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가 울면 나무는 절판된다/ 박지웅

 

 

붙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우는 것이다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들키려고 우는 것이다

 

배짱 한번 두둑하다

아예 울음으로 동네 하나 통째 걸어 잠근다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에 없다

도무지 없다

 

붙어서 읽는 것이 아니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읽는 것이다

칠 년 만에 받은 목숨

매미는 그 목을 걸고 읽는 것이다

 

누가 이보다 더 뜨겁게 읽을 수 있으랴

매미가 울면 그 나무는 절판된다

말리지 마라

불씨 하나 나무에 떨어졌다

 

- 시집『구름과 집 사이를 걸었다』(문학동네, 2012)

...............................................................

   

 매미의 울음이 밤낮없이 맹렬하다. 쨍쨍 햇빛이 내려쪼이고 더위가 절정에 달할수록 매미의 울음은 우렁차다. 매미의 발음 근육이 실룩거리며 만들어낸 소리를 공명실에서 증폭시킴으로써 쩌렁쩌렁 소리가 나오는데 비가 오거나 기온이 내려가면 활동이 시들해질 수밖에 없다. 매미울음의 위축은 그들 애정 전선에도 이상을 초래한다. 수컷의 울음은 암컷을 유혹하는 수단이며, 그들에겐 일생일대의 가장 화려하고 장렬한 과정이다. '다행히' 연일 36도를 오르내리며 밤중에도 식지않는 이 '대프리카'의 폭염 속에서 그들은 더욱 열정적이고 강렬하다.  

 

 매미로서는 살판이 났다. ‘단단히 나무의 멱살을 잡고’ ‘숨어서 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들키려고’ 마구 울어재끼고 있다. 평균 7년간 굼벵이 유충으로 은둔생활을 하다 지상에 올라와 우화한 뒤 매미로서 길어봐야 4주밖에 살지 못하지만 이때 대를 잇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암컷을 부르는 수컷의 울음이 처절할 수밖에 없다. 밤이고 낮이고 분별도 없다. 그러니 ‘저 생명을 능가할 것은 이 여름에 없다’ ‘도무지 없다’

 

 그래봤자 교미가 끝나면 암컷은 나무에 알을 깐 뒤 죽고, 곧이어 수컷도 따라죽는다. 그러므로 매미에게 그 울음은 지고지순한 사랑의 시그널이다. 어차피 이 매미울음과 더불어 8월의 여름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땐 귓속 이명인지 매미소리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그 울음의 속사정을 이해한다면, 온 힘을 다해 짝을 찾는 매미의 열정을 오히려 응원하거나 혹은 연민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최소한 그러려니 해야지 오만상 찡그리며 신경쇄약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겠다.

 

 시인은 매미가 운다고 했다가 나중엔 매미가 읽는다고 했다. ‘나무의 멱살을 잡고’ ‘목을 걸고 읽는’다고 했다. 그렇다. ‘누가 이보다 더 뜨겁게 읽을 수 있으랴’ 누가 이토록 겁나게 치열하게 바락바락 생을 읽겠는가. 그렇게 울어쌓는데 나무가 절판되지 않고 어이 배기랴. 그 불씨 일단 나무에 붙었다 하면 기어이 다 읽고 다 태우고 만다. 이 8월에 이만한 흥행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절판은 되어도 결코 절단이 나진 않을 것이다.

 

 

권순진

 

 

Crying For Carmen - Oscar Lopez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메모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