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꽃

 

김필녀

 

 

흔들렸다 바로 서기를 수천 번

한 번 길을 내주었던 바람은

멈출 줄을 모른다

꽃을 거두고 잎마저 떨구어 버린 채

차가운 땅 밑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깊은 수행에 들어가 보아도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가슴 밑바닥까지 파고들어 뿌리째 흔들어댄다

가녀린 꽃잎을 스치다 생각이 깊어지고

바람벽에 기대어 쉬다 필연이 되어 버린

너도, 외로운 바람꽃이었다

떨치지 못할 운명이라면 서로 기대어

흔들리며 사는 것도 아름답지 않으랴

 

- 1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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