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마

 

 

 

1. 서동요의 마

- 백제30대 무왕(武王, 600-641)의 어릴 때 이름은 서동(마(산약)캐는아이)이며, 생업으로 항상 마(산약)를 캐고 팔아서 사람들이 서동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서동이 신라26대 진평왕(眞平王, 579-632)의 3째 딸 선화공주가 절세의 미인이란 소문을 듣고 아내로 맞이하고자 신라로 와서 맛있는 마(산약)를 동네 아이들에게 주며 부르게 한 노래가 바로 <서동요(薯童謠)>이다.

 

이때 아이들에게 준 것이 '마(산약)(서여:薯여)'로서 맛이 너무나 좋았기에 아이들은 서동이 시키는 대로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을 이어준 마(산약)는 삼국시대부터 먹어온 식물이다.

 

2. 사명대사의 마

- 금강산을 떠나 1,500명의 승군을 이끌고 평양성 탈환을 위해 달려가던 사명대사는 적군의 식량과 무기를 갈취당해서 굶주리고 있는 군사들을 위해 고민한다. 깊은 밤, 잠을 못 이루던 사명대사가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 채 되뇌이다가 모래밭을 무심코 걸을 때 발뿌리에 차이는 덩이를 당겨보니 고구마같은 뿌리가 뽑히는 것이었다. 이것을 급히 비장과 수하스님을 불러 밤새 채취하였고, 마(산약), 신비의 산약을 만나게 된다.

마(산약)죽을 배불리 먹은 군사들은 다시금 원기를 회복하고, 적군을 크게 무찔렀다. 그 후 조선의 국운을 건지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마(산약)로 인해 지금도 사찰데서는 마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3. 춘추전국시대의 마

- 중국 춘추전국시대, 강대국의 침략을 받은 한 약소국의 병사 2,000명이 산속으로 쫒겨났다. 산을 포위한 강대국 군사들은 약소국 병사들이 굶어죽었을 것이라 예상하고 산속으로 진격하지만 오히려 크게 패하고 말았다.
산속에서 약소국 병사들이 먹은 것은 바로 여름에 하얀 꽃이 피고 굵고 긴 뿌리가 있는 덩굴식물의 하나였다. 약소국 병사들은 산 속에서 이 식물의 뿌리를 캐먹고 힘을 길렀고, 이것은 산우(山遇)라고 불렀다. 이것이 허약한 몸을 튼튼하게 하는데 좋은 약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산에 있는 몸을 보호하는 약이라는 말에서 '산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본래 중국에서는 '마(산약)'을 '서여'라고 불렀다. 1550년전 수나라 때 '서여'라는 황제가 백성들이 황제의 이름을 거침없이 사용했기 때문에 신성한 황제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하도록, 마(산약)의 이름을 '산약'이라고 바꾸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4. 기억력을 도와주는 마

중국의 진시황은 기억력이 좋기로 유명했다. 그는 당시 왕궁건설 책임자가 올린 건설계획서를 한 번 훑어본 적이 있었는데 건물이 들어선 뒤 계단이 한칸 부족하다는 이유로 책임자를 처형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같은 기억력 때문에 폭정에도 불구하고 진시황의 철권통치가 가능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5. 안동 남정네 식품

옛날 안동지방 남정네들은 먼길 떠날때면 식사 대용으로 봇짐속에 마(산약)를 싸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교통도 불편하든 그때 장날이면 재를 넘고 물을 건너, 두다리로만 하루에 100리(40km)를 다니면서 먹었던 식품이 바로 마(산약)입니다.
먼길 떠나기 전, 아내들이 정성스럽게 싸서 남편의 괴나리봇짐 속에 넣어주던 마(산약)에는 아내의 사랑이 담겨있었습니다.

 

6.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자메이카 육상선수 ‘우사인 볼트’는 어릴 적 마를 먹고 자랐다고 한다. 우사인 볼트가 ‘2008 베이징 올림픽’ 100m, 200m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폭발적인 스피드의 원천은 마를 먹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메이카인들은 세계 육상 강국이 된 이유가 마에 있다고 믿고 있으며, 자메이타 트릴로니 지방에서는 마를 특산물로 생산하고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