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이성복



날 버리시면 어쩌나 생각진 않지만

이제나저제나 당신 오는 곳만 바라봅니다

나는 팔도 다리도 없어 당신에게 가지 못하고

당신에게 드릴 말씀 전해 줄 친구도 없으니

오다가다 당신은 나를 잊으셨겠지요

당신을 보고 싶어도 나는 갈 수 없지만

당신이 원하시면 언제라도 오셔요

당신이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다 가셔요

나는 팔도 다리도 없으니 당신을 잡을 수 없고

잡을 힘도 마음도 내겐 없답니다

날 버리시면 어쩌나 생각진 않지만

이제나저제나 당신 오는 곳만 바라보니

첩첩 가로누운 산들이 눈사태처럼 쏟아집니다


- 시집『그 여름의 끝』(문학과지성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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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이사하고서 겨를이 없어 아직 책 정리를 제대로 못했다. 집을 절반으로 줄인 관계로 버릴 건 버리고 박스에 넣어 처박아둘 것은 두었는데도 좁은 서가에는 책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우선 시집은 따로 정리할 요량에 지리멸렬하게 누워 쌓인 책들을 주섬주섬 가려내는데 한 시집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 전에도 출처를 알지 못한 채 내 집으로 흘러들어온 시집이 있고, 이해인의 '민들레 영토' 등 누군가로 부터 선물로 받은 시집도 있긴 있었지만, 내가 직접 돈을 지불하고 황동규의 시집과 함께 최초로 구입한 이성복의 시집이었다. '남해 금산'에 이은 이성복의 제3시집 '그 여름의 끝'을 두고 평론가 남진우는 소월과 만해의 시적 계보를 잇는 연애시의 새 진경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런 시평의 영향으로 시집을 구입했을지도 모르겠다.


 시집에는 ‘당신’을 향한 사랑노래가 빼곡하여 독자들도 그를 연애시인으로 자리매김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남해 금산'의 ‘편지 1’에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습니다.”라고 이미 토로한 바 있지만, 이 시집의 ‘서시’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 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이처럼 사유는 더 심화되었고 감정은 더욱 절절해졌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기본적으로 ‘나’와 ‘당신’의 관계가 바탕 되어 ‘당신’의 실재와 부재 사이에 내재한 삶의 비밀을 캐물어 가는 사랑노래였다.


 나의 삶에는 부재하는 당신이라는 그리움의 존재, 그리고 이 같은 그리움이 삶을 흐르게 한다는 사실, 흐르는 삶의 길 위에서 내가 당신을 향해 부르는 사랑노래. ‘숨길 수 없는 노래 2’에서도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며,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고 했다. 사랑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이며, 그 그리움은 기다림으로, 기다림은 때때로 서러움의 봉분이 된다. “이제나저제나 당신 오는 곳만 바라보니” 기다리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혹독한 기다림으로 망부석이 될 도리밖에. 당신의 사랑이 없는 나는 정처 없으므로 의미 없는 삶의 강물 위로 그저 흐를 뿐. 당신 오기만을 기다리며 “첩첩 가로누운 산들이 눈사태처럼 쏟아집니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니 이 시는 단지 사랑의 기다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가 쓰진 시기가 80년대인 점을 환기하고, '그 여름의 끝'이 그렇듯 그 시대의 절망을 상징한다면 그 '기다림'은 희망의 간구일 수도 있겠다. '시인의 산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대체로 우리는 아픔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몸 어딘가가 썩어 들어가는데도 아프지 않다면, 이보다 더 난처한 일이 있을까? 문제는 우리의 아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있다. 오히려 아픔은 <살아 있음>의 징조이며, <살아야겠음>의 경보라고나 할 것이다. 정신의 아픔은 육체의 아픔에 비해 잘 감지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은 병들어 있으면서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의 아픔, 그것만 해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병들어 있음을 아는 것은, 치유가 아니라 할지라도 치유의 첫 단계일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픔만을 강조하게 되면, 그 아픔을 가져오게 한 것들을 은폐하거나 신비화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이다. 그 진실 옆에 있다는 확실한 느낌과, 그로부터 언제 떨어져나갈지 모른다는 불안한 느낌의 뒤범벅이 우리의 행복감일 것이다. 망각은 삶의 죽음이고, 아픔은 죽음의 삶이다." 미쳐 돌아가고 있는 이즈음의 '눈사태'같은 절망들에 많이 아프다.


 염치없고 실마리 없음에도 내게도 사랑이 오긴 오겠는지, '기다림'은 유효한 것인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는 큰 소리로 말했다. ‘사랑이 그대들에게 따라오라 손짓하면 주저 말고 그를 따라가라’ ‘그 길이 비록 험하고 가파를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들을 감싸 안을 때면 모든 것을 맡기라’ 사랑은 사랑으로 충분하며 완전하리라. 그래서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에 사랑의 아픔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진정으로 사랑하였기에 상처받게 되기를’ ‘상처로 피 흘리면서도 사랑을 위하여 마음은 늘 기쁨에 차 있기를...’ 별로 먼지가 앉은 것 같진 않았으나 '그 여름의 끝'을 두어 번 툭툭 털어 서가의 가장 잘 보이는 선반에 꽂아두었다.


권순진

 

   May it be / Enya (반지의 제왕 OST)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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