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으로 발행되는

'향토문화의 사랑방 안동'지에

'新 안동인' 취재기사를 연재로 쓰게 되었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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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천 사는 필리핀 새댁 조나린(글/김필녀-안동주부문학회원)

자귀나무 가득한 풍천 가는 길
장마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몹시 후텁지근한 날씨였다. 사랑하는 님을 따라 머나먼 필리핀에서 안동으로 시집 온 조나린(Jonalyn Lingbawan Jandoc, 31세)씨를 만나기 위해 나선 길. 안동시내에서 풍천으로 가는 길은 고향을 찾아가는 길처럼 정겨운 풍경으로 이어졌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과 들은 진녹색의 물결이 절정을 이루어 더위에 지친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도로변에 접한 시골집 담 밑에는 접시꽃, 맨드라미, 백일홍, 다알리아 등 어릴 적 고향마을에서 본 꽃들이 다소곳이 피어 있었고, 드문드문 가로수 사이로 심어놓은 무궁화가 흰색과 분홍색 꽃을 막 피우고 있었다. 멀리 언덕에는 집안에 심어 놓으면 부부간 금실이 좋아진다는 자귀나무가 연분홍 꽃을 마음껏 뽐내며 피어 있었다. 풍산 읍내를 벗어나서 풍천 광덕으로 가기 위해 하회마을 가는 길로 접어들자 왼쪽으로 넓은 풍산들이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졌다. 모내기를 하던 풍경이 엊그제 같았는데 심어 놓은 모포기는 벌써 많이 자라서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며 풍성함을 자랑했다. 녹색의 향연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논 한가운데는 하얀 백로들이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여름의 산과 들은 수채화를 펼쳐놓은 듯 아름다운 풍경으로 이어졌다.


인심좋은 풍천에 정착한 필리핀 새댁 조나린
조나린 씨 집을 방문하기 전, 얼마 전에 조나린 씨의 친정 양어머니가 된 윤순옥 씨와 농가주부모임 경북회장 김옥희 씨를 서안동농협 풍천지점에서 만났다. 서안동농협 복지과장 맹진숙 씨도 함께 자리를 같이 해 서안동농협에서도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듣게 되었다. 풍천면에만 해도 국제결혼이주여성들이 2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이젠 외국새댁이 낯설지 않은 농촌풍경이다. 한국으로 시집온 새댁들이 서로 이웃하고 있어 의지가 많이 된다고 한다. 특히 조나린 씨는 성실하고 성격도 낙천적이라 만나보면 ‘사람 참 괜찮네’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거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결혼을 해서 살다보면 어릴 때부터 살아왔던 친정동네도 그립고, 특히 친정어머니가 몹시 보고 싶을 때가 많을 텐데 조나린 씨처럼 친정이 멀리 있으면 참 막막할 것이다. 그래서 조나린 씨가 정착해 살아가는 데에 조금이나마 의지가 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서안동농협에서 주선해서 윤순옥 씨와 친정 양어머니를 맺었다고 한다. 살다가 보면 마음이 외롭고 쓸쓸할 때, 속상한 일이 있을 때도 많을 텐데 그럴 때마다 멀리 있는 친정어머니를 대신해서 양어머니한테 속 시원하게 하소연이라도 하면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여느 모녀지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뤄진 일이다.


일행은 같은 차를 타고 광덕교를 지났다. 광덕교는 옛날의 그 다리가 아니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하회마을 부용대를 갈려면 강물이 넘칠 것 같은 낮고 좁은 다리를 아슬아슬하게 차로 건너서 갔는데 새롭게 건설된 광덕교는 넓고 깨끗했다. 광덕교회 앞에는 오토바이를 탄 건강하고 활달해 보이는 조나린 씨가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오토바이 뒤꽁무니를 따라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돌고 돌다가 조나린 씨 집에 드디어 도착을 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남편 정태교(농업, 41세)씨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맞이해 주었다. 특히 친정 양어머니 윤순옥 씨는 언제 마트에 들렸는지 음료수며 과자가 든 커다란 봉지를 내밀며 정겹게 안부를 주고받는 모습이 정말 모녀지간처럼 살갑게 느껴졌다. 마당 한가운데 있는 시원한 들마루에 앉아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는데, 어느새 조나린 씨가 시원한 냉커피와 수박을 내왔다. 방문객들에게 일일이 돌아가며 음식을 권하는 그 모습이 안동의 여느 집 새댁과 다를 바 없었다. 앳된 얼굴의 조나린은 한국 나이로는 1977년생인 31세이지만 필리핀 나이로는 아직 29세라며, 한국식 나이 계산법을 살짝 억울해했다.




필리핀 도시 처녀와 한국 농촌 총각의 만남
조나린 씨와 정태교 씨는 8년 전에 모 종교단체의 소개로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종교가 같은 사람끼리 결혼을 하게 되어서 그런지 특별한 반대 없이 양가의 축복을 받으면서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시댁은 인근마을인 신성이며 처음 결혼을 해서는 시부모님, 시할머님을 모시고 함께 살았다. 그러다가 3년 전에 시댁에서 가까운 광덕으로 분가를 해서 지금은 남편 태교 씨와 두 아들 승렬(7세), 세욱(6세)이와 함께 네 식구가 단란하게 살고 있다. 분가를 했지만 지금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일 시댁을 방문해서 어른들께 문안인사를 드리고 집안일도 많이 돕는다며 남편 정태교 씨가 자랑을 늘어놓았다. 방문한 날은 두 아들이 모두 유치원에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시간이라 만나지 못해서 좀 아쉬웠다.


조나린 씨의 친정은 필리핀에서도 제법 큰 도시이며 현재 친정 부모님은 두 분 다 건강하게 살아계시고 형제들은 모두 5남매이다. 집안 형편도 어렵지 않아 조나린 씨는 2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에 전공하고 싶은 분야가 따로 있어서 다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학사출신 엘리트 여성이기도 하다. 전공과목은 현재 우리나라 대학으로 치면 비서학과와 비슷한 학과라며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이 설명을 덧붙였다. 조나린 씨는 필리핀에서 가지고 온 앨범을 꺼내 어린시절과 대학시절에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시집을 온 뒤 2002년도와 2006년도에 필리핀을 다녀왔고, 작년에는 남동생 중 한 명이 조나린 씨 집에 와서 1년 정도 머무르다 가기도 했다.




엄마와 아빠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알아야죠
국제결혼이주가정에서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가족 간의 언어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불편을 겪는 것일 것이다. 특히 자녀가 생기면 자녀들의 언어발달 문제로 고민을 하는 가정이 많다. 아기가 태어나서 옹알이를 하면서부터 엄마는 아기와 마주보며 눈을 맞추면서 같이 옹알이도 받아주어야 하고, 조금 크면 동화책도 읽어주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보니 자연적으로 자녀들의 언어발달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나린 씨는 자녀들의 언어교육을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참 현명하게 시키고 있었다. 결혼해서 한글을 열심히 배워서 그런지 우리말을 유창하게 잘 했다. 필리핀에서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는 영어도 물론 능숙하게 잘 했다. 그래도 우리 한글은 남편인 정태교 씨가 더 잘하기 때문에 남편이 담당해서 가르치고, 조나린 씨는 엄마의 나랏말인 영어를 자랑스러워하면서 열심히 가르친다고 한다. 아이들이 아직 유치원에 다니고 있지만 영어를 잘하다보니 다른 친구들이 은근히 부러워한다고 했다.


조나린 씨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현재 풍천초등학교에서 1년 계약으로 방과 후 특기적성교사로 일주일에 3일을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아직 꿈을 완전하게 이루지는 못했지만 선생님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너무 행복하다며,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정말 실력 있는 영어선생님이 되고 싶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꿈이 하나 더 있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하회마을 문화해설사로 활동하고 싶어요.
“만약에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회마을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를 해서 하회마을을 찾아오는 외국관광객들에게 영어해설사로 봉사를 하고 싶어요.”
농사를 짓고 살다보니 늘 바빠서 먼 곳으로는 여행을 하지 못하는 대신에 가까운 하회마을에는 자주 들린다고 했다. 하회탈춤 공연을 보면서 함께 웃기도 하고, 탈춤도 따라 추면서 자연스럽게 안동의 문화를 배운다고 했다. 또 하회마을의 전통가옥을 세밀하게 관찰도 하고, 유교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서 하나하나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했다.
만약에 조나린 씨가 하회마을 영어해설사로 봉사를 한다면 주변사람들이나 외국관광객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까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관광객뿐만 아니라 외국관광객들에게도 참 인기 있는 하회마을 해설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자기가 태어난 모국이 아닌 멀리 한국으로 국제결혼을 한 필리핀 새댁이 한국의 전통문화와 안동의 유교문화를 열심히 공부해서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인 하회마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영어해설사로 봉사를 한다면 모든 관광객들이 감동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나린 씨의 꿈이 꼭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이 가시길 바랍니다.
조나린 씨는 남편과 함께 수박농사와 호박농사 등 특수작물을 중심으로 농사를 짓고 살고 있다. 농사라는 것이 사람 손으로 다 하는 것이다 보니 늘 바쁘게 산다고 했다.
도시에서 살아왔던 조나린 씨가 농사를 짓고 사는 것에 대해서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았다.한국으로 시집을 와서 어렵거나 불편한 점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대답한다.
“한국이나 필리핀이나 살아온 환경이 다른 사람들끼리 결혼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모든 게 낯설고 불편하지요”
너무 원론적인 대답만 하는 그녀에게 정말 어려운 점이 없냐고 짓궂게 물어보았다.
“자식이 생기고 부부가 서로 흉허물을 덮어주고 이해하며 살다보면 농사일도 그렇게 힘들게 생각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기 때문에 인내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지금은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대답도 곁들였다.


속 깊은 새댁에게 안동이 어떤 곳이냐고 물었더니 “서울, 부산, 대구처럼 큰 도시가 아니고 시골처럼 작은 도시라서 정이 더 간다.”고 웃으며 대답을 했다.
남편 정태교 씨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부인이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실수를 할까봐서인지 옆에서 계속 지켜보며 상세하게 우리들에게 다시 설명을 해주었다.
그가 조나린 씨와 결혼해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내부적인 문제보다 외부적인 문제였다고 한다. 그건 바로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편견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결혼해서 처음에는 부부동반으로 각종 모임에 자주 참석을 했는데 몇 년이 지나도 외국여성이라는 편견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아서 요즘엔 아예 부부동반을 하는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임에 아예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부인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태교 씨. 오히려 아이들은 학교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친구들과 잘 어울려서 놀고 하는데, 어른들의 고정관념과 편견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고 한다.


태교 씨가 조나린 씨에게 늘 미안해하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8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쉬운 말은 서로 잘 통하는데 어려운 말들은 아직 원활하게 하지 못해요” 한다. 그래도 요즘엔 ‘할매요 어디 가니껴’, ‘아지매요 장에 같이 가시더’하면서 안동사투리도 꽤 잘 한다며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았다. 조나린 씨는 한국으로 시집을 와서 한국말을 배우려고 무척이나 노력하는 것에 비해서, 태교 씨는 영어를 배우려고 부인만큼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언어소통 문제는 자신한테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아이들과 함께 영어공부를 열심히 할 계획이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안동새댁 다 된 필리핀 새댁
‘새댁’은 새색시의 높임말이며 갓 결혼한 젊은 여자, 각시, 신부(新婦)를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경북북부지역인 안동, 영주, 봉화에서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아직 올망졸망한 젊은 아줌마들을 ‘새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요즘으로 치면 미시족쯤으로 생각하면 어느 정도 가늠이 될 것 같다. ‘새댁’이라는 칭호는 결혼을 한 여인네들은 누구나 다 듣기 좋아하는 정겨운 칭호인 것이 분명한 것 같다. 필리핀 새댁 조나린 씨한테 ‘새댁’이라는 호칭은 시어머니가 부르는 ‘어멈’, ‘승렬이 에미’, 남편 태교 씨가 부르는 ‘조나린’, ‘세욱이 엄마’라는 호칭처럼 이젠 가족이 된 ‘안동사람’으로 불리는 그런 정겨운 호칭인 것이다.


조나린 씨와 안동으로 시집을 온 많은 결혼이주여성들이 안동의 전통문화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부모님을 잘 공경하고, 남편에게는 지혜롭고 사랑받는 아내, 아이들에게는 현명하고 훌륭한 어머니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넘치지 않는 배려와 아낌없는 격려를 해줘야 할 것 같다. 그녀가 제2의 고향 이곳 풍천에서 ‘안동 여인’으로 거듭나서 그녀의 바람처럼 가족들 건강하고 아이들 잘 자라주는 그 행복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안동에서도 다변화시대에 발맞추어서 국제결혼이주여성을 위해 한글교육, 육아상담, 생활 상담과 함께 한국인 친정엄마 갖기 운동 등 다양한 계획들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실제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눈높이를 잘 맞추어서 안동으로 시집을 온 결혼이주여성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이 아낌없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앞으로 풍천을 한 번씩 다니러 갈 일이 있을 때면 조나린 씨와 만나 수다도 떨고 그녀가 타주는 시원한 차 한 잔도 마셔볼 참이다. <안동>

통권 111호 - 新 안동인 

 

출처 : 독서논술지도사 김필녀서재
글쓴이 : 김필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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