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김선우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 시집『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문학과지성사,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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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일단 온몸으로 반응을 한 다음에야 시가 나오는 것 같아요. 죽을 것처럼 행복해, 이렇게 경험한 다음에 그 느낌이 몸의 어딘가에 씨앗을 내려서, 천천히 발아되는 것 같아요. 정말 분노해서, 철철 울고 난 다음에야 어떤 것이 몸의 밭에 씨앗이 떨어져서 그것이 시로 발아되는 것 같아요. 온몸으로 행복했거나, 슬퍼했거나 울었거나 정말 좋았거나. 이런 시간성이 몸의 경험으로 지나간 다음이어야 그것이 시의 씨앗이 되는, 그런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김선우 시인의 시가 몸의 감각으로 빚어낸 것임을 스스로 진술한 대목이다.

 

 꽃은 기본적으로 여성성을 내포하고 있어서 꽃이 피는 것과 연동하여 몸이 떨리고 아득하며 뜨거워지는 것은 기실 자연스런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언제나 몸이 먼저 반응하고, 가슴이 먼저 쿵쿵거려요.” 내가 꽃이 되는 느낌, 그 상상이 자연스럽게 몸으로 습득되어 시를 낳게 했다. 꽃의 몸과 자기 몸이 포개어져 성애와의 화해로까지 의미가 확장된다. 남들도 다 좋아하는 꽃이라서 쉽사리 '곱다 고와' 하고선 서둘러 카메라 셔터나 누르는 보통의 여인들과는 달리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빨려든다.

 

 자기정화의 과정을 거쳐 촉촉이 젖는 긍정의 몸이 열린 것이다. 내 몸이 가장 예쁠 때를 아는 여성시인의 발랄하고 아름다운 고백이다. 한 평론가는 김선우 시인을 두고 ‘살아 있는 몸을 신전으로 하여 뭉클한 생명의 향연을 펼치는 샤먼’이라며 ‘시의 무당’같은 분위기가 감도는 시인이라 했다. 무명의 어떤 여성 시인은 대뜸 김선우 시인이 싫다고 한다. 예쁜데다가 시까지 잘 쓰는 그녀가 밉다고 했다. 시샘을 받을 정도로 예쁜지, 시를 잘 쓰는지는 잘 모르지만 김선우 시인의 촉수 아니면 빚을 수 없는 사랑의 생명시란 생각에는 동의한다.

 

 시적 자아는 우주의 사물 속으로 확산되고 우주의 만물은 거꾸로 시적 자아 속으로 수렴된다. 70년생 여성시인이 포옹한 꽃은 어느 계절에나 피고 지고 이 봄은 거의 절정이다. ‘꽃은 미인들과 함께 즐겨야 하고, 달빛 아래 술은 유쾌한 친구들과 즐거이 마셔야 하며, 눈(雪)은 고풍의 선비들과 즐기는 게 좋다’란 말이 있다. 이 시를 읽으며 꽃은 미인과 즐겨야 한다는 대목이 찌릿하게 와 닿는다. 꽃을 감상하는 태도에서 저토록 여성성과 모성이 오롯이 발휘되는 데야 시선을 함께하는 남정네로서는 비슷하게 주파수나 맞추어 볼 밖에는. 

 

 

권순진



Secrets - Giovanni Marr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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