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노래/ 정태춘

 

 

아주 오래된 나무 그늘 아래

지친 걸음 쉬어가는 나그네처럼

나도 내 생 어느 길목에서 그런 널찍한

나무 그늘을 만날 수만 있다면

아주 멀고 먼 옛날이야기에 흠뻑 취해버린 아이처럼

나도 때때로 소낙비에 젖듯

너무나 조용해서 행복한

너의 노래 속으로

젖어 들어갈 수만 있다면

 

높은 절벽과 그 너머 바다와

그 위로 해와 달과 어우러지는 노을과

그 모든 걸 품고 떨리는

너의 노래 속으로

 

아주 기나긴 상념을 털어내고 벽을 향해 돌아눕는

한 시인처럼

나도 가끔씩은 그렇게 깊고 허망한 잠을 청할 수만 있다면

 

짙은 안개와 그 너머 바람과

억새 흩날리는 길들을 따라

흘러 흘러만 가는 노래로

 

멀리 높은 강둑길로

삽 들고 제 논 나가는 농부처럼

나도 그렇게 무심하게

저들의 거리로 나설 수만 있다면

너의 조용한

조용한 노래를 부르며.

 

- 시집『老獨一處』(실천문학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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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시를 써야겠다. 황지우처럼 시를 써야겠다.”고 중얼거리고선 정말로 시를 쓰고 시집을 낸 가수 정태춘의 시다. 아시다시피 정태춘은 아내 박은옥과 함께 지난 8,90년대 내내 한 번도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가난하고 억눌리고 짓밟히고 빼앗긴 사람들의 편에서 노래해온 가객이다. 그의 노래는 생생한 리얼리티의 현장성과 서정성이 함께 녹아있다. 음악성과 서사가 하나 된 감동으로 그의 노래는 노래 이상이었다. 그의 노래는 시였고 깃발이었고 진혼의 나팔소리였다. 그의 노래에는 늘 힘과 아름다움과 위안과 온기가 버물어져 있다.

 

 여기서 ‘너의 노래’는 특정한 이의 노래를 지칭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자신의 노래일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걸 품고 떨리는 너의 노래 속’은 얼마만큼 매운 연기 속일까.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깊은 늪일까. 우리는 그렇게 노래하는 가수들을 음유시인이라고 부른다. 음유시인하면 당장 정태춘 말고 김민기 정도의 이름을 추가로 떠올릴 뿐이다. 이들의 공통점인 중저음으로 울리는 깊은 서정과 한 편의 시처럼 조탁된 노랫말은 싸구려 감상의 가락과 가사와는 그 격이 다른 진정성이 느껴진다.

 

 하지만 생각을 좀 너그럽게 수정해야겠다. 요즘 새로 부활한 프로 '나는 가수다'는 번번이 놓쳐 제대로 보지 못하지만 한때 '본방 사수'해가며 즐겨 본 프로였다. 그런데 감동과 감흥이 전에 비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언젠가 조용필은 가끔 노래 부르면서 가사를 음미하다 보면 눈물이 날 때가 있다고 했다. 그럴 땐 무지 참으며 일부러 가사에 집중 안 하고 허공을 딱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노래한다고 토로했다. 관객의 얼굴을 타고 내리는 눈물과 그들 혼신의 열창을 보고 듣노라면, 비록 음유시인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노래는 고스란히 한 편의 시가 된다. 짙은 서정의 사회적 발언이 시보다 우위에 있음을 느낄 때도 간혹 있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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