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 / 김경주

 

 

고향에 내려와

빨래를 널어보고서야 알았네.

어머니가 아직도 꽃무늬 팬티를 입는다는

사실을

눈 내리는 시장 리어카에서

어린 나를 옆에 세워두고

열심히 고르시던 가족의 팬티들

펑퍼짐한 엉덩이처럼 풀린 하늘로

확성기 소리 짱짱하게 날아가네, 그 속에서 하늘하늘한

팬티 한 장 어머니


볼에 문질러보네. 안감이 붉어지도록

손끝으로 비벼보시던 꽃무늬가

어머니를 아직껏 여자로 살게 하는 무늬였음을

오늘은 그 적멸이 내 볼에 어리네


- 시집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문학과지성사,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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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년 생 '젊은' 시인 김경주의 첫 시집 가운데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읽혀지는 시다. 그를 두고 한때 시단에서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시적 재능을 가진 시인’이라 평가하면서 ‘현대시를 이끌어갈 젊은 시인’ 1순위로 꼽았다. 평론가 권혁웅은 ‘이 시집은 한국어로 쓰인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다’라고 평하면서, ‘이 무시무시한 신인의 등장은 한국 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라고 까지 하였다. 어떤 이는 '기형도의 재래'라며 찬사를 퍼부었다. 

 

 한때 자폐를 앓았고 IQ가 185라는 것도 시인을 수식하는 시선에 한 몫을 거들었다. 그런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도 회자되었으며, 강력계 형사인 아버지에 반항하며 정체성을 찾아 나선 이력도 시 속으로 녹아들었으리라 추측한다. 그런 온갖 의식의 흐름과 철학을 공부한 젊은 시인의 시가 물 흐르듯 유순할 수는 없겠다.  ‘미래파’라는 그를 비롯해 일군의 젊은 시인들에게 붙여진 칭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시는 대체로 어렵다. 일반 독자의 감수성으로 쫓아가기가 지난하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의 시집이 3만 부를 넘겨 기형도 이후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어쩌면 현대적 비쥬얼의 외모와 한 쪽 귀에 구멍을 내어 매단 귀걸이마저 매상에 기여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금의 시문학 풍토에서는 실로 격렬한 반응이 아닐 수 없다. 이 시는 내가 짐작했던 대로 그의 어머니가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을 의식하고 쓴 시라고 한다. 평소 그의 곡조대로 모던한 스타일을 견지했다면 시의 주인공인 어머니가 읽어낼 수 없을 터이므로 아주 사실적으로 썼다는 말이다.

 

 어머니에게 바친 첫 시집인데 단 한 편도 읽어낼 수 있는 시가 없다면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사실 나도 3년 전 첫시집이랍시고 아무따나 묶은 걸 생각해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같은 계산이 깔려있었다. 그렇게 쓰진 시가 어머니의 감수성과 쉽게 소통이 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겠으나 ‘꽃무늬 팬티’한 장만으로도 충분히 '어머니도 여자'란 여성성을 스스로 환기했을 것이다. 더불어 아들 자식의 그 어머니를 향한 갸륵한 사랑도 느꼈으리라. 나도 여든여덟 어머니의 꽃무늬 팬티를 개키면서 퍼뜩 이 시가 다시 생각났다.

 

 

권순진

  

출처 : 詩하늘 통신
글쓴이 : 제4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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