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신평
이제 막 날갯짓 하려는 아들에게
넥타이 매는법을 가르쳐 준다
그 옛날 아버지가 텁텁한 냄새의 입김으로
나에게 가르쳐 주었던 똑 같은 방법
아버지와 달리 몇 번이나 실패를 거듭한다
구부려 올려다보는 아들의 어깨 너머
그가 겪어나갈 신산(辛酸)의 세월이 겹겹이 둘러섰다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 훨씬 더
세상은 차갑고 무섭단다
내 힘 한 점 소용없을 때까지
네 기력을 돋울 군불이 되고 싶건만
이미 달빛이 된 아버지
나도 곧 달빛으로 오른다
아들은 그 아들에게 넥타이 매는 법 가르치며
그 옛날 자신의 숨결과 닿았던 내 숨결을 기억하리
생의 반복은
엄숙하고 슬픈 되새김이다
- 격월간『대구문학』2012년 11·12월호(대구문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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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인으로서 갖춰야 할 갖가지 교양을 일러주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한 조언도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능력만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며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 하라고 인생의 선배로서 조곤조곤 말해주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겸손과 배려를 잊지 말라고 귀띔해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아들도 이미 머리 속으로는 다 알고 있는 내용일지 모른다. 다만 귓불에 스쳤던 아버지의 말씀들은 먼 훗날 은은한 달빛으로 언제까지나 가슴 속에 머물게 되리라. 넥타이를 매주던 그 손길의 온기와 함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아들에게 아버지는 모방과 동경, 동시에 질투와 경외의 대상이라고 했다. 아버지를 통해 비로소 타인과의 관계, 사회적 규범과 이성적 사고를 배운다. 아버지의 꾸짖음을 통해 제멋대로 행동하면 안 된다는 것도 깨닫는다. 청소년기까지 끊임없이 아버지에 반항하며 그 반항을 다스리는 아버지의 권위를 통해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을 습득한다. 따라서 아버지는 한 사람의 성격 전반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학습장이다.
오늘날 가정의 많은 문제와 나아가 ‘세대 갈등’은 바로 아버지와 아이가 친구 사이가 되어버린 데서 생겨났다고들 말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절대 친구관계가 아니다. 17세기 사상가 존 로크도 ‘부모는 자식에 대해 절대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응석을 받아주고 꾸짖지도 않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아버지를 어려워할 리가 없다. 아이들은 권위가 없는 사람의 말은 제대로 듣지 않고 믿지도 않는다. 자식에게 위엄도 사랑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던 나 자신 역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다만.
신평 시인은 서울대 법대를 나온 법관 출신으로 지금은 경북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 중인 분이다. 그만한 능력과 권위를 갖추었기에 아들에게 신뢰와 애정 어린 숨결을 불어넣어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사랑하기만할 뿐 가르치지 않는 아버지가 많은 요즘 현실에서, 이처럼 ‘엄숙하고 슬픈 되새김’의 틀을 반복 유전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한항공 사태를 보면서 다들 느꼈겠지만, 모든 사회구성원의 인성교육은 자식의 귓볼에 닿는 아버지의 숨결에서부터 비롯됨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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