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 3월 대구중앙국민학교 입학식 (3월4일자 매일신문 사회면에
실렸던 사진인데 저 무리 속에 소생이 있습니다)
시골 국민학교를 추억함/ 유하
내 가슴엔 아직도 사루비아의 달콤함이 살고
여선생님 하얀 치아의 눈부심과 새 수련장
빠알간 색연필로 쓴 참 잘했어요가 산다
히말라야시다 오동나무 가지 사이로
놀러 온 햇볕도 다람쥐도 찌르레기도
어린 풍금 소리에 맞춰
가슴에 달린 손수건처럼 마음을 펄럭이던,
그래 생명의 모든 국민학교가 거기 있었지
아직도 내 입 안에 사는
철수와 영희, 아련하게 바둑이를 부르며
둥글게 둥글게
그 착한 영혼의 이름들로 충만한 운동장
아, 다시 가고 싶어라
환한 금빛,
모래알의 은하수
- 시집『세상의 모든 저녁』(민음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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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시인은 ‘내 삶의 최초의 이미지’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30여 년 동안 초 중 고와 대학교를 다녔고 그 다음 30여 년 동안은 같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나의 이력서는 불과 대여섯 곳의 각급 학교 이름들이 전부다. 그 속에 단조로운 나의 일생이 훤하게 비쳐 보인다. 그 출발점에 내 삶의 향기와 빛을 압축한 듯한 최초의 이미지, 고향의 시골 국민학교가 있다. 나는 마치 그 최초의 이미지를 되찾기 위하여 멀리 세상을 우회해 온 것만 같다’ 그러면서 그 이미지를 '세상을 통틀어 거기에만 있는 신성한 평화'이고 '막무가내의 정결'이라고 했다.
그렇다. 생각해 보면 내 시간의 꽃도 그쯤에서 막 피기 시작했을 것이다. ‘앞으로 나란히!’ 구령에 두 팔을 가지런히 벌렸던 그 시간들, 그 어떤 환멸도 존재하지 않는 사루비아 꽃같은 달달한 순간들. 바람결을 타고 온 은은한 풍금소리 들으며 마룻바닥을 문질렀던, 막무가내로 외워댔던 구구단, 숙제한 공책에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다섯 개나 그려주셨던 예쁜 여선생님, 교실 마루 옹이구멍에 빠트렸던 몽당연필, 운동회 날 머리통에 질끈 묶었던 파란 띠, 오자미를 집중적으로 던져 종이 박을 터트렸을 때 쏟아졌던 색종이의 반짝거림, 그 환했던 순간.
백군이 이기면 세상이 망할 것처럼 청군 이겨라 목이 쉬도록 소리쳤고, 뜻도 모를 '브이아이시티오알와이'를 외쳐댔던. 코 훌쩍이며 딱지와 구슬에 목숨 걸었던 비좁은 골목, 내가 한번 올라가면 반드시 나도 한번 내려와야 마땅하다는 걸 가르쳐준 시이소, 둥글게 둥글게 착하디 착한 그 영혼들. ‘그래, 생명의 모든 국민학교가 거기 있었지’ 추억의 각론이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목차는 큰 차이가 없을 누구나의 그 시절, 시골국민학교는 아니었지만 나도 ‘다시 가고 싶어라’ ‘환한 금빛, 모래알의 은하수’같은, 띠룩띠룩 군살 붙이지 않았던 내 최초의 이미지 곁으로.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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