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여름/ 김종길


소나기 멎자
매미소리

젖은 뜰을
다시 적신다.

비 오다
멎고,

매미소리
그쳤다 다시 일고,

또 한여름
이렇게 지나가는가.

소나기 소리
매미소리에

아직은 성한 귀
기울이며

또 한여름
이렇게 지나보내는가.



- 201085일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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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덥지 않은 여름은 없었지만 눈앞의 현실이라 올해는 유난히 더운 것 같다. 이것도 지구온난화의 가속화 영향인가. 과학자들은 지구온도가 2도 상승하면 지구상의 생물이 최소 20% 이상은 멸종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프리카 사막은 점점 넓어지고 있으며 초원으로 뒤덮였던 몽골고원은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지구의 환경은 엄숙하고 아름답지만 그 환경이 사람과 동식물에게 맞춰주진 않는다, 모든 생물은 알아서 환경에 적응하고 견디며 살아야 한다. 나이 들면 자연에 대한 적응력도 떨어져 조신하게 여름을 견딜 수밖에 없겠다.


  소나기 멎자 창문을 여니 폭포처럼 쏟아지는 매미소리, 세상에 나와 한 달도 채 못살고 생을 마감해야할 운명이니 저렇게 바락바락 가열 차게 우는 것도 이해 가고 용납이 된다. 26년생 노 시인은 또 한여름 이렇게 지나가는가.’라며 한 계절이 가고 있음을 아직은 성한 귀를 기울여 소나기 소리와 매미 소리를 통해 감각한다.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마음을 잠시 풀어헤친 사이 화분이 마르고 나뭇잎이 타들어간다. 이사 오면서 다 버리고 화분 몇 개 가져온 것마저 어머니의 부재동안 다 말라죽고 하나 남은 산스베리아에 바가지 물을 주었다.


  중국의 양귀비는 더위를 많이 타서 여름을 무척 싫어했다고 한다. 여름이 되면 양귀비는 빙잠(氷蠶)이라 하여 대설산(大雪山)의 눈 속에서 자라는 누에고치 실로 짠 옷을 입고 지냈다고 한다. 이것도 모자라서 더위를 이기기 위해 빙병(氷屛)이라는 얼음병풍을 두르고 선차(扇車)라는 물레방아 부채를 돌리는 시원한 궁전에 살면서도 더위에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은 냉방기구가 있어 양귀비보다 더 더위를 타는 사람도 무난하게 여름을 견딜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여름 내내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만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양귀비처럼 한곳에만 틀어박혀 지낼 수도 없고, 매미소리와 소나기 소리나 들으면서 애잔하게 여름을 소일하지도 못할 것이므로 도리 없이 높은 기온에 노출이 되고 땀도 많이 흘리게 된다. 이로 인해 사람의 몸도 수분이 부족해지고 인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더위에 지쳐 생기를 잃고 식욕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런 지경을 더위 먹는다고 하는데 자칫 만사가 귀찮아진다. 인체의 변화는 자연과 같이 변화한다. 그래서 인체를 소우주라 표현을 한다. 인체는 자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음양의 평형을 잃는다.


  한의사들은 양생의 비결을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여 섭생과 생활을 조절할 것을 권한다. 무더위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 인체의 생리활동을 잘 조절하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란법석 떨지 않고 보양식이나 과일도 먹을 기회가 있든지 구미에 당기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에어컨을 털어놓고 TV드라마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다산도 뜨거운 날 졸음에 겨워 책읽기 싫어서 손님 모아 바둑 구경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했고 욕심 끊고 한가로운 이야기 나눔도 더위를 견디는 방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저 그럭저럭 또 한 여름을 견디는 것이다.



권순진


Night In That Land - Nightnoise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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