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서설(瑞雪)이 내렸다

 

 

날마다 아침이면 떠오르는 해지만,

새해 아침에 떠오르는 해는 무한한 희망을 안겨준다는 믿음 때문에

매서운 추위를 감수하고서라도 해돋이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서는 것이리라.

 

창문을 열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함박눈이 내린다.

서설(瑞雪)이다.

발걸음은 묶였지만 마음으로 새해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쳐다보며 한해의 소망을 빌었다.

시집간 딸과 사위한테서 전화가 오고,

말을 배우기 시작한 두 살배기 외손자와 화상통화도 했다.

노량진 고시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아들에게서 온 전화를 받으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새해 아침이다.

 

올 겨울에는 눈이 참 많이도 온다.

눈이 많이 내리면 풍년이 든다고 하는데,

새해 아침부터 이렇게 함박눈이 내리니 풍년이 들 것이라는 믿음이 더해진다.

농사는 남편의 몫이라며 늘 농장 언저리만 맴돌았는데,

올해는 혼자서 애쓰는 남편을 도와 농장 일에 올인을 해볼 작정이다.

농사하고는 무관하게 살았던 남편이 퇴직을 한 후에

최선을 다해 농사를 짓는 모습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잡초를 뽑으면서 시어를 찾고, 뙤약볕 아래서 내면이 더 발효되기를 소망해본다.

 

며칠 전부터 감기로 콜록거리던 남편이 새해 아침에

평생 입지 않았던 내의를 주섬주섬 입으면서 겸연쩍게 웃었다.

옛날 같으면 상노인 대접을 받아야할 환갑의 나이니만큼

이제는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나보다.

30년 넘게 한 이불을 덮고 살았는데 아직도 내세울 자존심이 남았나보다.

가장의 무거운 어깨 넘어 초로에 접어든 가녀린 남자의 모습을 보며 모성이 느껴졌다.

남편의 몫이었던 함박눈이 내린 마당을 쓸며 부부의 정을 확인했던 새해 아침이다.

 

해돋이에 대한 미련이 남아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가서

서설이 내리는 장면을 디카에 담았다. 

 

- 130101 / 농장일기

 

우체국 앞에 외롭게 서 있는 빨간 우체통도 서설을 맞으며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가는 집 옆에 있는 초등학교도 서설이 내려 고요하기만 했다.

 

 

 

 

 

 

 

 

♬ ABBA -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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