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더 머물다 가고 싶다 / 황지우
펑! 튀밥 튀기듯 벚나무들,
공중 가득 흰 꽃팝 튀겨놓은 날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갈 일이다
눈감으면, 꽃잎 대신
잉잉대는 벌들이 달린,
금방 날아갈 것 같은 소리--나무 한 그루
이 지상에 유감없이 출현한다
눈뜨면, 만발한 벚꽃 아래로
유모차를 몰고 들어오는 젊은 일가족;
흰 블라우스에 그 꽃그늘 받으며 지나갈 때
팝콘 같은, 이 세상 한때의 웃음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內藏寺 가는 벚꽃길;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딴 세상 보이는 날은
우리, 여기서 쬐끔만 더 머물다 가자
- 시집『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지성사.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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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 꽃이 흰쌀밥으로 뵈는데 비해 만개한 벚꽃이 팝콘 같다는 비유는 전혀 설지 않다. 환하게 만발한 벚꽃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봄바람 훈훈히 부는 날 울울한 벚꽃 길을 걷노라면 눈이 내리는 듯, 하늘에서 꽃비라도 뿌리는 듯 감각도 착오를 일으킨다. 그러다 궂은비라도 한바탕 휘몰아치면 그 연약한 것이 한꺼번에 폭설로 날려 젖은 꽃잎 되고 말 것을. 범람하는 영혼의 향기도 주저앉고 말 것을.
한때 벚꽃은 일본 꽃이라 해서 불쏘시개로 전락하는 홀대를 받기도 하였으나 한라산 주위에 일본 벚나무보다 오래된 왕벚나무가 서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전국 각지의 공원과 가로에 벚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지금은 편견 없이 온전히 즐기고 있다. 지금쯤 정읍의 내장사 길, 부안 내소사 벚꽃 터널, 해운대 달맞이길, 경주보문단지 등에는 벚꽃과 사람이 뒤범벅이고, 제천 청풍호반과 진안 마이산도 곧 북새통을 이룰 것이다.
그런데 벚꽃의 서생이 이 땅에서 짧지 않은 역사를 가졌음에도 예나 지금이나 시에서 벚꽃을 접하기란 상대적으로 다른 꽃들에 비해 쉽지 않다. 아마 한꺼번에 화들짝 피었다가 며칠 못가서 한꺼번에 떨어지는 벚꽃의 조루성이 왠지 군자답지 못하고 경망스러워 못마땅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렇거나 말거나 황지우 시인은 ‘잠시 세상 그만두고 그 아래로 휴가갈 일’이라고 벚꽃세상을 꾸밈없이 소망한다. 벚꽃 아래로 ‘유모차를 몰고’ 솜사탕을 손에 들고 ‘팝콘 같은’ 웃음을 터트려보자고 한다.
여든여섯 내 어머니는 방창한 저 벚꽃을 보며 ‘남은 인생 저 풍경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지’ 속으로 어림셈을 하시는 것 같다. ‘어쩌다 한순간 나타나는’ 이 같은 ‘딴 세상’에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고 한다. 꽃 멀미 핑계 삼아 쬐끔만 더 퍼질러 앉았다가 미사포 쓴 맑은 성녀들이 켜든 촛불까지 다 보고 가자고 한다.
권순진
Elgar - Salut D'amour (사랑의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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