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 / 권천학

 

가령, 손가락으로 개미를 누르는 일은 아주 사소하다

그러나 손가락의 힘에 눌려 죽은 개미에겐 절대로 사소하지 않다

저의가 없는 사소한 행동이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절대로 힘을 생각없이 쓰지 않는 일만큼이나 사소하지 않다

 

손가락을 가시에 찔리는 일은 사소하다

남의 염통이 곪는 것보다 가시에 찔린 내 손가락은 사소하지 않다

그보다 더 사소하지 않은 것은

가시에서 꽃을 피워낸다는 것을 깨닫는 일

그러나 가시밭길을 살면서

성공의 꽃을 피워내는 일은 더욱 사소하지가 않다

 

감기에 걸리는 것쯤은 사소하다

감기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것까지도 사소할 지경이다

그러나 폐렴으로 목숨을 차압 당하게 될 때

감기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 김제문학 제14호(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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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고 합니다. 흔히 남들에게는 뭐 그만한 일로 그러냐고 이빨 쑤셔가며 말하지만 그게 자신의 일이 되었을 땐 대개 그렇지 못합니다. 누군가 연못을 향해 던진 무심한 돌에도 개구리는 맞아 죽을 수 있고, ‘손가락으로 개미를 누르는’ ‘아주 사소’한 행위도 개미에게는 치명적입니다. 무심히 못을 박는 망치질도 누군가의 손목이 그 밑에 있을 수 있습니다. 물리적 동작뿐 아니라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그 말을 모래밭에 손가락으로 쓰지만 듣는 사람은 철판에 끌로 판다고 했습니다.

 

 말이든 행동이든 그것을 던지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은 그렇게 큰 차이가 납니다. 인간만사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미세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도덕경>의 말처럼 세상의 모든 큰일은 결국 사소한 것에서 비롯됨을 되새겨보아야 할 것입니다. 천길 높은 둑은 개미나 땅거미의 구멍으로 무너지고, 백 척 높이의 어리어리한 집도 아궁이 틈에서 나온 조그마한 불씨 때문에 타버린다는 것입니다.

 

 숭례문 방화나 대구 지하철 참사 등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한 인간의 정신적 착란이나 사소한 술주정이 엄청난 위해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세계대전도 작은 충돌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조직의 붕괴도 얼핏 사소하게 보일 수 있는 오판과 작은 마찰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그 조직에 애정을 갖고 있는 구성원이라면 작고 사소한 일이 어떤 흐름으로 전개될 수 있는지를 늘 살펴야 하며, 또한 작은 일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더구나 '가시밭길을 살면서 성공의 꽃을 피워내는 일'임에야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감기에 걸리는 것쯤은 사소하다' 여길 수 있으나 '감기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점까지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뿜는 마음의 독기가 공기 중에 가득차면 유증기와 같이 작은 불꽃에도 폭발해버릴 수 있습니다. 생각 없이 그었건, 미필적 고의든, 작정을 한 것이든 성냥불 하나가 집안을 불사르고 조직을 말아먹고 산하대지를 불태웁니다. 못 하나가 없어서 편자는 못 쓰게 되고, 편자 하나가 빠져 말이 잘 걷지를 못하는데, 하물며 있는 편자와 안장까지 뽑아내고 채찍만으로 달릴 수 있다는 발상은 '사소한' 불씨라 하기엔 너무나 어리석고 치명적인 화근입니다.

 

 

권순진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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