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백석

 

새끼오리도 헌신짝도 소똥도 갓신창도

개니빠디도 너울쪽도 짚검불도 가랑잎도

머리카락도 헝겊조각도 막대꼬치도 기왓장도

닭의 ?도 개터럭도 타는 모닥불

 

재당도 초시도 門長늙은이도 더부살이 아이도

새사위도 갓사둔도 나그네도 주인도 할아버지도

손자도 붓장시도 땜쟁이도 큰 개도

강아지도 모두 모닥불을 쪼인다

 

모닥불은 어려서 우리 할아버지가

어미아비 없는 서러운 아이로 불쌍하게도

몽둥발이가 된 슬픈 역사가 있다.

 

- 시집 사슴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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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석의 시는 민족주체성이 훼손된 시기에 꺼져가는 모국어의 명맥을 되살려내었다고 평가 받는다. 그의 모국어 정신은 방언주의로 나타나는데, 그를 일컬어 부족 방언의 마술사라 칭하는 이유가 이 시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동화적 상상력으로 아름다운 토속어를 부려놓는 솜씨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 ‘모닥불은 민족주체성의 확보와 모든 종족 사물들 간 관계 합일의 지향을 밀도 있게 담은 작품이라는 문학평론가들의 일반적 해석이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뜻을 잘 알지도 못하는 시어에서 맴도는 묘한 운율, 얼핏 촌스러운 시어의 평범한 조합이 만들어내는 신선함과 정겨움이 오히려 세련된 감각으로 먼저 와 닿는다.

 

 모닥불에는 세상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것들이 모여 작지만 따뜻한 불을 피우고 있다. 새끼 오리, 헌신짝, 소똥, 갓신창(부서진 갓에서 나온 말총으로 된 끈의 한 종류), 개니빠디(개의 이빨), 너울쪽(널빤지쪽), 짚검불, 헝겊조각, 개터럭(개털) 등 시 속에 등장한 모든 생물과 무생물들이 하나의 가족 개념을 이룬다. 모닥불은 세상으로부터 업신여김 당하고 쓸모없는, 그래서 더욱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받아서 불을 피웠다. 그리고 모닥불 주위에는 버려진 물건들만큼이나 초라한 인간 군상들과 강아지까지 누구나 와서 따뜻함을 분배받으면서 온몸을 쬐고 녹인다. 모닥불은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서 타닥타닥 불을 피웠다.

 

 재당(재종. 육촌), 초시(초시에 합격한 사람으로 늙은 양반), 문장늙은이( 문중에서 항렬과 나이가 위인 사람), 더부살이 아이, 갓사둔(새사돈), 나그네, 주인, 땜쟁이, 큰개, 강아지 등 모닥불을 쬐고 있는 이들은 신분의 높낮이, 나이나 가족 나아가 인간과 동물간의 구분도 경계도 지웠다. 모닥불이라는 구심점을 향해 둥글게 모여 앉은 모두가 상하좌우 문턱 없이 평등하다.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며 가슴 속의 서러움마저도 녹아내리게 하는 것이 바로 모닥불이다. 고통스럽고 서러운 몽둥발이(딸려 있던 것이 다 떨어져 나가고 몸뚱이만 남아 있는 사람)가 된 할아버지의 슬픈 역사마저 융숭깊은 내적 화해로 녹여버리는 것이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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