광, 교양, 레크리에이션, 건강운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함으로 인기리에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1999년 현재 150여명의 남,녀 노인들이 참여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출처 : 안동교회 홈페이지, http://www.adpc.or.kr

 

☞ 실제 이 외에도 안동교회에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여러가지 사업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추후 정리하여 다시 전체적으로 올릴예정)

1. 사랑의 쌀나누기 운동 : 매년 가을에 지역의 독거노인들이나 소년소녀 가장 그리고 저소득층에 있거나 복지 사각지역에 있는 소외되고

    힘들어 하시는 분들을 시청과 연계하여 선별해서 사랑이 쌀을 나누고 있다.

2. 사랑의 열매나누기 운동 : 매년 성탄전날에 지역의 소년소녀 가장들을 선별하여 소정의 선물과 케잌을 준비해서 청년들이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불러 주며 성탄의 기쁨을 함께 하고 있다.

3. 대민 지원 및 복지사업 

    1) 무료도배 장판 교체 : 침수지역의 주민들을 위해 무료로 도배나 장판을 교체해 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2) 독거노인 무료 반찬 나눔 : 지역의 독거 노인분들을 선별하여 매주 수요일 마다 반찬을 배달하고 있다.

    3) 다문화 가정 지원사업 : 지역의 다문화 가정을 초청하여 위로와 함께 소정의 선물, 그리고 합동결혼식 혹은 신혼여행 보내주기 사업

        등을 하고 있다.

5. 안동평생교육센터 : 안동평생교육 센터는 기존 문화센터로 2005년 처음 시작하여 2012년 안동평생교육센터를 그 명칭을 변경하였다.

    안동평생교육센터는 지역사회를 향한 문화사역을 통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건전하고 유익한 여가선용과 성숙의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의 불모지인 안동지역의 문화 창출과 크리스천 문화 보급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 약 33개의 강좌를 개설하여 남녀노소

    모든 연령층이 다양하게 프로그램을 통해 활동하고 있다.

6. 안동노인종합복지센터 : "안동노인종합복지센터"는 기존 "안동경로대학"에서 쌓은 경험등을 바탕으로 하여 지역의 어르신들을 섬기고

   봉사하기 위해서 2011년 12월 20일 개관식을 가졌다. 이 사업을 통하여 안동교회는 독거노인 무료반찬 나눔사업을 실시중에 있으며

   2012년 5월 24일에는 "2012사랑비전대회"를 국제사랑재단과 손잡고 지역의 어르신들 중에서 장애를 갖고 있거나 저소득층에 있는 독거

   노인 50가정을 초청하여 총 1000여만원의 성금을 전달하였다. 또한 이 사업의 일환으로 2012년 가진 국가보훈자 초청행사도 역시 대상자

   중에서 독거노인들을 중심으로 행사를 진행한 바 있다. 앞으로 안동교회는 지역의 어르신들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노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7. 장애우 초청 행사 : 지역의 장애우들(장애우 기관들)을 초청하여 소정의 선물을 드리고 위로회를 갖고 있다.

8. 국가보훈자 초청 행사 : 지역의 국가 보훈자들이나 유공자들을 초청하여 소정의 선물과 함께 위로회를 갖고 있다.

9. 하늘씨앗 어린이 도서관 : 1996년에 처음 문을 열어서 지금은 엄청난 양의 어린이 도서를 소장하고 지역의 시민들에게도 무료로 책을

   대여해 주고 있다.

10. 로뎀나무 카페 : 아늑한 공간과 넓은 주차시설 그리고 바로 연결되어 있는 어린이 도서관까지 시민들에게 부담되지 않는 가격으로

   여러가지 음료와 부식들을 제공하고 있다.

11. 영곡아트홀 : 이미 널리 알려진 시설로, 시민들에게 좋은 문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발표회나 공연 및 콘서트등을 할 수 있는 제반

   시설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12. 이외에도 안동교회는 모든 분야에서 지역을 섬기고 봉사하기 위해 온 힘과 정성을 쏟고 있으며 2008년부터 3.1만세운동 거리재현

     기념행사등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지금까지 매년 참가자들을 위한 주먹밥을 제공하고 있다.

 

 

출처 : 안동교회, 그 아름다운 역사의 시작
글쓴이 : 안동교회 원글보기
메모 :

 

 

 

 

 

 

 

 

 

 

 

 

 

 

 

 

 

 

 

 

 

 

 

 

 

 

 

 

 

 

 

 

일시 : 2012년 8월 14일(화) - 15일(수)

장소 : 봉화 우곡성지

주제 : 행복한 가정, 건강한 교회 

출처 : 안동교회, 그 아름다운 역사의 시작
글쓴이 : 안동교회 원글보기
메모 :

지역사회에 끼친영향  

 ○계명학교(啓明學校)의 설립운영
 
 1911년 교회내에 초등교육기관인 「계명학교」를 설립하고 현 교육관 자리에 있던 건물에서 남.녀학생을 교육 시켰다. 설립당시는 3학년제로 시작하여 1927년에는 5학년제로 발전했다.

교과 내용은 조선어, 일어, 산수, 성경, 한문, 습자, 도화, 글씨(받아쓰기), 작문, 음악 등이었으며 역대 교사는 선교사와 본교회 교인중 지도급 인사들 다수가 봉사했다.

1937년 재학생은 남 76명, 여 56명, 계 132명이었다. 상민의 자녀도 받아들여 반상의 계급타파에 앞장섰고, 3.1만세운동에 참가함으로써 민족운동에까지 앞장섰다.


○경안중학원 설립운영
   
초등교육기관인 계명학교가 학교다운 면모를 갖추고 착실하게 지역사회 학교로서 위치를 굳혀가면서 본 교회는 안동지역에 중등교육 기관의 설립 필요성을 느끼고 제 3대 정재순 목사가 시무하던 1924년에 「경안중학원」을 설립하고 교사 4인, 학생 100여명이 입학, 거 노회적으로 힘찬 출발을 하였으나 재정이 어려워 오래가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다.

○안동유치원 설립 운영
  
  해방 후 학교교육이 충실하여짐에 따라 유아교육의 중요성이 고취되고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두지 않은 민족주의는 있을 수 없기에 조기 신앙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청되어 안동교회와 애국부인동지회의 합작으로 안동에서는 최초의 유치원을 설립하고 1948년 3월에 권 태엽 기념관(현 교육관 위치)을 원사로 사용하게 되었고 이사장 김광현 목사, 원장 최매지씨(애국부인동지회 회장), 보모 이금석씨가 수고하였다.

  그 이후 애국부인동지회는 유치원 운영을 포기하여 교회가 단독 경영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으니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치원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안동중앙 신용협동 조합 설립 운영
 
 「1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1인을 위하여」란 표어 아래 한국에 소개된 경제 운동인 신용협동조합이 1965년 11월 17일 안동교회내에서 발기준비위원회에 이어 1965년 12월 2일 오후 8시에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는데 가입자는 34명, 출자금은 4,260원이었고, 공동유대는 안동교회 교인으로 하는 정관을 통과시키고 임원을 선출했다.

  그 이후 공동유대는 안동교회인 및 그 가족으로, 다시 안동교회 인근 동민을 추가 확대하였고, 사무실은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 1976년 이후 교회건너편 도로변 4층 건물을 확보하였으며, 1989년 자산 19억, 1999년 현재 조합원 1866명, 자산 125억 7천만원으로 성장함으로 교인들의 경제적 역량이 크게 성장하였음은 물론 지역사회에 끼친 영향이 큼을 알 수 있다.

○장학제도 운영
    1957년에 신학생들에게 학비보조를 시작으로 1972년부터 중.고등학생, 간호고, 성서학원생에게 우등장학금, 1973년부터 교육대학생에게 농촌교회 요원 양성 장학금 및 중.고등학생, 신학생에게 독지가 장학금을 지급하여 오다가 1981년에 장학위원회를 설립하고 장학규정을 마련, 시내 중.고등학생, 교회출석 중.고등학생, 신학생, 외국유학생들에게 많은 장학금을 지급해왔으며, 1998년말 축척된 장학기금은 2억 2천만원, 1년간 장학금으로 3천 8백만원정도 지급했다.

○농촌봉사활동 전개
  
 본 교회 청년회에서는 1978년 8월 1~4일, 북후면 두산동, 신전동, 서후면 자품동에서 농촌봉사활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는데 거 교회적으로 많은 물자와 인력을 투입하여 노력봉사, 하기학교 지도, 미용을 통한 봉사, 축호 전도 및 전도집회 개최, 의료봉사활동 등을 전개하여 그 지역주민의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1979년 8월 7일~10일 길안면 송사, 금곡, 묵계지역을 비롯하여 매년 농민들과 함께 직접 땀흘려가며 노력 봉사 및 선교활동을 전개하였고, 1980년대에 연중행사로 청년부와 대학부가 힘써왔다.

○경로대학 개설 운영
 
  교회 노인복지 향상을 위하여 1982년 기독노인회를 창설하고 본교회 교육관 일부를 노인회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1993년 4월 7일(수) 노인대학을 개강하였는데 65세이상 남,녀 노인 72명 등록으로 시작하였으며 매주 수요일 11:00-15:00, 견학 및 관광, 교양, 레크리에이션, 건강운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함으로 인기리에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1999년 현재 150여명의 남,녀 노인들이 참여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출처 : 안동교회 홈페이지, http://www.adpc.or.kr

 

☞ 실제 이 외에도 안동교회에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여러가지 사업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추후 정리하여 다시 전체적으로 올릴예정)

1. 사랑의 쌀나누기 운동 : 매년 가을에 지역의 독거노인들이나 소년소녀 가장 그리고 저소득층에 있거나 복지 사각지역에 있는 소외되고

    힘들어 하시는 분들을 시청과 연계하여 선별해서 사랑이 쌀을 나누고 있다.

2. 사랑의 열매나누기 운동 : 매년 성탄전날에 지역의 소년소녀 가장들을 선별하여 소정의 선물과 케잌을 준비해서 청년들이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불러 주며 성탄의 기쁨을 함께 하고 있다.

3. 대민 지원 및 복지사업 

    1) 무료도배 장판 교체 : 침수지역의 주민들을 위해 무료로 도배나 장판을 교체해 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2) 독거노인 무료 반찬 나눔 : 지역의 독거 노인분들을 선별하여 매주 수요일 마다 반찬을 배달하고 있다.

    3) 다문화 가정 지원사업 : 지역의 다문화 가정을 초청하여 위로와 함께 소정의 선물, 그리고 합동결혼식 혹은 신혼여행 보내주기 사업

        등을 하고 있다.

5. 안동평생교육센터 : 안동평생교육 센터는 기존 문화센터로 2005년 처음 시작하여 2012년 안동평생교육센터를 그 명칭을 변경하였다.

    안동평생교육센터는 지역사회를 향한 문화사역을 통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건전하고 유익한 여가선용과 성숙의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의 불모지인 안동지역의 문화 창출과 크리스천 문화 보급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 약 33개의 강좌를 개설하여 남녀노소

    모든 연령층이 다양하게 프로그램을 통해 활동하고 있다.

6. 안동노인종합복지센터 : "안동노인종합복지센터"는 기존 "안동경로대학"에서 쌓은 경험등을 바탕으로 하여 지역의 어르신들을 섬기고

   봉사하기 위해서 2011년 12월 20일 개관식을 가졌다. 이 사업을 통하여 안동교회는 독거노인 무료반찬 나눔사업을 실시중에 있으며

   2012년 5월 24일에는 "2012사랑비전대회"를 국제사랑재단과 손잡고 지역의 어르신들 중에서 장애를 갖고 있거나 저소득층에 있는 독거

   노인 50가정을 초청하여 총 1000여만원의 성금을 전달하였다. 또한 이 사업의 일환으로 2012년 가진 국가보훈자 초청행사도 역시 대상자

   중에서 독거노인들을 중심으로 행사를 진행한 바 있다. 앞으로 안동교회는 지역의 어르신들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노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7. 장애우 초청 행사 : 지역의 장애우들(장애우 기관들)을 초청하여 소정의 선물을 드리고 위로회를 갖고 있다.

8. 국가보훈자 초청 행사 : 지역의 국가 보훈자들이나 유공자들을 초청하여 소정의 선물과 함께 위로회를 갖고 있다.

9. 하늘씨앗 어린이 도서관 : 1996년에 처음 문을 열어서 지금은 엄청난 양의 어린이 도서를 소장하고 지역의 시민들에게도 무료로 책을

   대여해 주고 있다.

10. 로뎀나무 카페 : 아늑한 공간과 넓은 주차시설 그리고 바로 연결되어 있는 어린이 도서관까지 시민들에게 부담되지 않는 가격으로

   여러가지 음료와 부식들을 제공하고 있다.

11. 영곡아트홀 : 이미 널리 알려진 시설로, 시민들에게 좋은 문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발표회나 공연 및 콘서트등을 할 수 있는 제반

   시설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12. 이외에도 안동교회는 모든 분야에서 지역을 섬기고 봉사하기 위해 온 힘과 정성을 쏟고 있으며 2008년부터 3.1만세운동 거리재현

     기념행사등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지금까지 매년 참가자들을 위한 주먹밥을 제공하고 있다.

 

 

출처 : 안동교회, 그 아름다운 역사의 시작
글쓴이 : 안동교회 원글보기
메모 :

목회자들

 (1 ~ 9대 담임 목사님들을 중심으로)
  교회 창립이래 90년간 담임목사는 8대, 7명의 목사가 목회를 하여 왔는데 긴 교회 역사에 비해 적은 수의 담임
  목사가 시무한 것은 제 1대와 제 6대는 한 분이 두 번 담임을 하였고, 제 7대는 37년간을 시무하였고, 제 8대는
  24년간 시무했기 때문이다.


[1,6대 김영옥목사]
평양장로회신학교졸업
(1911년)


[2대 이대영목사]
1921년 평양신학교 졸업 


[3대 정재순목사]
1915년 평양신학교 졸업 


[4대 박상동목사]
일본주오신학교 졸업 


[5대 임학수목사]
1925년 평양신학교 졸업

 

 

 

 

 


[7대 김광현목사]
평양신학입학
일본고배중앙신학 졸업 


[8대 김기수목사]


[9대 김승학목사]


 [오월번 목사]


[권찬영 목사]
(J.V.Crother)

 

○초대 김영옥 목사는
    황해도 솔내(松川)교회 출신으로 언더우드 초대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1909년 오월번(A.Welbon)선교사를 따라 안동에 와서 1911년 평양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9월에 안동교회 초대 목사로 부임하여 선교사 오월번 목사와 동사했다. 1919년 경북노회장, 1921년 경안노회가 분립되면서 초대 경안노회장을 역임하면서 교회체제를 정비하고, 3.1만세운동에 앞장서다가 1921년 1월 31일 퇴임하니 9년 4개월 봉직했다.

○제 2대 이대영 목사는
전주 이(李)씨 가문에서 출생,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가정에서 쫓겨났으며, 1921년 평양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1921년 2월에 안동교회에 부임했다. 시무 1년 2개월만인 1922년 중국 산동성 선교사로 파송되어 오랫동안 선교하다 귀국하여 서울 승동교회 담임목사, 1956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 제 41회 총회장이 되었다.

○제 3대 정재순 목사는
경산출신으로 1915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서문교회 목사로 3.1만세를 주도하다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18년 경북노회장을 역임했으며 1922년 6월 본 교회에 부임하여 1925년 5월까지 2년 11개월 시무하면서 지역 전도운동과 경안중학원 설립으로 인재양성에 힘썼다. 1923년 제 3대 경안노회장, 1939년과 1945년에 경북노회장을 역임하였고 소천 후 독립유공자로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제 4대 박상동 목사는
의성 비안 출신으로 계성학교 재학시절 3.1만세 사건으로 6개월 옥고후 일본 주오신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7월 본교회 전도사로 부임, 1926년 9월 목사안수를 받았으며 권찬영 선교사와 동사했다. 1928년 8월까지 시무하는 동안 「안동기독소녀회」창립, 1926년 9월 현 예배당 신축 기성회 조직, 전도대 활동의 활성화에 전념하다가 일본 대판 전도목사로 조선 예수교 연합회에서 파송했고 조선독립운동자행이란 죄목으로 4년형의 선고를 받고 옥고중 해방으로 귀국, 대구 남산교회를 시무했다. 자녀교육에 성공하여 4남 5녀 모두가 신앙생활을 잘 하고 특히 장남 박 대선 박사는 연세대 총장을, 차남 박 대인 장로는 경신 중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제 5대 임학수 목사는
안동 녹전 출신 한학자로 기독교에 입교하여 1925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농촌교회를 목회하다가 1929년 1월에 본 교회에 부임하여 성서강해설교, 성경공부 특설시간 운영에 힘썼고, 본당 석조건물을 신축하게 된 것은 선교부의 지원이 컸지만 임 목사 자신의 사재를 거의 헌납함과 동시에 거 노회적 협조를 얻어내는데 큰 역할을 감당한 것으로 안동교회사에 길이 기록될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신사참배 문제로 많은 시련과 고생을 겪다가 일제말엽의 기독교 박해에 따른 제반 사정으로 1939년 3월 본 교회를 사임한 후 영양, 풍기, 예천 등지에서 목회하였고, 장남 임상경 장로는 본 교회 시무 장로로 오랫동안 봉직했다.

○제 6대 김영옥 목사는
초대 담임목사로, 임 학수 목사 사임 후 적당한 후임자가 없어서 후임자 청빙시까지 1940년 1월 ~ 42년 12월 임시목사로 청빙하게 된 것인데 노령에 신사참배 문제로 큰 시련을 겪었다. 서울 연동교회 김 형태 목사가 손자가 되며, 1948년 경안노회에서 공로목사로 추대 되었다.

○제 7대 김광현 목사는
의성 봉양 출신으로 계성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 전문학교를 거쳐 평양신학교 입학, 일본 고베 중앙신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하고 부산 초량교회 전도사, 목사로 시무하다 1943년 1월 17일 본교회에 부임했다. 일제의 거센 탄압이 극에 달한 때라 갖은 어려움을 당하고 일본 경찰에 의해 예비 검속되었다 해방 후 석방됐다. 안동군 치안 유지회 고문, 독립촉성 국민회초대 위원장으로 안동사회를 이끌었고, 1946년 남조선과도 입법의원(立法議員)으로 당선되어 중앙에서 활약했다. 경안노회장 4선, 경안학원 설립이사, 연세대 이사, 협동사업부 전국회장, 경안성서 신학원 이사장, 성소병원 재단법인 초대 이사장, 총회 선교 100주년기념 사업계획 위원장, 장로회 신학대학 이사장을 역임했고 총회 서기, 총무,부회장을 거쳐 1966년 9월 제 51회 총회에서 총회장에 당선되었고, 구미시찰 및 세계일주여행을 2차에 걸쳐했으며 성지순례와 세계교회 시찰, 루터 종교개혁 450주년 기념식 참석, 미국 루이스 엔드 클락대학에서 미주 선교부 추천으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6년 「기독교는 무엇을 믿는가?」란 사도신경 해설 소책자 발간, 1978년 「김광현 설교집」을 발간했으며, 1979년 말에 조기 은퇴함에 교회에서는 원로목사로, 노회에서는 공로목사로 추대하였다. 1993년 8월 15일 「이풍랑 인연하여서」란 회고록을 발간하여 한국교회에 귀중한 역사자료를 남겼다. 자녀교육에 성공하여 장남 김서년 목사는 서울 벧엘교회 담임목사, 3남 김무년 목사는 서울 명성교회 부목사로 있다.

 

○ 제 8대 김기수 목사는

 영주 장수출신으로 1957년 장로회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1958년에 받았으며, 1957년부터 1979년 말까지 23년간 경안성서 신학원 교수 및 원장을 역임하면서 경희대학교에서 수학(修學)하였고, 1967년에 도일(渡日)하여 동경신학대학원 2년간 연구과정 수료, 1974년에 도미하여 메코믹신학대학원에서 1년간 수학, 1977년 미국 노드케로라이나 기독교대학에서 명예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0년 제 88회 경안노회장, 1976년 제 100회 경안노회장을 역임하였으며, 1968년 4월부터 1973년 12월까지 안동교회 청소년 지도를 위한 협동목사로 시무했다.

  1980년 1월 1일 46세의 장년으로, 은퇴하는 김광현 목사의 추천으로, 당회가 담임목사로 청빙함으로 부임했다. 경안성서 신학원 이사장, 총회세계 선교부장, 장로회 신학 대학교 재단 이사장, 총회 순교자 기념선교회 회장, 경안노회 유지 재단 이사장 등 노회와 총회를 위하여 많은 일을 감당하여 오다가 1993년 9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부회장, 1994년 9월 제 79대 총회장에 당선되어 총회 회기 단축, 여성안수의 가결, 장로교 통합교단과 합동교단의 연합, 기독교 텔레비젼의 개국, 남북한 교회의 만남과 협력의 약속, 캐나다 인디안 선교 등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기독공보 이사장, 기독교 텔레비젼 공동 대표이사 등 중책을 잘 감당했으며, 총회를 대표하여 WCC 본부, 개혁교회 연맹본부 방문, 유럽주재 선교사 수련대회, 캐나다 총회, 남미.미주 한인교회 총회, 미주 207차 미국장로교 총회, 광복 50주년 미주대회, 인도네시아 기독교 총회를 참석했다.

  총회장 이후에도 한국교회 지도자 협의회 공동회장, 총회유지재단 이사장, 북미인디언 선교회장, 연세대학교 재단 이사, 시각장애 복지법인 이사장, 서울여자대학교 이사, 학교법인 경안학원 이사, 전국 평신도 대학원장, 경건신학 연구소 이사장, 경안성서 신학원 이사, 경안노회 유지재단 이사장,북한결핵어린이돕기 범국민운동본부총재,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대표회장을 역임하셨다.
  1998년 8월 제 79대 총회장 기념논설집 「새롭게 하는 교회」김기수 목사편이 출판되어 총회장 재임기간 활동상황이 잘 나타나 있으며, 1996년 5월 27일 서울여자대학교에서 한국교회 여성의 지위를 신장시킨 공로로 명예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제자들이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기금을 모아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에 영곡목회 연구소를 건립했고, 1999년 9월 교회창립 90주년기념 설교집 「벧엘의 꿈」을 출판했다. 장남 김신 목사는 미국 LA에서 라성빌라델비아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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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에 개관한 안동교회 역사 전시실 입구 모습 : 2012년 7월 현재 103주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안동교회는 안동지역의 어머니와

같은 교회로서 역할을 감당해 왔다.

 

역대 당회록들과 담임목사님들의 유품들 및 기타 역사관련 자료들

 

역대 담임목사님들에 대한 간략한 연혁이 적혀 있다. 1909년 8월 두째 주일 첫 예배를 시작한 지 2년만인 19011년에 첫 담임목사님이신

김영옥 목사님이 부임하셨다.

 

100여년의 역사 가운데 안동교회는 지역에 교회들을 분립시켜 지역의 신앙성장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을 뿐 아니라 타교파의 교회를 돕는데도

앞장섬으로 지역과 교파를 초월한 성숙한 교회로서의 모습을 이루어 왔다.

 

정 중앙에 웃고 있는 분이 현 9대 담임이신 김승학 목사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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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회 하늘씨앗 어린이 도서관 전경입니다.

 

넓고 아늑한 공간에 대부분이 신착도서로 구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안동에서는 가장 많은 양의 어린이전용 도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교인이 아니라도 시민이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가 있고 대출도 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어학관련 자료도 상당량 보유하고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밑에 올려 놓은 로뎀나무카페랑 연결이 되어 있어서 어린이들이 책을 보는 동안 어머니들은 로뎀나무카페에서 차를 마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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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성장

 경북 안동의 중앙에 위치한 안동교회는 경안노회 모교회로 자리 매김을 하면서 안동선교부의 특별한 협력으로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였다.

(시내 분립해 준 교회를 중심으로)  

 안동동부교회

안동서부교회

도원교회

안동용상교회

수상교회

묵계교회

길안교회

신전교회

신전교회

송사교회

용계교회

이하교회

신덕교회

임하교회

금곡교회

명계교회

주하교회

금소교회

 

 

 

 

오산교회

현내교회

 

 

 

 

 

○안동읍내 변두리 지역 교회 개척
  
안동읍 변두리 여러 지역에 전도대를 파견하여 전도 활동을 전개하여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① 송현교회
  
자연 부락명이 호암인 송현동에 1924년 12월 전도 강연회 개최, 전도인 김익현 장로 파송, 1937년 초가 삼간의 기도실을 세웠고, 그 후 권선규 조사가 예배를 인도함으로 송현교회를 개척했다.

 ② 수상교회 (수하리 교회)
  1924년 말 전도대 파견, 수하리 기도실을 설립하였으며 1934년 예배당 부지 매입,1937년 수하리 교회로, 해방 후 교회를 이전 수상 교회가 됨.

 ③ 이하교회
  1924년 와룡면 이하동에 전도대 파견, 1929년 기도실을 짓고, 1934년 예배당을 신축함으로 이하교회로 발전함


○분가식 교회분리를 통한 교회 개척
  
안동읍을 몇 개의 지역으로 나누어 분가식으로 교회를 분리하고 본 교회 교인들을 거주지에 따라 분가 시켰다.

 ① 안동서부교회
  안동읍 서부지역인 안기동에 오랜기간 전도인을 파송 집중적 전도로 1924년 초가 6간(대지 160평)을  매입하여 기도실을 세우고,   1926년에는 교인들을 거주지 중심으로 안기천 서편 교인을 안기교회로  이명시켰고, 1932년 30평 예배당을 신축했다. 일제말엽에 안동교회로 통합되었다가 해방 후 안동서부 교회로 재 분립을 했다.
 
 ② 안동동부교회
  1932년 2월 첫째주, 본 교회 교인 중 예안.대구통로 동편 거주 남 20명, 여 40명, 아동부 50명, 도합 110명을 분가식으로 선별하여, 신세동에 대지 100평, 건평 40평의 목조예배당을 건축하고 신세교회라 명명했다. 일제 말엽에 안동교회로 통합되었다가 해방 후 안동동부교회로 재 분립했다.

 ③ 도원교회
  
1950년 태화동에 함석집 6간을 매입하여 기도실을 세우고, 석호인 강도사, 이주한 장로(전도사)로 시무하게 했다. 1953년 태화 교회로 분립되고, 1965년에 도원교회로 명의 변경되었다.

 ④ 용상교회
  
일제시대에 성소병원이 지원하여 용상기도실이 설립되고, 일제 말엽 안동교회에 합병되었다가 해방 후 용상교회로 분립했다.

 ⑤ 안동감리교회 설립 후원
  1951년 남.여 전도회가 1.4후퇴로 피난 온 서영준 감리교회 목사를 청빙하여 전도 활동을 담당하게 하고 피난 온 감리교인들과 본 교회 조상국 집사를 보내어 교회를 설립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안동 제일 감리 교회의 시작이다.

 ⑥ 안동성결교회 설립 후원
  1953년 성결교회 십자군 전도대의 장막전도 활동을 적극 지원하여 많은 교인들이 집회에 참석토록 함으로 1954년 성결교회가 설립되니 이것이 오늘의 기독교 대한성결교회 안동교회이다.

 

○농촌 교회 개척
 
① 길안지방
  1950년대에 길안지역에 청년회 전도대의 활동으로 1953년 예배당 4간과 대지 400평을 매입, 1954년에 김수만 장로를 길안지방 개척 전도사로 파송하여 길안교회가 창립되었다. 이어 금곡교회,용계교회, 송사교회를 개척 했고, 1968년 묵계교회 를 개척하였으나 예배당이 없었는데 1975년에 한국선교 90주년 기념 개척교회와 동시에 고 김수만 장로 기념교회로 예배당을 신축하고 예배당 머릿돌에「1975년, 절면서열 교회를 세운 고 김수만장로를 기념하여 이 예배당을 짓는다」라고 글을 새겼다.

 ② 임하지방
  1955년 김 금이 전도사를 파송, 1956년 임하면 금소동에 금소교회를 설립하고, 이어 신덕교회, 임하교회를 개척했다.

 ③ 와룡지방
  1957년 전도대의 활약으로 주하동에 주하교회를 설립하고, 이어 명잣(명계)교회를 개척했다.

 ④ 북후지방
  1968년 이 주한 장로의 전도로 남전도회가 도와 섶밭(신전)교회가 설립되고, 1969년 서 복수 집사의 전도로 시작하여 1975 년 여전도회가 예배당을 신축함으로 오산교회를 설립했다.

⑤ 남선지방
  한국 개신교 선교 100주년 기념 사업으로 1982년에 현내동에 구 동사(洞舍)를 매입하여 현내교회를 설립하고 김 상철 전도사를 파송 하였으며, 1986년에 대지 70평, 건평 45평 예배당을 신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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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성소병원(安東聖蘇病院)

 

 

   1909년 10월 1일은 플레처(Archibald Gray Fletcher, 한국명: 鷲義湫) 박사에 의해 안동성소병원(安東聖蘇病院)이 시작한 날이다. 1908년 안동에 새로운 선교부가 개설되고, 전국적으로 선교구역의 분할로 원주가 감리교 구역으로 편입되었다. 그 때 원주에서 의료사역을 하던 플레처 선교사는 1909년 2월 안동선교부로 전임(轉任)되어 안동에 병원이 개원될 수 있었다. 플레처 박사는 안동 최초의 근대 병원인 성소병원의 초대 병원장이다. 안동으로 전임한 플레처 선교사는 선임선교사로 안동선교기지(基地)와 현재 안동교회 선교관 자리에 위치한 가옥을 매입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 구입한 가옥은 선교사 임시사택으로 사용되었으며, 바로 여기서 플페처 선교사가 진료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1914년 금곡동 177번지에 코넬리우스 베이커(Cornelius Baker) 기념병원을 신축하면서 현 위치로 이전하였고, 이때부터 안동성소병원은 정식 병원이 되었다. 1941년 제 2차 세계대전으로 폐원(閉院)하였다가 해방된 후 4년이 지나 1949년 진료를 재개하였지만 6·25 한국전쟁으로 병원이 전파(全破) 당했다. 그러나 휴전된 후 1953년, 경안성서신학원 입구에 애린진료소란 이름으로 재개원하였다. 1956년 AFAK자재와 선교회 지원으로 현 병원위치에 2층으로 신축하여 이전하였고, 아직까지 이 건물은 리모델링하여 사용되고 있다. 이후 안동성소병원은 서울명성교회 후원으로 제1, 제2 신관 신축, 최신식 기자재 도입과 의료진의 확충을 통해 종합병원으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하고 있다.

 

   성소병원에 입원한 성도들을 심방하거나 병원을 수 없이 지나쳤다. 어떻게 병원 이름이 성소(聖蘇)로 정해졌을까? 늘 궁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혹자는 예수교를 옛날에는 야소교(耶蘇敎)라고 불렀고, 여기에 성(聖)을 붙이고 야소교의 소(蘇)를 조합하여 성소병원이라고 칭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추측은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설(假說)이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추론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심오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치질 않았다. 병원을 지나치기도 하고 또 환자 심방을 위해 자주 들리기도 하였지만 성소라는 이름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조금 생각하다가 중단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성소(聖蘇)라는 이름에 관해 깊이 묵상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깊은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성소(聖蘇)라는 단어는 거룩할 성(聖)과 되살아날 소(蘇), 소생할 소(蘇)로 구성되어 있다. 즉 성소(聖蘇)는 ‘거룩한 소생’(蘇生)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성소(聖蘇)는 ‘거룩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다’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표현하면 중생(重生), 거듭남(born again)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의미한다. 성소병원에 들어오는 사람은 육신적인 질병에서 치유되어 제2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구원을 얻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마음으로 플레처 선교사는 병원의 이름을 성소(聖蘇)라고 작명한 것이 아닐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플레처 박사가 이러한 의미로 병원의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100여 년 전 당시 한국에 선교사로 온 대부분은 실력자들이었다. 파송한 나라에서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에서 다시 공부를 마치고 안수를 받은 분들이었다. 100년 전 미국에서도 대학교를 졸업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날도 그렇지만 100년 전 미국에서도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이 의사가 될 수 있었다. 이런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국으로 온 것이다. 비록 플레처 선교사는 한글이나 한자에 익숙하지는 않았겠지만 의료선교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병원의 이름 속에 당연히 포함시켰을 것으로 생각한다. 의료를 통한 선교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바램이 당연히 병원 이름에 포함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 안동에서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도 이러한 깊은 영적 의미를 갖는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충분한 실력을 갖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성소(聖蘇)의 의미를 묵상하면서 플레처 선교사는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육신적인 구원 뿐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받기를 기도하고 소망하면서 성소병원(聖蘇病院)이라고 지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성소(聖蘇)라는 단어를 묵상하면서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또 다른 의미의 성소라는 단어가 성소(聖蘇)와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첫 번째는 보통 가톨릭교회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거룩한 부르심의 의미를 갖는 성소(聖召)이다. 성소(聖召)는 거룩할 성(聖), 부를 소(召)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자 고유한 일(사명이라고 한다)을 맡기시려고 부르시는 것이 바로 성소(聖召)이다. 기독교에서는 성소를 소명(召命)이라고 한다. 또 다른 성소(聖所)는 거룩할 성(聖), 바 소(所)로 위치 혹은 자리를 의미한다. 즉 성소는 거룩한 장소를 뜻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임재(臨在)를 상징하는 성막(聖幕)을 주셨다. 성막은 하나님이 거처하시는 천막(텐트, tent)이다. 성막은 길이가 약 45m에 폭이 약 22.5m인 약 310평 정도의 장방형의 마당 안에 지어졌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매우 성스럽고 거룩한 곳이다. 특히 성막에는 정방형인 지성소(至聖所)와 장방형인 성소(聖所)가 있었다. 지성소는 약 6평, 성소는 약 12평 규모의 작은 장막이었지만 모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스러운 곳이요, 거룩하게 구별된 장소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성소가 모두 성소병원의 성소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攝理)에 난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거룩한 부르심을 의미하는 성소(聖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의료선교사인 플레처 박사를 강권적으로 원주에서 안동으로 부르셨던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안동이라는 곳에 성소병원이라는 거룩한 장소인 성소(聖所)를 세우시고 육신과 영혼을 함께 구원하는 성소(聖蘇)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셨던 것이다. 사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플레처 박사는 처음부터 안동을 선교지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던 같다. 그는 원주에서 의료 선교사로 재직하다가 선교지 분할로 원주를 떠나 안동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안동에서 성소병원을 시작했다. 2년이 지난 후 플레처 선교사는 안동을 떠나 대구·경북 지역 최초의 서구식 진료소였던 제중원(濟衆院)으로 사역지를 옮겼다. 제중원은 오늘의 동산의료원 모체(母體)로 1899년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의사인 존슨(Woodbridge O. Johnson, 한국명 張仁車) 선교사가 설립한 병원이었다. 제중원은 대구 동성로 근처 약전골목의 구 대고제일교회 자리에 있었으며, 1903년 현재의 동산 언덕으로 옮겨 벽돌집을 짓고, 제2대 원장 플레처 박사에 의해 동산의료원으로 개명하게 되었다. 당시 동산병원 위치는 가난한 사람들이 장례를 치루지 못해 몰래 시신을 묻었던 버려진 땅으로, 당시 관리들에게도 골치 아픈 땅이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쉽게 그 땅을 구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동산의료원에서 플레처 박사는 1911년부터 1941년 까지 무려 31년 동안 병원장으로 사역을 감당했다. 따라서 플레처 선교사가 안동에 체류했던 2년의 기간은 안동에 있어서는 은혜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선교부에서 의료 선교사를 파송하기 힘든 상황 속에서 의료 선교사인 플레처 선교사가 선교지 분할 정책에 따라 원주에서 안동으로 오게 되었고, 그 결과 안동에 병원이 세워지게 되었으며, 일단 세워진 병원은 선교부의 관심사가 되어 선교사를 계속 파송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섭리 속에 탄생한 안동성소병원은 올해로 103주년을 맞는다. 지나온 세월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기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성소(聖召), 성소(聖所), 그리고 성소(聖蘇).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인 성소(聖召)에 순종한 플레처 선교사는 한국으로, 원주로, 안동, 그리고 대구로 사역지를 옮기며 의료선교를 감당하였다. 특히 그가 머물러 치료했던 땅들은 질병으로 고통 받고 치료에서 소외당하고 있던 사람들을 위한 거룩한 방소인 성소(聖所)가 되었다. 안동도 예외는 아니었다. 선교사들의 임시사택이었던 화성동 151번지. 그리고 현재 성소병원 주소인 금곡동 177번지는 안동 뿐 아니라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거룩한 땅, 성소(聖所)가 되었다. 또한 안동성소병원은 지난 103년 동안 뭇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여 육신을 구원할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함으로 영혼도 소생(蘇生)시키는 성소(聖蘇)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안동성소병원에 주어진 이 거룩한 사명이 예수님 오실 때 까지 중단 없이 계속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2012년 7월 18일

                                                                                                                                                    김승학 목사

 

 

 

출처 : 안동교회, 그 아름다운 역사의 시작
글쓴이 : 안동교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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