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월 오후 다섯 시 반

 

김필녀

 

 

입동 지나 절정을 넘긴 단풍들

한결 거세어진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제 갈길 가고 있다

발밑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보며

마음만 바쁘다

십일월 오후 다섯 시 반

서쪽 하늘 붉게 물들이고 있는 노을 앞에서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노을 저편 방금 세수를 하고 솟아 오른

열엿새 둥근 달이 환하게 웃으며

지구 저편의 신비로운 세계를 끌고 온다

오늘이 간다고

한 해가 흘러 나이를 먹는다고

나이테로만 인생을 잣대질하지 말자

보내는 아쉬움 뒤에 펼쳐지는

미지의 세계가 더 아름답다는 것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깎이고 닳아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신비로운 또 다른 삶이 펼쳐진다는 것을

이쯤에서 깨달아야 한다.

 

081113 / 음력 시월 열엿샛날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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