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 풍경



 

며칠 동안 내린 장맛비로 강물이 많이 불어서 물의 흐름도 여유롭고, 강변길도 어느 때보다 깨끗해서 상쾌한 기분으로 강변을 걷기 시작했다. 휴일 한낮의 강변은 참 한가롭다. 나와 마찬가지로 한 손에 우산을 든 사람들이 드문드문 산책을 하고 있고, 간간히 흩뿌리는 장맛비가 얼굴에 와 닿으니 시원해서 발걸음이 더 상쾌하다. 밤에 걷는 강변길도 좋지만 사람들이 한가하게 거닐고 있는 한낮의 강변길을 걷는 맛도 참 쏠쏠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것보다는 한적하게 거닐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봄 개나리가 노란 얼굴을 내밀 때 산책을 나왔으니 참 오랜만에 강변을 나왔다. 강둑에는 망초꽃, 금계국 등 이름 모를 여름 꽃이 군데군데 피어있다. 언제부터 나를 따라왔는지 참새 떼도 짹짹거리며 따라다닌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7월 녹음으로 뒤덮여 지붕 일부분만 보이는 강 건너 영호루를 쳐다보고 있는데 때마침 기차가 강물 위로 난 철길을 덜커덩 거리며 지나간다. 기차의 목적지가 부산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갑자기 기차를 타고 바닷가로 여행을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영호대교 밑을 지나는데 어르신 몇 분이서 여유롭게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다. 다가가서 구경을 하면서 나의 노년도 잠시 생각해 보았다. 강변 둑 여기저기에는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도 보였다.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가족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젊은 아버지가 낚시를 하고 그 옆에 돗자리를 깔고 가족들이 둘러앉아서 맛있는 것을 먹으며 구경을 하고 있는 풍경이 참 아름다워서 한참을 쳐다보기도 하며 걸었다.


나의 강변길 반환점은 임하댐이 위치한 반변 천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안동댐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만나는 곳이다. 두 물길이 만나는 곳이라 그런지 그곳에 정이 간다. 그리고 반환점을 돌면 오른쪽에 자연학습원이 있어 쉬어 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연학습원에는 우리나라 토종 꽃과 나무들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철마다 꽃을 감상할 수 있다. 오늘은 주황색 꽃에 까만 점이 예쁘게 박혀 있는 참나리꽃과 길다란 꽃대끝에 핀 주황색 왕원추리꽃이 반겨주었고, 그리 예쁘지는 않지만 개쉬땅나무와 사철나무의 연노랑색 작은 꽃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나라 토종 꽃의 종류와 나무들을 한 눈에 둘러볼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한번은 들려볼만한 곳이라고 추천을 하고 싶다.


자연학습장에서 강을 바라다볼 수 있는 의자에 물기를 닦아내고 잠시 앉아서 강물을 바라다보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강물이 뒤척이며 참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한다.

내가 강을 좋아하며 자주 찾게 된 것은 안동에 이사를 오고부터이니 한 20년이 된 것 같다. 타향이다 보니 단짝 친구도 없었고, 조용하게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참 평화로워지기 때문이었다. 기쁠 때보다는 슬플 때 강가를 자주 찾았었고, 좋은 일보다는 삶의 아픈 생채기로 가슴이 먹먹하고 외로울 때 강을 찾았던 기억이 더 많다. 그럴 때마다 강물은 언제나 변함없이 흐르면서 반갑게 맞아주었으며 집으로 돌아올 때는 많은 위안을 받으며 돌아오곤 했다.

20여년 강가를 거닐면서 터득한 것도 참 많다.

강물도 흐르다가 보면 돌 뿌리에 채여서 생채기가 날 때도 있다고도 했다. 그 아픈 생채기는 저절로 아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생채기가 채 아물기도 전에 더 아픈 생채기가 생겨서 잊고 살게 되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사람도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에 그냥 출렁이며 살아가는 수밖에 다른 뾰죽한 방법이 없다고도 했다. 그렇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너도 나도 넓은 바닷가에서 함께 만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살아가는 일이 외롭고 고달프기도 하지만 살다가 보면 좋은 날도 더러는 있다고도 했다. 강물도 흘러가다 보면 한낮의 따사로운 햇볕을 안고 행복에 겨워 은빛으로 자지러질 때도 있고, 강변에 핀 이름 모를 들꽃과 눈이 맞아서 아름다운 사랑의 밀어를 나누며 행복에 겨워 밤을 새는 날도 있다며 위로를 해 주기도 했다.


젊은 날의 혈기로 나를 잘 다스리지 못하고, 인내심이 부족하여 받은 삶의 생채기 때문에 괴로웠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잘 견디며 버티어왔다. 이제 내 남은 삶을 더욱더 아름답게 꽃피우며 펼쳐나가고 싶다. 이제는 어떤 일이 닥친다 해도 너무 조급하게 살지 않기로 했다. 다만 최선을 다하면서 흐르는 세월 속에 강물처럼 출렁이면서 그냥 살고 싶다

'피하지 못하면 즐기라'는 말도 있듯이, 강물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아가야지 다짐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발걸음은 늘 바쁘다. 강물처럼 여유롭게 살겠다고 다짐한 것을 벌써 잊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오늘이 7월 1일이다. 한 해의 반년이 지나가고 어느덧 7월을 맞이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아직 반년이나 남았으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지금부터 차근차근하게 정리하고 처리해 나가자고......,'


070701 / 김필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