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사람을 만든다/천양희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어떤 날은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막무가내 올라간다
고비를 지나 비탈을 지나
상상봉에 다다르면
생각마다 다른 봉우리들 뭉클 솟아오른다
굽은 능선 위로
생각의 실마리들 날아다닌다
뭐였더라, 뭐였더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의 바람소리
生覺한다는 건
生을 깨닫는다는 것
생각하면 할수록 生은 오리무중이니
생각이 깊을수록 生은 첩첩산중이니
생각대로 쉬운 일은 세상에 없어
생각을 버려야 살 것 같은 날은
마음이 종일 벼랑으로 몰린다
생각을 버리면 안된다는 생각
생각만 하고 살 수 없다는 생각
생각 때문에 밤새우고 생각 때문에 날이 밝는다
생각이 생각을 놓아주지 않는다
지독한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출처 : 천양희, 오래된 골목, 2003, 창비
마지막 행 “지독한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는 구절에서의 “지독”은 아마도 “至毒”이 아니라 “至獨”일 것이라고 홀로 생각해본다. 예술가에겐 친구가 없다. 오늘의 좋은 ‘벗’은 내일의 지독한 ‘숙적’이며, 오늘의 즐거운 ‘나’는 내일의 지겨운 ‘벗’이다.
실천은 함께 하지만 생각은 홀로 하는 것이다. 남과 견줄 수 없는 공간에서 홀로 궁리(窮理)한 끝에 세상에 풀어놓은 생각이 다른 생각을 만나는 순간, 생각은 비로소 홀로 서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예술가는 지독(至毒)하게 지독(至獨)해야 한다. <전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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