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길 / 신경림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아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 마시고

가위소리 요란한 엿장수 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감석 깔린 장길은 피하려네

내 좋아하던 고무신집 딸아이가

수틀 끼고 앉았던 가겟방도 피하려네

두엄더비 수북한 쇠전마당을

금줄기 찾는 허망한 금전꾼되어

초저녁 하얀 달 보며 거닐려네

장국밥으로 깊은 허기 채우고

읍내로 가는 버스에 오르려네

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이에게만

삶은 때로 애닯기만 하리

긴 능선 검은 하늘에 박힌 별 보며

길 잘못 든 나그네 되어 떠나려네


- 시집 달넘세(창작과비평사,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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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물고기 잡고 뒷산에 올라 산딸기 따먹고 동무들과 이리저리 날뛰며 토끼몰이 했던 추억들, 지서 뒤 미루나무 위의 까치집과 툭하면 걸려 넘어지던 높은 문지방, 솔잎 때는 연기의 매캐한 냄새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고향’이란 그냥 상투적으로 흘려듣고 말 낱말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냇가를 찰방거리는 아이들 보기 어렵고 뒷산 토끼와 다람쥐들도 죄다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람 떠난 집 몇 ‘벽에는 아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겠으나, ‘우물물’도 ‘쇠전마당’도 그리움을 되살릴 그 무엇도 제대로 남은 것이 없다.


 종이에 풍년초를 말아 성냥불을 긋던 얄궂은 불장난, 몇 모금 빨다가 캑캑거리며 호들갑 떨다 짚단을 태웠던 일, 불이 번진 짚단 위로 반딧불처럼 불티들이 어지럽게 휘날릴 때 당혹감 뒤에 숨겨진 은은한 황홀감, 이윽고 어른들에게 불려가 몽당싸리비로 직싸게 얻어맞고 다음날 잠자리에서 오줌을 지렸던 일 따위의 눅눅한 기억들. 다행히 ‘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우수수 몇 흩날리면, 떠나온 그 날을 힘겹게 회억할 따름이다. 다들 대처로 가서 살아야지만 사람구실을 한다고 여겼던 탓에 내남할 것 없이 떠나왔던 고향 아닌가.


 두고 온 고향마을은 서늘함이 감돌아 이맘때면 뉘 집이든 툇마루에 노인들 쪼그리고 앉아 담배연기 빠끔빠끔 뿜어대며 내 손주들 하마 오나 마을입구만 연신 바라보는 게 일이겠거니. 이렇듯 고향은 아득하고 원초적인 체험들로 넘실거리고, 사람들에게 잠재해 있는 생태적인 감동을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고향'은 고향을 잃은 자의 회한 속에서 발견하는 개념이지, 그곳을 지키고 그곳의 흙을 밟고 사는 사람이 떠올리는 개념은 아니다. 고향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끈이 이어져 있음을 느끼게 하고 어디 있더라도 자꾸 돌아가고 싶게 하는 정겨운 곳이기는 하다.


 ‘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이에게 삶은 때로 애닮’지만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하지만 ‘장국밥으로 깊은 허기 채우고’ 서둘러 ‘읍내로 가는 버스에’올라 ‘쫓기듯 도망치듯’ 애달프게 ‘긴 능선 검은 하늘에 박힌 별 보며’ ‘길 잘못 든 나그네’처럼 떠나야만 하는 곳이기도 하다. 진한 추억은 애써 피해가고 싶었던 신경림 시인. 설레발치며 이 사람 저사람 찾아다니면서 공연히 고향 사람들 도분 나게 할 넉살은 없었으리라. 기껏 한해 두어 번 어정쩡한 귀향과 귀경을 되풀이해가지고는 결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



 아무리 고향을 그리워한데도 고향은 아무 때나 덮어놓고 받아주지는 않는다. 고향엔 당산나무 같은 난해하고 지엄한 어떤 기운이 서려있다. 고향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어쩌면 떠나 산만큼의 대가를 지불해야할지 모른다. 고향에다 무슨 선심을 서라거나 물질적인 보상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곳의 사람들은 물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게도 자신과 동화되도록 따뜻한 마음을 바쳐야 한다. 그런 절차와 과정 없이 어찌 고향을 넘보랴. ‘긴 능선 검은 하늘에 박힌 별 보며’ 기어이 ‘길 잘못 든 나그네 되어 떠나’지 않을 수 없으리라.



권순진


 

Pavane For A Winter Bird - Stewart Dudley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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