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홧가루 날리니, 송화다식이 먹고 싶네

윤사월(閏四月) / 박목월
송화(松花) 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길다
꾀꼬리 울면 
산직이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 듣고 있다
.
지난 주부터 아파트 옆에 있는 산에서 운동을 
하면서 소나무에 송화가 많이 달린 것을 보았습니다. 
요즘엔 차유리는 물론이고 아파트 전체가 온통 
노란 송홧가루로 뒤범벅이 되었네요...^^
운동을 하면서 박목월님의 
'윤사월'을 암송해 보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소나무의 새로운 것도 알게 되었네요.
무엇이냐구요? 소나무는 5월에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 따로따로 핀다는 것을 알았네요...
    송홧가루 날리니, 송화다식이 먹고 싶네 바람이 부니 앞산에 노란 안개가 피어납니다. 마치 새벽녘 강가에서 피어오르던 그 물안개처럼 하늘거리는 노란 안개가 바람 따라 휘휘 피어납니다. 그렇게 피어난 노란안개로 하늘이 노래집니다. 하늘만 그런 게 아니라 사방천지가 온통 노란색이 됩니다. 송홧가루가 바람 따라 물안개처럼 피어나고 그렇게 피어난 송홧가루가 천지를 노랗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이 맘 때가 되면 소나무에도 꽃이 핍니다. 그렇게 핀 소나무 꽃에서 발생하는 노란 꽃가루가 바로 송홧가루입니다. 송홧가루는 그 가루가 어찌나 고운지 작은 바람에도 안개처럼 천리만리 가벼이 날아다닙니다. 지금이야 애꿎은 먼지 취급을 당하지만 옛날에는 이 송홧가루를 채취해 다식이나 고급과자를 만드는 재료로 사용했었습니다. 요즘도 재래시장이나 고급 음식 재료를 파는 곳엘 가면 송홧가루를 살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이렇게 채취한 송홧가루로 명절이나 제사 때 다식을 만들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다식이 꽤나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검은 깨로 만드는 깨다식, 찹쌀과 다른 것을 섞어 만드는 찹쌀다식 그리고 송홧가루로 만드는 송화다식 등이 있었습니다. 송홧가루에 꿀이나 물엿을 넣어 이들을 잘 반죽해 다식판에 잘 다져넣고 꾹꾹 찍어내면 다식이 만들어 졌는데 먹을 것이 별로 없던 그때는 다식이 아주 귀한 과자였습니다. 다식을 만들 때 꿀이나 과자를 넣었던 것은 아무래도 송홧가루 자체만으로는 잘 뭉쳐지지 않고 단맛을 내야 했기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그 당시 유행했던 당원이나 사카린을 넣지 않고 꿀이나 물엿을 넣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딱딱하게 굳지 않았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도 만들 때처럼 적당하게 말랑거리기에 먹기 좋아서 사용한 듯합니다. 지금이야 그때의 다식들 보다 더 맛나고 달콤한 과자들이 흔해서 잘 먹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그때의 다식을 생각하면 입맛이 돌고 가슴이 울컥해 집니다. 소나무에 매달려 먼지처럼 날리기 쉬운 송홧가루를 채취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소나무를 휘어잡고 광목으로 만든 자루나 마분지로 만든 종이봉투를 송화에 대고 작은 막대로 톡톡 때리며 풀풀 날리는 송홧가루를 채취하는 모습을 말입니다. 먼지처럼 날리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봉투 안에 쌓이는 그 가루를 모으는 게 송홧가루 채취였습니다. 바람이 없거나 잔잔한 날은 그래도 괜찮았지만 바람이라도 불면 송홧가루가 자루나 봉투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람에 날려 온통 머리에 뒤집어쓰기 일쑤였던 게 송홧가루 채취였던 듯싶습니다. 그러니 송홧가루를 채취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꽃가루를 잔뜩 몸에 묻힌 벌들의 뒷다리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머리는 물론 귓속까지 온통 노란 송홧가루로 덮였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채취해 온 송홧가루는 고운 체로 쳐서 이물질을 제거한 다음 잘 말려서 보관하였습니다. 하늘이 노랗도록 휘날리는 송홧가루를 보니 문득 그 송홧가루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른들의 옛 모습이 떠오르며 송화다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 침을 꿀꺽 넘기게 됩니다. 송홧가루를 채취하러 갈 때 어른들을 따라다니며 송피를 얻어먹던 기억도 있습니다. '보릿고개'란 말이 50,60년대의 농촌 경제를 말해 주는 대표적 묘사 어구라고 하면 이 보릿고개를 극복하는 대표적 방법 중 하나를 묘사하는 단어는 '초근목피'일 겁니다. 말 그대로 먹을 것이 떨어지니 풀뿌리를 캐먹고 나무껍질을 벗겨 주린 배를 채운다는 뜻입니다. 어렸을 때 딱히 배가 고파서 먹었다는 기억은 없지만 어른들이 송홧가루를 채취하러 갈 때 쫄랑거리며 따라나서면 물오른 소나무 껍질을 벗겨 목피를 먹게 해 주었습니다. 일 년쯤 된 물오른 소나무 순을 잘라 겉껍질을 벗겨주면 얼음과자를 빨아먹듯 그 것을 빨아먹었습니다. 소나무의 속껍질에서는 달착지근한 물도 나오고 약간은 끈적거리는 듯한 속껍질 자체를 뜯어먹을 수 있었습니다. 봄바람에 피어나는 송홧가루를 보니 송화다식이 먹고 싶고 그때 맛보았던 그 목피의 맛이 그리워집니다. 박목월님의 시 "윤사월"에 나오는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처럼 문설주에 귀를 대고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를 하루 종일 마음에 그려 보렵니다. - 임윤수 기자 / ⓒ 2005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처 : 독서논술지도사 김필녀서재
글쓴이 : 김필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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