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슬에 세수하는 남자

 

김필녀

 

 

어둠이 채 물러가지 않은 꼭두새벽

들판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가뿐하다

장화를 신은 종아리가 서서히 젖고,

삽자루가 젖고, 가슴이 젖고, 얼굴까지 흥건하게 젖는다

땀방울로 범벅이 된 몸에서 풀 향기가 나고,

사람냄새가 물씬 풍긴다

아침이슬에 세수를 한 날,

그의 아내 얼굴에도 들꽃향기가 나고

푸짐하게 차려지는 아침상에는

윤기 흐르는 고봉밥이 입맛을 돋군다

그의 뒷모습에서 꿋꿋한 삶을 이어오던

오래 전, 우리 아버지들 모습을 본다

 

- 120807

 

 

가을의 속삭임 / 리차드 클라이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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