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남찬숙의 안동에서 받은 편지함(글/김필녀_시인)


한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이맘때가 되면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세월의 빠름을 실감하게 된다.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을 조용히 되돌아보며 자신을 반성하는 달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말이 되면 사람들 마음이 더욱 겸손해지는지도 모른다. 올해는 작년부터 불어 닥친 세계적인 불황속에 우리나라 경제도 말이 아니다. 서민들에게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살기가 힘들지만 올 겨울은 유난히도 다른 겨울보다 체감온도가 더 혹독하다. 하지만 밤이 깊으면 새벽이 쉬이 오듯,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따스하게 지낼 수 있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것에 행복할 줄 아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면 먼저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그것이 바로 독서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 책을 읽지 않는 국민으로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 참 부끄러운 현실이다. 요즘은 어린이들도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점수에 매달리다 보니 학원을 몇 군데씩 다니다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먼 장래를 미리 내다볼 줄 아는 현명한 학부모들이라면 수학문제 몇 문제 더 푸는 것보다, 영어단어 몇 개 더 외우는 것보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많이 하는 어린이로 키우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안동생활4년차, 서울새댁 동화 작가 남찬숙


안동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쓰는 작가가 살고 있다. 벌써 여러 권의 동화책을 내고 제법 이름이 알려진 동화작가 남찬숙 씨가 바로 이웃해 살고 있는 오늘의 주인공이다.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한 때는 독서지도사로 일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전업 작가이다. 잊고 지내기 쉬운 우리 주변의 작고 소중한 어린이들 이야기를 생생하게 길어 올리며 글을 쓰고 있는 그녀는 “안동생활 4년차에 제가 감히....”라며 만남을 조심스러워했다.


2000년 <괴상한 녀석>을 발표하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으며, <받은 편지함>으로 ‘2005 올해의 예술상’을 받기도 했다. 그 밖에 <사라진 아이들>, <꿈꾸는 꼬마 자전거>와 안동에 와서 쓴 <니가 어때서 그카노> 등이 있다.


남찬숙 작가를 만나기 위해 안동시내에 있는 옥동의 아파트를 찾았다. 아파트 문을 열자 생머리에 화장기 없는 맑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안동생활 4년차, 안동에 딱히 연고가 없다는 그녀의 말에 약간 놀랐으나 특별하지 않은 계기는 오히려 살아가면서 안동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서울은 우선 집값이며 물가가 비싸서 살기 힘들잖아요. 안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서울에 있을 때보다 적게 벌어도 되니 경제적으로도 좀 안정이 되고 그러다보니 작품을 쓰는데 도움이 됐어요. 게다가 남편과 제가 하는 일이 서울에서 해야 되는 일도 아니었고요. 그렇다면 굳이 서울에서 생활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이 됐죠.”


가까이 청송에 시댁이 있다. 청송을 몇 번 오가다 본 안동은 참 조용하고 마음이 편안한 도시였다. 그 점이 구체적인 보금자리로 다가왔고 인자한 시부모님이 계시는 시댁 인근에서 생활하는 것도 괜찮고 작품을 쓰기에도 좋을 것 같다는 판단으로 이사를 왔다. 거실 벽에는 다섯 살배기 딸 현서의 낙서가 가득했는데 현서의 말에 의하면 멋진 삐돌이인 남편 조효래 씨와 예쁜 삐순이 현서, 이렇게 세 식구가 단출하게 살고 있다.


남편 조효래 씨의 이력 또한 남달랐는데 서울대 의대에 합격해 당시 청송고을이 떠들썩했다고 한다. 그런데 적성이 맞지 않다고 대뜸 의대를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해서 같은 학교 물리교육학과를 합격해서 고향사람들을 다시 놀라게 했다. 하지만 또 졸업을 하지 않은 채 고시공부를 하다가 그 길도 접었다고 한다. 둘 다 혼기가 꽉 찬 나이에 결혼을 했는데 시어머니께서는 갈팡질팡하는 막내아들을 바로잡아 줘서 고맙다며 막내며느리인 남찬숙 씨를 많이 좋아한다고 한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실에는 으레 집안에 있는 물건 하나가 없었다. TV가 안보였다.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에 가족 모두 TV가 없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며 현서도 아무 불평을 하지 않고 있으며 그 대신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한다. 시끌한 TV를 멀리한 그녀의 선택이 남다른 환경을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필해준 과제 덕에 동화작가로 데뷔

작품 활동 외에는 놀이방에서 돌아오는 딸 현서를 돌보는 일, 가끔씩 외부에서 들어오는 원고청탁과 초청강의가 있다고 한다. 현서가 아직 어려 놀이방에 갔을 때가 집중적으로 쓸 시간이라 늘 글 쓰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안동에 온 후에는 청송 시댁마을을 배경으로 한 ‘니가 어때서 그카노’와 ‘안녕히 계세요’를 발표했다. 다음 나올 책은 이미 원고를 출판사에 넘겨줬기 때문에 내년 초에 나올 예정이다.


그녀는 부딪치는 고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서 밝게 작품을 쓰려고 노력한다. 또한 고민이 해결되어 행복해지고 꿈을 갖게 되는 ‘열린 결말’로 끝맺음을 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읽는 책인 만큼 너무 심각한 쪽으로 문제를 파헤치는 것 보다는, 그렇지 않아도 학원이나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인데 동화를 읽을 때만큼은 마음이 밝아지게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단편보다는 장편을 많이 쓰는 편이다. 원고지 400매 정도의 장편을 초고 쓰는 데는 1개월 정도 걸리고, 퇴고 하는데 대략 3개월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녀가 동화를 쓰게 된 계기가 참 재미있다. 아동문학을 전공한 선배 한분이 학교에 동화를 써내야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시간이 없다며 대신 부탁을 해서 써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담당 교수에게 소질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녀 덕에 좋은 성적을 받은 그 선배가 동화를 써 보라고 권유했다.


2000년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공모전 최종심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때 경합을 겨뤘던 작품이 김중미 작가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이었다. 당선은 안됐지만 출판사에서는 출판을 해주었다. 당시 심사위원이 권정생 선생이셨다고 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딱 한번 뵈었던 분이지만 그녀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고, 작년 선생의 장례식에 조용히 다녀갔다. 선생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녀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졌다.




친구들의 안동나들이에 가이드로 변신

분잡한 도시를 떠나 지낸 안동생활, 처음엔 익숙치 않아 놀라운 점도 있었지만 이젠 어느덧 안동사람으로 녹아나고 있는 듯하다. 그동안 하회마을, 병산서원, 봉정사, 도산서원 등 거의 모든 곳들은 다 둘러보았다. 안동에 내려온 초창기에는 서울에서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서 소개를 잘 못하면서도 가이드까지 해가면서 많이 다녔단다. 다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봉정사와 병산서원이 그녀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안동에 거주하지만 아직 지역 문인들과의 교류는 없다. 소설가 권오단 씨와 유일하게 아는 사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혼자 글을 쓰기 때문에 아직 안동에서 절친한 친구도 사귀지 못했고, 이웃도 사귀지 못해서 아직은 안동이 낯설다고 한다. 혼자 조용히 작품활동을 하는 편인 그녀는 안동사람들은 모두가 다 서로 잘 아는 분들인 것 같다면서 웃었다.


남편은 그래도 청송이 고향이기 때문에 아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은데 4년을 살았으면서도 선뜻 안동사람이라고 이야기하기가 조금은 뭣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래 살다보면 차츰 익숙해 질 것일터, 이젠 아파트 도서관 봉사활동도 나가는 등 제법 ‘안동사람’티가 나고 있었다.


남찬숙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안동은 어느 도시보다 지연, 학연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 타지에서 처음 이사를 오면 소외감을 많이 느끼는 것이 사실인 것 같아 안동사람으로서 고쳐야 할 부분들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안동이 글로벌화 되고, 도시가 성장하려면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안동으로 많이 유입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안동에 살고 있는 시민들이 마음을 활짝 열고 그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따뜻한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남찬숙 작가도 하루빨리 안동에 적응을 해서 우리 안동의 어린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좋은 동화를 많이 썼으면 하는 마음이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작품 쓰고파

그녀는 앞으로는 위인전과 철학 동화도 쓸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는 한편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한다.


“인기 있는 작품을 쓰는 것보다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지금 읽는 책을 어른이 되어서도 읽을 수 있고 결혼을 해서 자기 아이한테 사 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어요.”


작가라면 누구나 다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동화작가에 대한 환상이자 오해일 수도 있으나, 동화작가는 마음이 순수해야 되지 않을까를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면서 웃는다.


“저도 동화작가가 되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되고 보니 다른 사람과 똑같아요. 그래서 동화를 쓰면서 작가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기도 했고, 삶과 작품이 일치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처음에는 부담스러웠어요. 책을 사서 읽는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실제 생활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어른들 앞에서 하는 강의는 부담이 없는데 가끔씩 아이들 앞에서 직접 강의를 하는 것이 정말 부담스럽다고 했다. 요즘 강사들은 유머가 뛰어나야 하는데 자신은 남을 웃기는 재주 또한 없어서 아이들 앞에 나서서 강의나 대화하는 것보다는 메일을 주고받는 게 더 편하다고 한다.


옆에 가지런하게 놓은 동화를 보면서 출판된 동화책이 거의 다 인기 있게 잘 팔리는 것 같아 혹시 책마다 히트를 치는 비결이 있는지 궁금했다.


“비결은 없고 열심히 쓰고 있어요. 열심히 쓰다보면 인기를 얻는 책도 나오고 수입도 늘지 않겠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전업 작가로 살아가기에는 너무 열악한 환경이지요. 다른 장르보다는 그래도 동화 작가들 수입이 낫다고 하는데도 글만 써서는 생활이 되지 않는 현실이죠.”


아무래도 전업 작가로서 피부로 와 닿는 현실 때문이리라. 그녀처럼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작가는 원고만 넘겨주면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어 주고 작가는 인세만 받는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관심사를 많이 묻게 되었다. 시를 쓰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쓴 시를 많이 읽어야 시를 잘 쓸 수 있다고 해서 시집들을 많이 사서 읽은데 동화 작가들은 어떨까, 그녀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동화를 읽지 않는다고 했다.


“솔직히 다른 작가의 동화는 거의 안 읽어요. 왜냐하면 잘 쓴 동화를 읽으면 비교가 되서 속상할 것도 같고 창작을 해서 썼는데도 비슷한 주제가 나오면 표절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에요.”


그렇다고 다른 책을 어디 멀리할까. 그녀는 안동의 서점과 도서관이 타 지역보다 아쉬운 점이 많다고 한다.


“물론 도서 환경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다른 도시의 서점보다 안동의 서점에는 책이 다양하게 없어요. 그리고 학교 도서관도 다른 지역보다 열악한 것 같고, 아이들도 동화에 관심이 적은 것 같아요. 내 책을 읽고 나서 안동보다 아주 작은 시골 아이들한테서도 메일이 오는데 안동에 사는 아이한테 메일이 온 것은 딱 1명 뿐에요. 안동이 교육의 도시라지만 독서교육도 그렇고 여러 가지가 많이 열악한 것 같아요.”




받은 편지함, 아이들과 메일로 소통


책을 내고 나면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평을 하는 것이 좀 서운하다고 한다. 그러나 어른들은 책 내용을 가지고 심각하게 평을 하고 분석을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그래서 책을 내고 나서는 평을 아예 보지 않는다고 한다. 상처를 받기 싫기 때문이고 자신의 독자층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아이들한테 오히려 쓴 소리를 듣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쓴 작품 중에서 남찬숙 작가가 가장 아끼는 책은 <사라진 아이들>과 <받은 편지함>이다.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가장 아끼는 책은 사라진 아이들이고, 가장 고마운 책은 받은편지함이에요. 받은 편지함 때문에 상도 받고 유명해졌어요.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서 아이들과 메일을 많이 주고받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메일을 주고받은 층은 거의 초등학생들이고 옛날부터 편지를 주고받았던 학생이 중학생이 되어서도 메일을 보내와요. 가끔씩은 엄마들하고도 메일을 주고받아요.”


그녀의 동화 <받은 편지함>덕에 아이들은 용기를 내서 메일을 보내고 또 그녀는 그렇게 답장을 하며 아이들과 소통을 한다.


동화는 자라나는 새싹인 어린이들이 읽는 책이다. 어린이들이 그 책을 읽고 또래들과의 생각도 알게 되고 고민도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장래 희망과 꿈도 갖게 된다. 어린이들이 좋은 책을 가까이 하려면 좋은 책이 많아야 한다. 그러려면 좋은 책을 쓰는 작가들도 많이 배출되어야 할 것이다.


그녀가 안동에 푹 적응을 해서 안동사람으로 오래도록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그녀가 안동의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을 잇는, 어린이는 물론이고 어른의 마음도 아우르는 그런 안동의 동화작가가 되길 기대해본다.  <안동>

통권119호 - 新 안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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